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동양에서 온 키 작고 얼굴 하얀 여자.
1.
"안녕? 네가 도로시니? 같이 일하게 돼서 반가워."
"안녕 반가워. 잘 부탁해."
드디어 내가 앞으로 일하게 될 매장에 갔다.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도 잠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나처럼 처음 이 카페에 들어와서 일하는 신입은 보통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개월까지 수습기간을 거치게 되고, 그 기간은 바리스타 트레이니라고 불리게 된다. 심지어 유니폼 색깔도 다른데 이것은 손님을 응대하다가 실수를 해도 이해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사인이었다. 그 유니폼 색깔이 검은색으로 바뀌면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그 수습기간 동안 잘 보여야만 했다.
모든 게 나에게는 새로웠다. 아무리 교육 때 다 배우고 연습을 해보았어도 실전은 너무나 달랐다. 우유의 종류는 왜 이렇게 많은지, 메뉴는 도무지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포스 기계에 찍혀있는 메뉴 버튼은 왜 그리도 많은지. 누르면 실수하고 또 실수하고. 그리고 그 카페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전부다 영어, 영어, 또 영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동료들을 관찰하며 따라 하기 바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시간이 좀 걸리는 나는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교육을 받았던 매장과는 달리 내가 일하기 시작한 매장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신입 바리스타에게 친절함은커녕 실수를 지적하고 나를 지켜보며 피드백을 주기 바빴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놀이터가 아니라 삶의 현장이니 말이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카페 환경에서 새로 들어온 애가 자꾸 어리바리하게 굴고 실수하고 주눅 들어 있다면 그 누가 좋아하겠나. 부끄럽지만 내가 그 모습이었다.
"야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돼. 너 매니저 앞에서 이렇게 하면 엄청 혼난다. 죽음이야 죽음."
일을 알려주는 동료는 내가 실수할 때마다 저렇게 얘기했다. 뭐라 뭐라 하면서 결국 끝에는 매니저랑 같이 일할 땐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로 말을 끝맺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성질을 내면 애들이 다 저렇게 얘기하지 싶었는데 그 말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매니저를 드디어 만난 첫날, 웬 마초 느낌이 나는 이탈리안 아저씨가 내 곁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네가 도로시니? 나 여기 매니저야. 같이 일하게 돼서 반가워. 오피스 가서 얘기를 좀 할까?"
인상이 꽤 차가운 그의 왼쪽 팔에는 문신이 잔뜩 그려져 있었고, 나는 잔뜩 겁을 먹은 체 그와 오피스에 갔다. 이것저것 계약서를 작성하는 동안 그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같이 일해본 한국인이 총 3명이었는데 다들 일도 잘하고 빨라서 같이 일하기 너무 좋았어. 그래서 내가 너를 뽑은 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지?"
"네?... 아... 네."
아. 왜 한국인들은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지. 왜 또 잘하는 건지. 그는 나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왜? 나도 한국인이니까. 이런 일반화가 어디에 있담. 알게 모르게 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2.
"이거를 왜 이렇게 했어!! 내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
동료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니 누구는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나. 그와 같이 일하는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내가 실수를 할 때면 그는 불같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며 화를 냈는데 정말 무서웠다. 어느 날엔 손님이 줄 서서 기다리는 아침 시간에 내가 실수를 했는데 손님들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어 나도 모르게 운 적도 있었다. 엉엉 울면서 미안하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그래도 손님 앞에서 그러면 어떡하냐, 고 말하니 그가 미안했는지 마음 좀 추스르고 오라며 나를 오피스로 보냈던 그날 아침. 그 와중에도 얼른 마음을 추스르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던 그 시간. 지금은 웃으며 추억하는 에피소드로 남았다. 그도 나를 많이 인내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땐 너무했어요!
동료들이라도 조금 편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동료들도 내겐 너무 어려웠다. 모든 걸 영어로 알아들어야 해서 나는 이해가 느렸고, 자꾸만 버벅거리는 나를 그들은 불편해했다.
