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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Nov 04. 2020

나를 오슬로로 데려가 줘

프롤로그 , 배경음악과 여행 기억의 상관관계  



나를 오슬로로 데려가 줘.



시리야~ 하고 아이폰에 대고 무언가를 말하면 바로 반응을 하듯 나도 나의 음악 어플에 이렇게 말해본다면?


어플은 아무 말도 없이 음악 한 곡을 내게 들려줄 것이다. 수많은 곡이 있는 나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한곡이 화면에 뜨겠지. 곧이어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고 이내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거야 분명.


I wanna be with you

Oh I, I wanna be with you

Through the rain and snow I wanna be with you


그래 그거! 맞아 그거야. 그리고 나의 감탄사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멜로디는 곧장 나를 오슬로로 데려갈 것이다. 정확히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 옆 바다가 있는 둑으로. 생생해질 것이다. 장면이. 음악 소리와 바닷소리가. 차가운 공기와 햇빛이. 그러니까 그 여행의 순간이.


 

몇 개월 전, 오슬로로 짧게 여행을 갔던 날.  나는 그 둑에 걸터앉아 그곳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 노래를 들었다. 그 곡은 바로 검정치마의 <International love song>. 아무 생각 없이 틀었던 이 노래는 그곳의 바다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나는 순식간에 그 순간에 머물렀다.  



왠지 앞으로 이 곡을 들으면 여기가 생각날 것 같아.



그 말은 진짜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무 이유 없이 이 곡의 시작을 알리는 기타 소리가 따라라란, 하고 들리면 내 머릿속 어떤 화면엔 동시에 오슬로의 출렁이던 바다가, 그 위에 찰랑이던 윤슬이 찰랑찰랑, 하고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들어버린 여행의 순간을 더 또렷하고 길게 기억하는 방법.  

 

 

여행을 할 때마다 몰입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 그때마다 늘 어떤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늘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했으니까. 몰입을 할 때면, 내 안에서 마치 장면이 사진처럼 찰칵, 하고 찍힌다. 하얀 와이셔츠에 톡, 하고 선명하게 남겨진 커피 자국처럼. 그리고 그 순간에 들었던 그 음악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나를 톡톡 건드리고 여행을 했던 그때로 순간이동시킨다. 그러면 단번에 그 여행이 눈 앞에 그려진다. 내가 바라보았던 풍경과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까지.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정보를 찾아보았다. 대충 검색창에 <감각과 기억>이라고 검색을 했는데 어머나, 진짜 찾았다. 내가 찾은 건, 감각 기억이었다.



감각 기억

이것으로 내 여행 기억 방법을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오감을 통해 자극을 스냅숏처럼 순간적으로 저장해 매우 짧게 기억하는데 이것이 '감각 기억'의 기능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극이 사라진 후에도 이 자극을 기억해서 특징을 감지한다고. 이걸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면 내 여행의 순간은 '음악을 들었던 그 찰나의 감각과 기억'보다 더 길게 남아있으니까. 그렇다면 순간을 찰칵, 하고 저장하는 이 짧은 감각 기억이 어떻게 그 후에도 떠오를 수 있는 걸까? 기억이 길게 저장되려면 분명 그 이후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후에는 뇌가 '의미'와 '쓸모'가 있을 거라고 판단되는 기억들만 선별해 단기 기억(그리고 그 후의 과정을 거치면 장기기억이 된다고 한다.)으로 저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감각 기억은 소실되며, 이 과정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고.


나의 여행엔 수많은 장면들이 있는데 어떻게 몇몇의 특정 순간들만 음악을 통해 더 선명하게 기억이 되는 걸까? 지워진 장면에도 음악이 있던 적이 있을 텐데. 다시 말해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여행의 순간들은 어떻게 단기 기억으로, 더 긴 기억으로 저장이 된 걸까? 웃기지만 그 이유는 나의 뇌만 안다는 거다.


의미가 있고 쓸모가 있을 거라고 판단되는 기억들만 선별했다고 했지?



맞아, 기억나는 여행의 찰나를 모아 보면 나에게 다 의미가 있는 순간들이었다.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오롯이 나로서, 그 순간에 몰입했던 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쓸모는? 쓸모라. 쓸모라는 건 쓸만한 가치라는 건데. 아마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사용하라고 뇌가 기억을 해둔 걸까. 쓰라고. 글로 쓰라고.


프롤로그를 쓰기 전, 나를 여행의 순간으로 데려가는 곡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글로 엮을만한 장면을 불러일으키는 곡들을 추리고 또 추려보니 열여섯 곡이 모아졌다. 리스트의 제목은 <나를 여행지로 데려다줘>. 리스트의 순서대로 개요를 썼다. 그리고 이 프롤로그를 쓰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타자를 치며 곡이 다른 곡으로 넘어갈 때면 동시에 어떤 여행에서 다른 어떤 여행으로 휘리릭, 장면이 전환되었다. 오슬로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치앙마이로. 아 흥미로운 경험이다.



멜로디가 함께해서 더 풍부했던 나의 여행. 오롯이 나로서 몰입했고 그래서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 그 순간들을, 그리고 그때 배경음악이 되었던 곡들을 앞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나의 뇌가 의미와 쓸모를 위해 그 찰나를 더 긴 기억으로 남겨둔 거라면, 그런 거라면 나는 그 기억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써야 한다. 그래서 장기기억이 되도록. 아주 오랫동안 두고두고 남도록 말이다.







감각 기억은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정보들과 그로부터 흘러들어온 자극들을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기억하고, 이후의 과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의 오감을 통해 입력된 자극들을 마치 스냅숏(snapshot)과 같이 순간적으로 저장하여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기억하는 것이 감각 기억의 기능이다. 감각 기억은 자극이 사라진 후에도 자극을 기억하며 그 특징들을 감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각 기억은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과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하지만, 감각기를 통해 입력된 수많은 정보들이 감각 기억을 거쳐 단기 기억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주의(attension)의 과정이 필요하다. 즉, 많은 정보들이 감각 기억을 통해 1~4초 정도 저장되지만 그중 이후에도 의미와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기억들만이 단기 기억으로 저장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소실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 기억의 처리 과정은 의식적인 노력보다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며, 다른 종류의 기억들과는 달리 시연(rehearsal)에 의해서 연장되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감각 기억 [Sensory Memory, 感覺記憶]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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