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감격의 계절

그 해 여름, 런던이 내게 준 선물.

by 아름나무


1.

런던에서 보낸 2018년 여름, 그해 그 계절은 꽤 덥고 새로웠으며 영감과 감격이 뒤섞여 반짝였다.


무엇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아 그때가 생각난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의 저녁. 한인 민박에 짐을 내려놓으니 배가 고파 혼자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건 그때만 해도 내게 어색한 일이어서 어딜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그저 구글맵을 열어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음식점을 찾는 게 다였다. 케밥집. 근처에 겨우 하나 보이는 케밥집을 찾아가 케밥 하나를 테이크 아웃해서 주위를 서성였던 발. 그 발걸음은 어디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공원에 들어갔다. 싸늘해진 저녁 공기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케밥을 한입 베어 물던 그 순간, 나는 잠시 두려웠다. 내가 과연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딱 그 마음이었다. 얼마나 선명했는지 지금도 그때의 두려움과 막막함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푹 잠이나 자자. 나는 이내 남은 케밥을 해치우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 긴 잠을 잤다.


그런 나의 마음을 도닥여주듯 런던은 나에게 고맙게도 선물을 잔뜩 안겨주었다. 막막했던 집을 구하는 것도 도착한 지 3일 만에 운 좋게 구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일주일 동안 관광지와 가까운 민박집에 머물며 이곳저곳 가보고 싶던 곳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던 것이다. 그때 그 여름. 런던은 물론이고, 유럽이 처음인 내게 런던 중심지의 풍경은 그 모습 그대로 꽤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충격적일 만큼 좋았다.



Pimlico, 2018
A cafe, 2018


처음으로 오이스터 카드(런던의 교통카드)를 만들고 튜브를 탔던 것, 2층 버스의 맨 윗 층 앞자리에 앉아 중심지를 구경했던 것, 밤 9시가 넘도록 환한 유럽의 여름, 늘 마음속으로만 그려보던 런던아이와 빅벤,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 아 그곳에 걸려있는 고흐의 그림들. 내가 좋아하는 아침, 카페에 들어가 빵과 커피를 먹으며 글을 쓰던 것. 필름 카메라로 돌아다니며 런던을 사진 찍던 것. 나에겐 그 모든 것이 다 선물로 느껴졌다.


그중에도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공원이었다. 자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아마 나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이 런던을 간다면, 공원은 각별한 곳이 될 것이다. 웃기게도 처음으로 공원을 갔던 건 정말 우연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어차피 2년 동안 머문다는 생각에 아무런 여행 계획 없이 런던에 갔던 게 분명하다.




2.

저녁을 먹고 난 후 여덟 시, 그때도 날이 한창 밝았던 그해 여름.


"이 근처에 잠시 다녀올만한 곳 있어요?"


나의 물음에 민박집 스태프는 근처에 공원이 있으니 거길 가보라고 했다. 그곳에 가면 버킹엄 궁전과 런던아이가 보인다고.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매트와 노트 한 권, 그리고 카메라를 챙겨 그곳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중간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 저기인가 보다. 그가 알려준 그대로 다리에 서서 왼쪽을 바라보니 버킹엄궁전이, 반대쪽을 바라보니 런던아이가 보였다. 그곳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였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사진을 남기고 다리에 기대어 하염없이 공원을 바라보았다. 모든 게 낯설었는데 어쩐지 이곳은 익숙했다. 아 여기가 내가 늘 사진으로 봤던 그 공원이었구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 살랑이는 나뭇잎들, 반짝이는 잔디,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오리와 백조, 그 옆에 반짝이는 윤슬. 우거지는 초록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영감으로 다가와 내 마음을 툭, 툭 하고 건드렸다. 그러면 난 곧 툭, 툭 하고 눈물을 흘렸고. 그리고 순간에 드는 모든 감정을 노트에 쏟아내었다.


Very first inspiration at St Jame's Park, 2018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단연코 공원이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이었지만 나는 런던의 곳곳에서 좋은 자극들을 받았고, 감격했으며, 종종 울었다.


그해 여름. 그토록 그려왔던 런던이기에 나는 한동안 여행자처럼 살았다. 바로 생활자가 되면, 먹고사는 '생활'로 넘어가면 이 감격을 쉽게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 속도를 낮추어 하늘을, 건물을, 사람들을, 자연을 보고 또 보았다. 소머셋 하우스에서, 타워 브리지에서, 노팅힐에서, 쇼디치에서, 옥스퍼드 서커스 스트릿에서, 여러 번 가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 앞 트라팔라 광장에서, 테이트 모던에서, 잠깐 기차를 타고 넘어간 근교 브라이튼에서, 사진으로만 바라보던 세븐 시스터즈 그 하얀 절벽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모든 장소에서.



Seven sisters,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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