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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Nov 05. 2020

문장 완성검사로 보는 나의 변화    

달라진 내 모습, 마음에 드는군!



1.


친구 덕분에 좋은 기회로 8주 동안 무료로 코칭 상담을 받게 되었다. 몇 주전, 신청서를 써낸 후 담당 선생님이랑 연락을 주고받으며 코칭 시간을 정했다. 11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코칭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신청서를 제출할 때부터 나는 기대가 되었다. 왠지 나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아가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8주가 지난 후 나는 어떤 것을 얻게 될까?


첫 번째 코칭 시간은 맨 얼굴에 색을 띤 립밤을 조금 바르고 내 방 컴퓨터 앞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조금 어색한 듯 편안하게 화면으로 만난 것이었다. 50분 동안 선생님은 미리 제출한 직업상담 검사 결과를 해석해주셨다. 빈 노트에 듣고 있던 말들을 받아 적으며 나는, 8주의 시간이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첫 시간이 끝난 후, 그다음 시간에 대해 안내를 해주셨다. 앞으로 여러 개의 검사를 하게 될 것이고, 그중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검사는 바로 문장 완성검사였다.


문장 완성검사는 50개의 미완성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뒤에 생략된 부분을 자유롭게 적어서 제출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곧장 검사지 파일을 내게 보내셨다. 파일을 열어보니 익숙한 문장들이 나를 반겼다.



'어? 3년 전에 했던 거네?'


 

3년 전, 간이식 수술을 앞두고 필수적으로 정신과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나는 그때 이 검사를 했다. 검사지를 집에서 숙제처럼 한 후 병원에 제출하는 거였는데 50개의 문장을 완성하는 게 꽤 흥미로웠던 나는 그 검사지를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그래서 3년 전에 내가 어떤 답을 적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그 검사를 바로 오늘 또 했고, 한번 해서 그런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을 자유자재로 완성해가면서, 3년 전 내가 했던 답변을 다시 찾아보며, 기분이 묘했다.






"너네 언니가 달라졌어~"

"엄마, 엄마가 봐도 내가 달라진 것 같아?"

"응. 생각하는 게 조금 바뀐 거 같아."


귀국을 한 후 오랜만에 부모님과 부대껴 살면서 그들은 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도대체 뭐가 달라졌다는 건지 생각이라면 무슨 생각이 달라진 건지 나는 아리송했다. 그 아리송한 무엇은 50개의 문장을 완성해가면서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분이 묘했다. 두 눈으로 확연히 보여서.






2.


검사지에 있던 몇 가지의 문장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뒤가 써지지 않은 문장들에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다르게 답했다. (a는 3년 전, 그리고 b는 오늘 쓴 답변이다.)



#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을 때 _________________

a. '혼란스럽다.'

b. '혼란스러워하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행동한다.'

 


# 나의 장래는 ______________________

a. 찾아가는 중이다.

b. 내가 노력한다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잊고 싶은 것은 ___________________

a. 지난날의 후회.

b. 없다. (그만한 것은 벌써 잊은 듯.)



#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으려면 _____________________

a. 현재에 만족하는 것.

b.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야 한다.



# 행운이 나를 외면했을 때 ______________________

a. 기분이 더럽지만 언젠가 나에게 오겠지.

b. 다음에 올 행운을 잡을 준비를 한다.



# 때때로 두려운 생각이 나를 휩싸일 때__________________

a. 내 생활이 망가진다.

b. 심호흡을 하거나 나가서 뛴다.



# 아버지와 나는 _____________

a. 각별하다.

b. 떨어져야 한다.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해석하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느껴졌다. 진짜 내가 달라진 게. 나는 놀란 채 아주 잠깐, 자문자답을 했다.


3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지?  

아 런던에 갔다 왔지.


맞아. 그 사이 나는 런던에 갔다 왔다. 바다 건너 저편, 말이 안 통하는 그곳에서 나의 삶을 꾸려본 그 경험은 말 그대로 큰 일이었는데 그 시간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 그 전의 글에도 썼듯이 내가 자란 것이다. 아직은 나로서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 두려움이 많고 수동적이었던 내가, 지나간 후회만 붙잡고 있던 내가 어떻게든 독립을 하려고, 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나로. 지나간 후회는 다 쓸모없으니 내게 다가올 앞으로를 준비하는 나로.


그렇게 달라진 거라면, 나는 나의 변화가 몹시 기쁘다. 맞아, 난 지금의 내가 더 좋거든.  



아! 모든 문장들이 바뀐 건 아니다. 그러니까 여전한 문장들이 있다.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다.'

내가 보는 나의 앞날은 '힘들겠지만 기어코 얻어내는 것들이 아름다울 것이다.'

내가 없을 때 친구들은 '내 얘기를 하며 웃겠지.'


내가 늙으면 '젊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어있을 거야.'



여전히 나는 나여서,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나여서, 아마 내 친구들은 내 얘기를 하면서 웃을 것 같고. (그러면 좋을 거 같아.) 언제나, 여전히, 늘, 어쩔 수 없이, 나는 나여서,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할머니를 꿈꾼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바라고 꿈꾸는 모습은 여전히 나스럽다.

다시 3년이 지나 이 검사를 또 해봐야겠다. 그때는 몇 개의 문장들이 달라질까?

지금과는 또 달라진 나의 모습이, 더 자라난 내가 그때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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