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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Oct 09. 2020

내 인생 대청소 3

결국 일을 내는구만 일을 내


1.

TV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본 적이 있다. 집안에 쌓여있는 버릴 것들을 버리고, 공간의 쓰임에 맞게 가전 및 가구들을 재배치하니 집이 멋지게 바뀐다. 집의 주인공들이 변화된 모습을 목격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마다 덩달아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도 나의 공간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기나 정리하기. 하기 싫은 노동이라고만 생각했고, 이사를 갈 때 빼곤, 버림과 정리정돈은 솔직히 내 일상과 가까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통해 바라본 그것은 노동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이었다.


공간은 사람을 반영하고 삶을 반영한다는 것. 특히 그 사람이 머무는 집은 더더욱. 그래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내면을 정리하듯 집안의 쓸모없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삶을 정돈하듯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버림과 정리정돈은 일종의 내면 청소 혹은 치유 또는 변화와 같다는 것. 아마 다들 느낄 것이다.



2.

한글날. 빨간 금요일. 청소하기 딱 좋게 가을바람이 강하게 불던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배가 잔뜩 부른 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곤 머리칼을 위로 치켜 묶었다. 무언갈 하기 전의 의식이었다. 그것은 바로 대청소.


집을 잠시 둘러보기만 해도 버릴 것이 정말 많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면 엄두가 안 나니 조금씩 조금씩 청소작업을 하기로 했다.


50리터 종량제 봉투를 여러 장 준비해놓고 무작정 버리기 시작했다. 거실을 얼추 정리하고 분리수거를 하니 잔뜩 불렀던 배가 꺼졌다. 내가 몸을 움직이니 동생도 몸을 움직였다. 거실은 내가 다 할 수 없으니 어느 정도만 하고 나는 내 방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강아지(짱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꾸 나를 따라다닌다.


“짱아야. 언니가 안 하던 행동을 해?”


동생은 짱아에게 자꾸 저 말을 했다.


창고와 같은 내 방은 바라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휴. 일단 잔뜩 있는 책들을 먼저 정리하기로. 내가 어려서부터 있던 책들, 문학 전집, 클래식 LP집들, 졸업앨범들, 앨범들, 악보집들, 엄마의 책들 등등.


버릴 책, 중고서점에 내놓을만한 책들, 내가 계속 갖고 있을 책들을 분류하니 얼추 정리가 되었다. 전에는 읽었지만 지금은 떠나보내고 싶은 책들을 보니 내가 이만큼 자라고 달라졌구나 싶다.


그리고 다시 버리기 몰입. 예전부터 캐캐 묵어있던 것들을 몽땅 다 버렸다. 소주병들은 왜 있는 건지 물어보니 동생이 스무 살 초반에 모아놓은 컬렉션이란다.


“당장 버려. 그냥 버려.”


“아니 그거를 왜 버리는 거야. 누구 주던가 하지.”


잠시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신 아버지가 놀라시며 물으셨다.


“아니야 아빠 이거는 그냥 버려. 오래되기도 했고 몰라 그냥 다 버리고 싶어.”


내 행동을 슬쩍 지켜보시더니 아버지도 갑자기 발 벗고 나서서 움직이셨다. 내가 잔뜩 아무거나 버려놓은 50리터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할 것들을 다시 정리하셔서 바깥에 내놓으시며 그는 한숨을 푹푹 쉬더니,


“아휴 얘 때문에 쉬지도 못하네. 청소한다 버릴 거다 하더니 진짜 일을 냈어 일을. 일은 네가 벌리고 왜 내가 수습하는 거 같냐~”


농담 반 진담 반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3.

버리고 닦다가 힘들면 잠시 과일을 먹으며 쉬다가 그러다 다시 버리고 정리하고. 그렇게 4-5시간을 보내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허기가 졌다. 얼추 끝낸 방에 드러누워 있으니 오늘 해야 할 큰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Before & After


버리기. 정리정돈. 그게 뭐라고 참.


캐캐 묵은 옛 흔적과 같은 물건들은 미련 없이 버리며 쾌감을 느꼈다. 새롭고 더 좋은 것을 받아들이려면 낡고 닳은 것들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정말 그런 것 같아.


나의 옛 시절들, 정리되지 않은 채 먼지만 잔뜩 쌓인 시간들을 나는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창고 같은 나의 방은 한결 넓어졌고 나는 그만큼 새로워졌다. 아 물론 여기가 진짜 끝은 아니고 청소는 앞으로도 계속되지만. 역시 시작이 반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버리기 딱 좋았던 오늘, 한결 정리된 방에서 새로워진 마음으로 청소하다 발견한 작은 향초에 불을 켜고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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