"도로시, 너는 너무 느리고 자신감이 없어. 목소리 좀 키워. 이건 이렇게 하라니까? 더 빠르게 하라고."
야 내가 몰라서 이러냐. 나도 내가 답답하다고.
속으론 이렇게 외쳤지만 결국 나는 응, 이라고 기죽은 채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일은 왜 그리도 고된지. 누가 바리스타 일이 간지 난다고 했던가. 말 그대로 노동에 가까웠다. 손님을 응대하고, 그 손님의 음료도 만들고, 계산을 하고. 이것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외의 일은 정말 말 그대로 육체노동이었다. 잔뜩 쌓이는 쓰레기를 치우고 버리는 것.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 바닥청소, 물걸레질. 무거운 물품 박스들이 오면 지하 창고에 내려다 놓는 일. 냉동 패스트리들을 오븐에 넣어 굽고, 냉동고에서 케이크를 꺼내는 일, 등등등. (오피스와 창고가 같은 층에 있어도 일이 수월했을 텐데 지하에 있는 바람에 더 고생했다.)
그리고 아직 나는 신입. 손님 한 명을 받는 것도 벅찬데 바쁜 시간대에 긴 줄이 생길 때마다 은근히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 빨리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손님이 말하는 영어가 안 들리면 어떡하지, 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도.
처음엔 나도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생각에, 런던에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지만 이곳에서 적응하기가 꽤 힘들었다. 그저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당시 나에겐 상황이 복합적으로 어렵게 다가왔다. 그러나 문제는 바깥에 있지 않았다.
3.
'내가 이럴 일 할 사람이 아닌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부끄럽지만 콧대가 높았다. 늘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했고 그 일은 몸을 쓸 일이 전혀 없었다. 간혹 했던 빵집 아르바이트도 크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딱 그 정도였다, 나의 고생 치는. 남에게 쓴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었고, 누가 나에게 피드백을 해도 그것을 잘 흡수하지 않았다. 나는 교만했고 나만 바라보고 있기 급급했다.
그런 내가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의 어느 동네의 카페에서 와장창 깨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내가 자라지 못하게 막고 있던 벽 같은 것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던 거다.
어느 날, 나에게 그나마 친절했던 동료 한 명도 나를 모른 채 하기 시작했고, 동료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대놓고 너를 무시하는 거야, 라는 표시였다. 그리고 다른 어떤 날, 매니저가 나를 따로 불러 피드백을 주었다. 너는 바리스타로서 친절한 건 완벽히 갖추었는데 그 나머지가 너무 느리고 부족하다고. 그걸 개선해야만 한다고. 그리고 자신감이 너무 없다고.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맙다.)
'잠깐만, 나 여기서 그대로 더 가다가는 잘릴 수도 있겠는데?'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앞에 놓여있었다.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그곳에서 버틸 것인가. 그런데 그만두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돈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자 그만두기 애매하니까 일단은 여기서 버텨야 돼. 살아남아야 해.
퇴근 후 집에 와서 종종 울던 나는 그만 울기로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운다고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그것은 살아남겠다는 나의 발버둥이었다.
자, (그곳에서 썼던 영어 이름) 도로시.
네가 어떤 대학을 나왔고, 어떤 공부를 했으며,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들은 전혀 관심 없어. 너는 단지 이들에게 동양에서 온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얀 여자일 뿐이야. 지금 너는 제로야. 어쨌든 너는 여기서 일단 바리스타로서 적응을 해야 해. 뭐가 부족한 지 살펴보자.
이 일을 잘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부족해.
아직도 우유 종류나 메뉴가 가끔 헷갈려.
아무리 신입이어도 손님에게 내놓기 부끄럽게 커피를 만들 때가 있어.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배웠다. 눈물을 그치고 나니, 내가 배운 것을 써먹을 좋은 기회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을 하고 행동을 바꾸었다. 그때부터 나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러니까 무언가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고 내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