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아

지지리 궁상맞다고 하기엔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어

by 아름나무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동양 여자는 어느새 바리스타 도로시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런던을 떠나기 전까지 매장을 바꾸긴 했지만 계속 그 카페에서 일을 했다. 카페에서 치열하게 일을 하고, 가끔은 여행을 하고, 어떤 날엔 시내에 놀러 가거나 또 다른 어떤 날엔 방에 하루 종일 누워만 있으면서. 나는 그렇게 나답게 삶을 꾸려갔다. 녹록지 않았고 고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이 내게 소중한 건 아마 내가 얻은 게 많았기 때문이리라. 상자에 소중한 것들을 차곡차곡 담듯 내 런던 상자도 열어보면 내가 담아낸, 빛나는 무언가 들이 있다.


소개하고픈 그것들 중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건, 다름 아닌 '가난'.


웃기지만 그 상자 안에는 '가난'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예쁘고 트렌디하고 좋은 것들이 잔뜩 있는 런던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은 정말 힘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해서 얻은 것들이 있다. 도대체 가난으로 무엇을 얻은 거란 말인지. 쓰기도 싫은 그 단어를 지금 몇 번이나 쓴 건지.


앞서서도 말했듯이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가난했다. 가난의 치명적인 무서운 면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 아닐까? 돌이켜보니 내 안엔 가난 근성이 (혹은 거지근성이) 찌들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때를 벗겨내고 있지만.)


돈만 있으면 이것도 해볼 수 있을 텐데.

만약에 내가 돈 있으면, 나 같으면 당장 하겠다.

돈이 있으면 이걸 사고 싶은데 못 사겠다.

돈이 충분히 있으면 여유롭고 행복할 것 같은데.

돈 많이 벌고 싶다.


가난은, 정확히 돈은 늘 내가 숨기 딱 좋은 장소였다. 늘 속으로 가난을 들먹이며 핑계대기 바쁜 인생이었지. 어느 순간부터 분명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내 태도가 너무 싫었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더 이상 그렇게 나 스스로 창피하지 않으려면, 나는 나의 '가난'을 다르게 바라봐야 했다.


런던에 정착해가면서 그곳의 살인적인 물가에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무가내로 돈을 쓰다 보면 하루 사이에 몇십 파운드(한화로 몇만 원)가 훅훅 나갔으니까. 게다가 런던에서 카페 바리스타로 일을 하는 건 돈을 넉넉히 버는 게 아니었고, 한 달마다 나가는 집세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겨우겨우 살았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었지만 쉽게 오지 않은 런던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가난과 치열하게 싸워보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아서.


적은 돈이라도 아껴서 나답게 잘 살아보자.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먼 훗날 웃으며 추억할 나의 마지막 가난이라고 생각하면서. 힘들겠지만 기꺼이. 그래서 무엇을 했냐면?




1. 오늘의 일용할 팁으로 소확행 누리기.

하루 단위로 근무가 끝나면 팁이라고 쓰여있는 머그잔에서 동전들을 골라내고는 동료와 반으로 나누었다. 그게 바로 당일 날 내가 받은 팁. 고작 동전 몇 개가 전부였고, 그 금액은 평균적으로 1파운드(약 1,500원)가 안 되는 금액이었다. 쓰지 말고 모아볼까? 모아서 교통비로 쓸까? 어떻게 하면 팁을 잘 사용할까 생각하다 그것도 멈추고 마음 가는 대로 사용했는데 타깃은 주로 마트였다. 그나마 내가 런던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저렴한 마트 가격 덕분이었고, 종종 팁으로 마트에서 무언가를 살 때가 많았다. 어떤 날엔 필요한 식자재를, 어떤 날엔 하루 피곤을 풀어 줄 주전부리를.


여느 때와 다름없던 퇴근 후 어느 날, 주머니에서 짤랑이는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며 마트로 들어가 오렌지 두 개를 사서 나왔다. 오렌지 한 개에 40 페니(약 600원). 집으로 들어와 씻고 침대 위에서 오렌지를 먹으며 그날 하루의 피곤함을 씻었던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 행복했다.



1파운드도 안 되는 팁으로 오렌지 두 개를 사 먹으며, 적은 돈도 알차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배워서. 점점 가난으로부터 자유 해지는 것 같아서. 가난의 뒤에서 숨는 게 아니라 가난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기도 하고, 조금 모아 교통비로 쓰기도 하고, 나중에는 나를 위한 선물을 사기도 하며. 나는 팁으로 나의 작은 행복을 구매했다.





