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사막을 거쳐, 드디어 런던으로.
1.
비행기가 자정에 출발한 덕분에 벽에 기대어 한숨 자고 나니 곧 착륙을 알렸다. 그곳은 두바이였다. 언젠가 잡지를 읽다 두바이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 그곳의 사막에서 해 지는 걸 봤다는 걸 읽고 나도 꼭 언젠가 사막에서 선셋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만, 유럽 가는 도중에 중동을 지나지? 그렇다면 잠깐 들렀다 가면 되겠다. 기회는 만들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두바이를 잠시 여행할 생각은 전혀 없이, 그저 사막만 들르면 된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곳에 잠시 들렀다.
이른 새벽에도 공기가 후텁지근했던 두바이에서 한 번쯤은 보고 싶던 사막을 보던 그때. 언젠가는 사막을 보러 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진짜 사막에 가게 될 줄이야.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6개월 전, 아버지에게 간을 주었던 내가 두바이 사막에서 철푸덕 앉아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니. 진부하지만 정말 인생은, 아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한 치 앞도 모를까. 그래서 인간은 겸손히 그저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힘껏 주어진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밖에.
그리고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사막에서 부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며,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났음을 느꼈다. 정말 종이 한 장이 넘겨진 기분이었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동시에 내가 한국에 없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하며. 낯선 땅, 낯선 공기, 그리고 챕터가 끝난 후의 빈 페이지. 그다음 챕터의 배경은 런던이라는 생각에 설레다가, 두렵다가, 여러모로 복잡 미묘했다.
새 챕터가 시작되기 전의 그 빈 페이지에서 나는 잠시 아무것도 쓰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모든 감정들을 오롯이 느꼈다.
2.
두바이에서 런던까지는 5시간의 비행이었다. 비행 동안 익숙한 영화를 몇 편 뒤적여 보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와 간단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비행이 지루했는지 아니면 내가 궁금했는지 그녀가 말을 거셨다. 직접 듣던 영국식 발음은 너무나 생소해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그녀와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그녀의 이 질문은 아주 명쾌하게 들렸다.
"영국엔 왜 가는 거니? 학생이야?"
"아. 잠시 살아보려고 가요. 실은 영국에 가는 게 오래전부터 꿈이었어요."
꿈. 꿈이라면 정말 꿈이지. 꿈, 이라는 단어가 툭 하고 나오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머! 꿈을 이뤘구나! 축하해."
남들처럼 다른 나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것뿐인데. 그냥 그렇게 잠시 영국에서 머무는 것뿐인데. 그렇지만 내게는 그 이상이어서, 정말 오래되고 묵혀있던 소원이 드디어 이뤄진 날이어서, 낯선 이의 다정한 축하는 내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녀와 대화를 매듭짓고 창 밖을 보니 사진으로, 영상으로만 보던 템즈강과 런던아이가 보였다. 곧 착륙이었다.
아, 내가 런던이라니. 말도 안 돼. 몇 번이고 꿨던 꿈에서 나온 그 장면은 현실이 되었다.
3.
히드로 공항. 큰 캐리어 두 개, 배낭 하나. 생소한 영국식 발음. 돈의 단위도 이제는 '원'이 아닌 '파운드'. 모든 것이 생소해서 어쩔 줄 모르던 나. 공항에 있던 카페에 잠시 들러 커피 한 잔 하며 숨을 돌린 후, 공항으로 픽업 오실 기사님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만났고, 차에 올라탔다. 오른쪽에 있는 운전석, 한국의 도로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차들. 뭉게구름들, 맑은 듯 흐린 런던의 하늘.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곳이 익숙한 기사님은 익숙하게 도로를 달리며 오래된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틀어주셨다.
"제가 좀 취향이 독특할 수도 있어요~ 노래 들으면서 편히 가시라구~"
그는 종종 내게 말을 거셨고 이레 물어볼 질문들을 하셨다.
"영국에는 어떻게 오신 거예요?"
"아 워킹홀리데이로 왔어요. 영국에 오고 싶었거든요. 여기로 오기까지 쉽지가 않았네요."
"그러셨구나."
그냥 흘러가는 음악이 갑자기 내 귀에 들릴 때가 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곡이기 때문이다. 아 이곡은 어렸을 때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듣던 곡이었다. Westlife의 More than words였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들뜬 마음을 기댄 채 창 밖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 여기가 영국이구나. 런던이구나.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니 뭉게구름 하나가 종종종 나를 따라왔다. 하트 모양의 구름이었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런던은 내게 뭉게구름만큼의 환영인사를 해주었다. 환영해. 앞으로의 삶을 응원해. 꼭 그런 인사인 것 같아서, 그리고 두둥실 들뜬 내 마음이 꼭 저 구름 같아서, 나는 조금 뭉클했고 많이 신났다. 내가 여길 얼마나 오고 싶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리고 기사님은 내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건네셨다.
"꼰대 같겠지만 인생 선배로서 말해요. 지금부터 본인 하기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될 거예요.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