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향기로운 인간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향기가 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향기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향기 나는 사람이 아니라서 향수를 덕지덕지 뿌렸다. 그래서 향기가 났고, 향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서는 악취가 났고, 그래서 향수를 덕지덕지 뿌려야만 했다. 악취가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향수를 뿌렸다.
그 사람은 나에게 향기가 난다고 말해주었다.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나는 담배를 비뚜름하게 물고 웃었다. 나에게서는 악취밖에 나지 않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말해 준 네가 고마워서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얀 연기만 뿜었다. 입김과 섞여 희고 푸른 연기가 스며나왔다. 나는 연기를 뱉으면서 무엇이 타길래 이렇게 흰 연기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 무언가 태우면 항상 검은 연기가 났다. 검은 연기는 타닥타닥 허공으로 스며들어갔다. 타고 남은 것들은 까맣게 뭉쳐 재가 되었고 나는 잿더미를 발로 찼다. 아무렇게나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뭐가 이렇게 탔을까 생각했다. 쓰고 남은 것들. 쓰레기들을 태우고 남았다. 이렇게 악취가 나는 거구나. 쓰레기를 태워서 이렇게 악취가 나는 거구나. 그래서 이렇게 지저분하고 더럽구나. 불은 참 예뻤는데, 연기는 참 아련했는데 정작 이런 것들을 태운 것이었구나. 무엇이든 태우면 아름다워지는구나. 이런 쓰레기도 탈 수는 있구나. 나는 탈 수 있을까. 나도 타오르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향기는 못 뱉어도 연기는 뱉을 수 있을까.
너는 나에게서 향기가 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네가 더 향긋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정말 향기로웠으니까. 나에게서 나는 향기는 가짜였다. 나는 가짜 향기를 덧쓰고 억지로 이건 내 것이라고 우겼다. 언젠가는 나도 향기로운 어른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으나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망연하기만 한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향긋한 인간은 될 수 없겠지. 악취 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에게서 나는 것은 악취 뿐인 것 같다. 나오는 것이 전부 이 모양이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다 그렇지 뭐. 허무하게 웃는다. 뿜어져 나오는 것이 그냥 이런 것들이지. 악취와 악몽. 악연과 악당. 악몽 같은 악당들.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 견디기. 악취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향긋하고 고고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고고한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지금 나는 바닥에 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추한 몰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지저분한 곳에서 가장 나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 같다. 이 끈적함.
너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나에게서 악취가 날까봐 두려워.
그리고 네가 나를 피해 달아날 까봐 두려워. 너는 악취가 나는 인간이구나, 라고 말할 까봐 두려워. 너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내게서 나는 악취를 네가 눈치채 버릴 까봐 무섭기 때문이야. 평생 너는 내 악취를 모르면 좋겠는데. 내 악몽을 모르면 좋겠는데. 나를 모르면 좋겠는데. 내 속, 내 마음, 내 안쪽 따위는 아무것도 모르면 좋겠는데.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쓰레기장 같은 곳을. 불을 지를 수도 없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불을 질러서 모든 것을 없애 버릴 수도 없어. 그저 쌓이고 버려진 내 안쪽을 너는 모르면 좋겠는데. 나를 겉으로만 핥아 줘. 나를 겉으로만 알아 줘. 나를 겉으로만 봐 줘. 그나마 볼만하게 꾸민 바깥을. 너는. 너를. 나는.
평생을 우리는 겉만 알고 지내자.
궁핍한 속을 보여주지 말자. 빈곤하고 빈궁한 나의 속은 어떤 값진 것도 없고. 어떤 값어치도 없어서 차마 꺼내 보이기 힘든 나의 속을 너는 알지 말자. 이 곳은 씨앗도 죽어가는 황무지보다 삭막한 곳. 바람도 휘몰아가지 않아서 악취가 고이고 고이는 우물. 나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오물들. 이런 속을 보여 줄 수는 없다. 이런 속을 꺼내 보일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에게 향기가 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