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무슨 좋은 일 있어?

동양 여자 바리스타, 한 뼘 자라나다

by 아름나무



1.

가장 먼저 한 건 운동 등록이었다. 내 몸뚱이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금세 이곳저곳이 쑤시는 저질체력이었다. 게다가 내내 일어서서 일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니 살이 꽤 빠졌는데 문제는 근육도 빠졌다는 거. 허리가 자꾸만 아팠고 내내 피곤해 쉬는 날엔 어딜 나갈 기력조차 없기가 일쑤였다. 모두가 다 알 것이다. 체력이 기본이자 국력이라는 것을. 나는 그 진부한 문장을 나에게 적용해야만 했다. (몸이 안 따라줘서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도로시, 여기 바로 옆에 gym 있어. 한 달에 20파운드(약 3만 원)거든? 너도 등록해. 나는 요즘 잘 안 가긴 하지만."


동료와 운동 얘기를 하다가 좋은 정보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일하는 카페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가격이 저렴한 gym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호라, 아주 딱인데. 그때부터 나는 바로 gym을 등록하고 출근할 때마다 운동복과 (그 시절, 하의는 늘 레깅스였지.) 2리터 물병을 챙겨 다니며 일 끝나면 바로 운동을 했다. 역시 몸은 정직하다고 하루, 이틀, 일주일, 운동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내 몸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허리 아픈 것도 사라지고 운동 덕분에 코어에 힘이 생겨 일어서서 일을 하는 것도 덜 힘들게 느껴졌다. 신기했고 신이 났다. 체력이 받쳐주니 매번 풀 죽은 채로 조용히 있던 나는 생글생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2.

그리고 커피 만들기 연습에 돌입. 특히 우유 거품을 내는 것과 라테아트를 주구장창 연습했다. 커피를 잘 만드는 동료에게 수시로 물어보기도 하고 따로 유튜브 강의를 보며 짬나는 시간에 연습을 하고. 하고 또 하고. 그러고 나니 금세 일반 우유는 물론이고, 거품을 만들기 어려웠던 두유나 코코넛 우유도 모두 손에 익었고, 마침내 나는 커피 잔에 하얀 하트 물결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Oh Lovely! Thank you!"

"Amazing, Wow, thank you, darling!"

(와, 멋지다. 고마워!)


손님들에게 하트물결이 찰랑이는 커피를 건넬 때면 그들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했다. 바리스타로서 그 뿌듯함은 말할 것도 없지. 나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동료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모였다. 너 그거 어떻게 했냐고. 나도 좀 알려달라고. 느리고 답답했던 한국 여자애는 어느새 구석에서 동료들에게 라테아트를 알려주게 되었다. 놀라운데 한국인?




3.

체력도 생기고 커피 만드는 것도 자신이 생기니 이것이 선순환인가 싶을 만큼 카페 일도 더 수월해졌다. 자신감이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일이 익숙해지면서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손님들도 눈에 익어 한국인들의 무기인 '친절함'으로 나는 그곳에서 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바리스타 트레이니'가 아니라 '정식 바리스타'가 되었다. 손님들도 하나둘씩 나의 이름을 묻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는 그 카페 팀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사적인 질문을 잘하지 않는 매니저가 갑자기 내게 질문을 했다.


"너 무슨 좋은 일 있어? 연애하니?"

"네? 아뇨?"

무슨 일 있냐는 그의 질문에 당황한 채로 왜 그러냐고 되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요즘 좋은 모습으로 달라진 것 같아. 동료들도 다 그렇게 느끼고 있고. 이제 일도 잘하고, 커피도 잘 만들고 아주 보기 좋아. 비결이 뭐야?"


"아 감사해요... 아마... 운동 덕분일걸요? 하하..."


나는 운동 덕분이라고 얼버무렸다. 그전의 내 심리상태나 고쳐먹은 마음가짐 따위들을 말할 이유도 없었고, 영어로 내 생각을 다 전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운동 덕분이라고. 매니저는 나도 운동을 해야겠다며,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나는 그 대화가, 정확히는 그 피드백에 기분이 좋기보다 소름이 돋았다. 나의 태도가 곧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곧 피드백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이 치열한 곳에서 돈을 벌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마치 꽝꽝 언 살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데 얼음이 살짝 녹아 이젠 잘 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러니까 이젠 이곳에서 일을 하는 게 익숙해져서, 내가 무엇 하나 넘어갔구나 싶어서 다행스러웠던 거다. 음 아주 조금 울컥했던 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타국에서 0에서부터 시작하는 그 하나하나가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성장하나 보다. 타국살이가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경험하며, 조금씩 조금씩.


며칠이 지나 매니저도 진짜 gym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 나도 요즘 운동을 하잖아. 덕분에 몸이 덜 피곤해서 좋더라고."


Grow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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