2. 도보 50분 걸으며 나만 만들 수 있는 추억 쌓기.

이놈의 런던은 교통비도 어찌 그렇게 비싼지. 우리 집과 카페까지는 고작 튜브(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였고 들어가는 교통비도 가장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게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무시 못할 가격이 아닌가. 나는 그 돈까지도 아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건 걸을 수 있는 날엔 출퇴근길 걸어 다니기. 물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처음으로 걸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날, 집에서부터 카페까지의 거리를 구글맵으로 확인해보니 도보로 약 50분 정도가 걸린다고 나왔다.


구글맵 위 파란선을 따라 걸어갔던 첫 도보 길은 생각보다 괜찮아서 그 뒤로도 나는 종종 걷고 또 걸었다. 그 길이 익숙해지니 어느새 지도를 보지 않고 풍경을 즐기게 되었는데 그 시간들이 나에게 소중하게 남겨졌다. 생각해보니 겸사겸사였다. 돈도 아끼고 풍경도 즐기고 게다가 유산소 운동도 되니.


어떤 날엔 다른 길로도 걸어가 보며 동네를 구경하고, 공원을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집집마다 꾸며놓은 현관 장식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해가 떠 있는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겨울에서 봄이 되면 그 길은 알록달록 해졌는데 때가 되어 피어있는 꽃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개나리, 겹벚꽃, 이름 모를 보라색 꽃, 장미 등등.




퇴근길에 걷는 건 같은 길이어도 더 상쾌했다. 언젠가는 잔나비의 노래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들으며 그 길을 걸었다. 4월의 어느 밤에 듣고 느꼈던 기타 소리, 보컬의 목소리, 봄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의 소리, 런던의 공기는 노트에 선명히 적힌 글씨처럼 아직도 선명하다.


교통비 아껴보자는 마음에 걸었던 출퇴근 길은 돌아보니 나만의 추억으로 물들어있다.




3. 더 의미 있는 것에 돈쓰기

내가 악착같이 아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기 위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나를 꾸미는 것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옷이며 신발이며 화장품이며 한국에서 잔뜩 가져온 것들로 닳고 닳을 때까지 썼다. 시간이 더 지나 여유가 더 생겼을 때 조금씩 사기는 했지만, 되도록이면 사지 않는 방향으로 내 물욕을 누르고 눌렀다.


대신 그 돈을 다른 곳에 썼다. 바로 여행, 책상 위 화병에 꽂아두는 꽃, 그리고 가끔씩 갤러리에서 잔뜩 사는 엽서. 먼저 여행. 큰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니던 거지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타국살이에 지친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그래서 포기할 수가 없었고 다녔던 여행마다 영감을 받았으며, 여행하는 그 순간만큼은 어딘가에 몰두해있는 사람처럼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러니 아끼고 아껴서라도 여기에 돈을 쓸 수밖에.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큰 맘먹고 사는 꽃 한 단. 이번엔 튤립을 살까. 지난번엔 빨간 튤립 샀으니까 이번엔 노란 걸 살까. 오 이걸 미스티라고 하는구나. 이번엔 미스티를 사야겠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꽃 한 단을 에코백에 무심히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행복했다. 꽃을 다듬고 물이 담긴 화병에 내 방식대로 꽃을 넣을 때도. 엉성하게 둔 꽃이 화병 안에서 어여쁘게 자리 잡은 걸 바라보는 그다음 날에도. 그리고 미술관. 유럽으로 건너온 후로는 미술관을 가는 게 좋았다. 종종 내셔널 갤러리를 가거나 혹은 여행 중에 미술관을 갈 때마다 나는 숍에서 엽서를 잔뜩 샀다. (아마 돈이 더 넉넉했다면 포스터도 사고 무언가를 더 샀을 지도.) 내가 전혀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순간. 내 짐꾸러미 중, 엽서가 한 뭉치로 들어 있는 종이봉투는 내 재산이 되었다.


Very first Paris, 2018
Flowers in my room, 2019



이렇게 써놓고 보니 조금 짠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너무 귀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저때의 연습(?) 덕분인지 나는 이제 더 이상 가난의 뒤에서 숨지 않게 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확신한다. 나는 끝내 오랫동안 내 곁에 있던 가난과 작별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