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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17. 2019

어떤 문장들은

영영 맛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문장은 완전히 상해버렸다. 냉장고 속에서 묵은 쉰내를 풍기며 썩어갔다.


어떤 문장은 초라하고 식상했다. 누구나 다 아는 맛이었고 아무도 찾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익숙하고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할 수는 없었다. 어떤 문장은 별볼일 없었다 특별한 것도 식상한 것도 없이 무난했다. 어떤 문장들은 그랬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아서 어디에나 쑤셔넣을 수 있었지만 어디에 넣지 않아도 무방했다. 어떤 문장들은 또 금방 사라졌다. 마치 첫 눈이 내려서 손가락 끝에 닿은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녹아 사라졌다. 어떤 문장들은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새의 깃털처럼 팔짝팔짝 뛰어도 저 하늘 저 편으로 살랑살랑 멀어지고 사라졌다. 어떤 문장들은 그랬다 어떤 문장들은. 어떤 문장들은 완전히 무거워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들어 올리려고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그래도 기어이 옮겨 놓으면 마음이 흡족했다. 두고두고 끓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추만 넣은 스프처럼 마법 같은 문장도 있었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정말 맞을까? 뒤적이면 어디선가 훔쳐 온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실망스러웠다.


어떤 문장은 너무 아팠다.


만질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문장을 오랫동안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바라보았다.


너는 어디서 온 거니. 조용히 물어보았다. 왜 나에게 온 거니. 대답은 없었다. 문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문장은 항상 아팠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혓바닥은 항상 찔려 피가 났고 비린 맛이 너의 맛은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아픈 맛이었다. 통증은 감각이었다. 매운 맛은 통증이라고 했다. 너는 매운 문장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울게 만드는구나. 나는 생각하고, 삼켜내려 애를 썼다. 목이 아팠다. 오랫동안 소리를 지른 것처럼 아팠다. 아픔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는 있었다. 견뎌낼 수는 있었다. 다만 견뎌내는 것이 답인가 싶었다. 이렇게 견뎌내기만 하면 무엇이 해결되나 싶었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는데 그저 아프기만 한 것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뱉을 수는 없었다. 나의 것이었기에. 더 이상 주변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에. 타액으로 젖고 피로 물든 문장을 뱉어 주위를 어지럽힐 수는 없었기에 나는 삼켰다. 결국 삼켰다.


어떤 문장은 정말 달았다.


어떤 문장은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허락해주고 모든 것을 괜찮다고 말해주고 모든 것이 다 나아질 것 같았다. 설탕 과자처럼 달콤한 문장을 오래 씹고 싶었지만 혀 끝에 닿으면 금방 녹아 사라지고 삼키면 뱃속에서 없어졌다. 단 맛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그리움을 씹었다. 어떤 문장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맛이었지만 좀처럼 맛을 기억해 낼 수는 없었다. 어금니를 잘근거리면 묵직한 통증이 뺨을 간지럽혔다. 맛은 없었다. 통증은 고통일까.


평생을 달콤한 것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중독되는 것이 있었다. 단 맛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기력해졌다. 달콤한 것에만 취해 살고 싶었다.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달아날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달아나고 싶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는 달콤하였으나 책임은 무거웠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나를 붙잡았다. 달아날 수 없다고. 갈 수 없다고. 가면 안 된다고. 나는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덫에 걸린 줄 알았는데, 내가 놓은 것들이었다. 내가 내 발목에 매달아 놓은 것들이었다. 가라앉기 위해서가 아니라,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저 위로 가지 않기 위해서 내가 묶어 놓은 것들이었다.


어떤 문장들은 그렇게 무거웠고 묵어야만 했다.


어떤 문장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어떤 문장들은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안녕히.


어떤 문장들은 그래.


영원히 안녕이라고 말할까? 내가 너를 위해 쓴 문장들이 있는데, 들어 보지 않을 거니? 어떤 문장들은 오직 너를 그리워하기 위해서만 쓰였다. 너는 영영 듣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스쳐지나가는 순간 너를 지나가는 문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문장이 너에게 어떤 맛이 되고 어떤 존재가 될지 모르겠다. 무엇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쓴다. 너에게 닿고 싶어서, 너에게 이 문장이 닿으면 좋겠다. 네가 나를 떠올려 주면 좋겠다. 네가 나를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 정확히 나라는 것을 알지는 못해도 그 과거 언젠가 애매하게 그런 적이 있었다고 나를 모호하게라도 떠올려 주면 좋겠다. 그랬었지.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니까. 나는 그럼 만족할 테니까.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문장들을 그만 쓸 수 있게 될 테니까. 어떤 문장들은 사라지는 법을 모른다. 어떤 문장들은. 어떤 문장들은 영영 떠돌아 다닐 것이다. 너를 찾아서. 너에게 닿기 위해서. 너에게 닿을 때까지 영원히 돌아 다닐 것이다. 나는 그러라고 자꾸만 문장들을 입김처럼 불어 보낸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문장들 중에서 그 무엇이라도 너에게 닿길 바라며.


영원히 안녕이야. 그렇게 말하면 정말로 안녕이 될까.


이제 작별이라고 말하면 너를 보낼 수 있을까.


그럼 내 문장은 끝이 날까. 나는 기어이 너를 또 해묵은 너를 또 끄집어 내서 맛을 본다. 아직 상하지는 않았다. 그럼 됐잖아. 삼킬 수 있잖아. 나는 또 혀를 내밀고 혀 끝으로 맛을 본다. 너는 아직 상하지 않았고 나는 그래서 너를 우려 먹는다. 갓 우린 너는 뜨겁고 끈끈하다. 뜨끈하다. 어떤 문장들은 아주 뜨거워서 혀를 다 데고 입천장이 다 벗겨지게 만들었다. 혀가 뻣뻣해졌다. 그래도 삼켰다. 한 번 데이고 나면 그 다음은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다. 너를 그렇게 먹었다. 혀가 뻣뻣해져도 먹었다. 그러면 너는 없어질까. 나는 또 너를 끓여낸다.


너는 끝도 없이 나에게 훼손되는 중이다.


어떤 문장들은 오로지 훼손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나는 또 너를 훼손하고 망치고 망가뜨리고 일그러뜨리고 기어이 칠해서 또 덮어서 원래의 너는 무엇으로 긁어도 무엇으로 파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너를 우린다. 너는 또 나를 울린다. 이런 식으로 나는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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