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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Oct 26. 2020

이곳에선 마음껏 느려도 돼

나의 안식처, 나의 요새.




1.


서울에서 학원 선생님이었던 시절, 그때 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도시를 돌아다녔다. 학원과 집, 그리고 영어학원의 위치가 나를 돌아다니게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구석구석 다니는 게 좋았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에도 이곳저곳에서 만나곤 했다. 가보고 싶은 곳은 저장을 해두었다가 틈이 날 때면 가보곤 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도시를 누렸던 것이다.


'아휴 분명 좋은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바쁘고 빠르네 힘들다.'


그러나 자주 힘이 부쳤고 휴무일 중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온전히 집에 있어야만 충전이 되었다. 어떤 날엔 나가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계획까지 했는데 이불 바깥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서 일정을 취소할 때도 있었다. 건강염려증(?)이 조금 있던 나는 어디가 아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에너지가 방전되었던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사실 지금도 에너지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건 연습 중이다.)


그런 채로 나는 고스란히, 런던으로 넘어왔다. 아뿔싸, 나는 왜 런던이 서울보다 느린 속도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오산이었다. 런던은 대도시인데... 뉴욕, 파리 같이 내로라하는 대도시 리스트에 코웃음을 치듯 사뿐히 올라가 있는 그 런던 말이다! 그 대도시의 특징이라 하면 이거 아닐까. 바로 내가 간과했던 것 말이다.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치열한가. 누가 더 열심히 사나. 누가 더 성장하나.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 걷다 보면 너무나 쉽게 보이는 무표정의 얼굴들, 회색인지 갈색인지 알 수 없는 템즈 강의 색깔, 출퇴근 길 서울의 지옥철보다 더 심한 지옥 튜브, 그리고 텁텁하고 콧 속까지 느껴질 만큼 건조한 튜브(지하철)의 공기.



"도로시, 더 빨리 만들어야 해. 그리고 손님도 조금 더 빨리 받아. "


게다가 나는 바리스타. 일을 하는 동안은 정신을 바짝 차리면 안 될 만큼 바쁘고 또 바쁜 직업. 강도가 높은 육체노동과 불규칙한 수면 패턴은 덤. 이쯤이면 언제 넉다운했나 싶을 정도다. 내 느린 템포로만 있다가 나는 나가떨어지기 분명했다. 그곳에서 먹고살려면, 그러려면, 에너지를 써가며 속도를 내야만 했다.  


아 나는 정말 쉽게 지치고 피곤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당 충전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그도 안되면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거나. 그래서 휴무일마다 런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보다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도 서울에서 살 땐 이 정도로 집에 처박혀 있진 않았는데.


그러나 다행이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난 분명 런던을 당장 나왔을지도 몰라. 바로 내가 내 방말 고도 충분히 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여러 군데나!





2.


"이곳에 공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곳은 바로 공원이었다.


빠르게 움직여서 나를 재촉하기만 하는 그 도시에서, 내가 오롯이 나의 속도와 시간을 잡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혼자 사색을 하는 사람, 책을 읽거나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사람, 강아지와 혹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산책하는 사람, 피크닉을 하는 사람, 무리 지어 쾌활하게 노는 사람들 등. 런더너들에게 공원은 삶의 일부였고, 어느새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나의 안식처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일하는 게 버거울 때,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 몸과 마음이 둘 다 지쳐서 집에서 쉬는 것만으로 충전이 되지 않을 때, 가끔은 향수병에, 가끔은 외로움에 사무칠 때, 글자로 정확히 적을 수 없는 것으로 눈물이 솟구칠 때, 그냥 혼자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광합성을 하고 싶을 때, 바깥에서 운동하고 싶을 때, 어떨 때는 아무 이유 가 없이 그냥 공원이 가고 싶어서.







3.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원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곳에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를수록 나는 마음을 놓을 준비를 했다. 한껏 긴장했던 끈을 느슨하게 푸는 것이다.

'아아 공원이다 드디어.' 벌써부터 쉬는 것 같다. 사각사각, 나의 발소리는 누가 들어도 설렘 그 자체다. 그 느낌 그대로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채도와 명도가 각기 다른 초록들이 넘실대며 소곤소곤, 나를 불렀다.



"도로시~ 기다렸어! 반가워."




바람소리, 그래서 사르르 느껴지는 나뭇잎 소리, 시냇가 쪼르르 물소리, 햇빛에 반짝이는 모든 것의 소리, 새소리, 그 안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의 소리. 나에겐 그 모든 것이 백색소음이었다. 음악을 듣는 내가 그 순간만큼은 재생이 아닌 정지 버튼을 누르고 공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큼.  


공원은 곧 나의 안식처이자 요새였다.


그곳에서만큼은 내 마음대로 내 걸음 속도를 정할 수 있다.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멈추고 싶을 땐 멈춘다. 누구 하나 다그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나를 쉬게 했다. 나는 그제야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내 속도를 되찾고 이내 차분해졌다. 어디선가 고요함이 나를 감싸는 것 같은 느낌. 내면 어딘가에 분명 빨간 경고 빛이 울렸는데 이내 사라진다. 충전 중.





노트와 펜을 들고 갈 때면 온갖 잡념들을 빈 종이에 쏟아내었다. 그때 들리는 건 공원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자연의 소리와, 사각대며 글씨가 적히는 소리뿐이다. 무언가를 일부러 떠올리며 적지 않는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을 쏟는 작업일 뿐이다. 적었다. 그리고 이내 노트 위엔 눈물이 몇 방울씩 떨어졌다.


나는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이야기와 그 안에 얽혀있는 나의 복잡한 감정들을 쏟아내었고 공원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런 나를, 그것도 매번, 받아주었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공원에서, 그 자연의 품 안에서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도시 생활에 지쳐 구겨진 마음도 빳빳하게 다시 다림질했던 것이다. 나의 에너지 통은 곧 초록색 빛을 띤다. 충전 완료. 그리고 나는 다시 씩씩해진 발걸음으로 집에 갔다.



-

런던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곳에선 당연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 받아들여지는 것. 충전을 하고,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되는 것. 그만큼 영감을 받는 것. 그리고 나를 발견하는 것.


그러니까 나는 공원에서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템포가 느린 사람,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는 사람.

갖고 있는 에너지가 많지 않은데 그것을 자연 안에서 충전할 수 있는 사람.


공원. 런던의 공원들. 그 품은 꼭 부모 같아서. 그래서 어리고 미숙한 내가 그 어마 무시한 대도시에서도 점차 적응을 했고, 긴장을 풀고 즐길 수도 있게 되었던 거다. 런던에 공원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가늠이 안 되는 상상이다.


아, 나의 공원들. 내가 자주 갔던 공원들이 너무 그립다. 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내 마음을 풀어놓고 싶어라. 나는 런던의 공원을 사랑했고, 지금도 몹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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