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에 사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1.
나의 워킹 홀리데이의 순서는 이러했다. 집 구하기, 필요한 서류 신청하고 받기, 일 구하기, 은행 계좌 열기, 그리고 그 후에는, 먹고 살기. 운이 좋게도 집 구하기와 서류받기는 비교적 빠르게 해결이 되었다. 얼마나 운이 좋았냐면 도착한 지 며칠 되기도 전에, 그것도 우연히 닿은 동네에서 나는 집을 구하게 되었다. 동네의 이름은 윔블던. 아마 이 이름이 익숙할 수도 있겠다. 나도 낯설지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세계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그 동네였다. 매해 테니스를 보러 여행객들이 오는 동네인 만큼, 동네는 밝고 안전하며 살기 좋은 곳이다. 처음 윔블던 역에서 나오자마자 아, 이 동네 좋다,라고 바로 느껴졌을 만큼. 게다가 방 컨디션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아서 나는 고민할 여지없이 바로 계약을 했다.
'와 이제 내가 머물 곳이 생겼다.'
들뜬 마음에 이곳은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기도 하고. 그 운명은 내가 귀국하기 전까지 지속되어 나는 이사 한번 없이 윔블던에서 머물렀고, 그곳은 내게 애정이 되고 애틋함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나의 요새가 되어줄 그 방의 월세는 한국돈으로 약 90만 원이었다. 겨우 방 하나 빼고 키친이며 화장실이며 나머지는 모두 공유. 살인적인 런던의 물가를 여기서 더 실감했다. 나머지를 같이 공유하는 이들은 집주인 아주머니, 다른 플랏 메이트(다른 방을 용하며 나머지를 공유하는 하우스 메이트) 1명, 그리고 강아지 1마리. (나중엔 한 마리가 더 들어와서 두 마리.) 레바논 사람인 주인아주머니는 한국인이 예의가 바르고 깔끔하다고 한국인을 유난히 좋아했고 요리를 잘하시고 수다스러웠다. 핑크빛이 도는 집, 카펫으로 깔려있는 바닥, 작은 뒷마당, 그곳에 우뚝 서있는 큰 자두나무. 그곳이 내 첫 집이자 마지막 집이었다.
내 방이 된 그 낯선 방에 나는 짐을 풀고 하나둘씩 정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하나둘씩, 이 낯선 곳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늘 그래 왔듯이 내가 좋아하는 그림엽서들을 벽에, 옷장에 붙여놓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내 방이, 내 요새가 생겼다는 안도감이었다.
2.
짐도 완전히 풀었겠다, 필요한 서류도 받았겠다, 아, 가보고 싶던 곳은 얼추 다 가봤겠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구직이었다. 여행자의 옷을 벗을 때가 온 것이다. 더 지체할 수도 없었던 게 한 달 월세 90만 원이 주는 압박감이...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이제 일을 해야, 만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일했던 과학선생님의 경력은 살릴 수가 없었고, 내가 런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적이었다. 한인 회사에 들어가는 거 아니면 카페나 식당, 마트 같은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한인 회사 들어갈 거면 왜 여기 온 거야. 캐셔, 웨이트리스, 아 이런 건 하기 싫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제 파악을 못하고 일을 가렸다.
어디서 일을 할까 알아보던 중, 동네에 있는 러시(LUSH) 매장에 샴푸와 린스를 사러 갔다가 구인 공고문이 붙어있는 걸 보았다. 좋았어, 러시다.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던 나는 이력서를 쓰면서 점점 현실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경력란을 쓸 때였다. 그때의 나는 만으로 스물여섯. 고작 내가 쓸 수 있는 경력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빵집이 다였다. (물론 끝에 과학학원 경력도 적었지만 쓸모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왠지 안될 것 같았지만 경험이라 치고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웬걸, 운이 좋게도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는 그룹 인터뷰였고 매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설렘 반 걱정 반인 마음으로 매장에 갔는데 그제야 비로소 더 큰 벽, '영어'라는 큰 장벽을 인식하고야 말았다. 다른 이들이 말하는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입도 뻥긋 잘 못하던 나.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내 영어실력은 그곳에서 일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영어를 못하면 자신감이라도 있던가, 그렇지도 않았다. 경력도 경력인데 영어실력은... 아, 영어는. 터덜터덜. 면접이 끝나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던 날. 진이 다 빠졌던 나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 와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다시 차렸다. 자, 지금 나는 일을 가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려.
그렇지만 전략이 필요했다. 내 이력서에 경력으로 쓸 수 있는 건 베이커리와 카페였으니까 그쪽으로 알아보기로 결정했고 동네와 옆동네에 있는 여러 숍들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니 카페에서 일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력서를 낸 후, 어떤 곳에서는 연락도 없었고 어떤 곳에서는 인터뷰도 했지만 어쩐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내 영어실력이 날 도와주지 않는 느낌도 들었다.
아 어떡하지. 나 밥 벌어먹고살 수 있을까. 어떡하지. 집세 내야 하는데. 진작에 일을 알아볼 걸. 내가 너무 놀았나.
일이 쉽게 안 구해지니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혹시 일해볼래? 주로 사진 찍고 보정하는 일 이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때마침 플랏 메이트가 일하던 한인 회사에서 자리 하나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인 회사여도 이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만큼 일이 간절했던 나는 냉큼 해보겠다고 했고 그 회사에 트라이얼(본격적으로 구직이 결정되기 전에 일을 해보는 과정)을 갔다. 일은 꽤 재밌고 편했다. 비록 제품 촬영이지만 사진 찍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일을 알려주는 분이나 옆에 일하는 분들도 편했다. 그런데 그냥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내가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들,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한국 노래들. 그리고 직감했다. 이곳에 있으면 영어를 쓸 일이 없겠다고.
그 회사로 몇 번 트라이얼을 다니던 도중에 연락 한 통이 왔다. 어느 카페였다.
"축하해. 우리와 같이 일하게 되었어.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전에 직원 교육이 있을 거야. 장소는 어쩌고 저쩌고. 이곳에서 일을 할 건지 답변 주렴."
일하기 편하지만 영어를 쓸 일 없는 한인 회사냐, 몸이 고생하지만 외국인들과 일해보는 카페냐. 취미가 사서 고생(?)인 나의 선택은 고민할 여지없이 당연히 후자였다.
그 회사를 나오면서 옆에서 일하고 계셨던 분이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아 저도 그전에 카페에서 일했었는데 정말 힘들어요. 꼭 거기 가셔야겠어요? 여기가 훨씬 나을 텐데."
그렇겠지요. 그렇지만 일단 런던이니까, 고생 한번 해볼게요.
나는 그렇게, 조금의 우여곡절 끝에, 바리스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