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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21. 2019

언니는 볼품없는 글을 썼다.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글이라고 했다. 







언니는 같잖은 글을 썼는데, 대체로 재미가 없었다. 



언니는 글을 누군가에게 좀처럼 꺼내 놓지를 않았다. 혼자 쓰고 혼자 읽었다. 그렇게 해서 뭐가 되려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만족용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써서 무엇을 하겠다고. 언니의 글은 형편없었다. 글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언니는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지 않았고, 그것은 누구에게도 읽고 싶은 글이 되지 못했다. 그런 식이다. 누구를 위해 쓴 글이 아니므로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은 것. 만약 언니가 아픈 자들을 위한 글을 썼다면 그 글은 아픈 자들에게 읽혔을 것이다. 슬픈 자를 위해 글을 썼다면 슬픈 자들이 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니의 글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자기에게도 읽히지 않았다. 언니는 자신의 글을 다시 읽지 않았다. 못 써서 그래. 희미하게 웃었다. 언니는 못 쓴 글은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럼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할 글은 쓰여진 의미가 없는가? 



의미 없는 글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아무 의미도 담지 못한 글이 있을 수도 있지. 무슨 의미를 담으려다가 실패한 글이 있을 수도 있지. 담았는데 쏟아져버린 글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깨진 그릇처럼. 처음에는 뭔가를 담고 있었는데 그게 줄줄 새어 나갔는지도 모르잖아. 혹은 산소통처럼.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의미를 담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잖아. 그런 글이 있을 수도 있잖아. 언니는 그런 변명을 하지 못했다. 언니는 그냥 못 쓴 글이야. 중얼거리고 말았다. 내 글은 누가 읽을 만한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를 조각 내고 폄하하면서 상처 입혔다. 글은 조각나고 폄하되고 상처 입었다. 언니처럼 생겼다, 언니가 쓴 글은. 꼭 닮았다. 



그래서 언니는 말했다.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을 거야. 



이런 나를 누가 원하겠어. 누구보다 사랑을 바라면서 언니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누군가 나를 원할 리가 없잖아. 나도 내 글을 원하지 않는데. 원하지 않는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슬픈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원하지 않은 선물은 언제나 처치 곤란이었다. 표정도 곤란해졌다. 선물을 준 사람은 결코 나쁘지 않았는데 우리는 슬퍼지고 힘들어졌다. 기쁜 표정을 억지로 꾸며 내야 했다. 선물은 금방 잊혀지곤 했다. 어딘가에 얼룩처럼 남은 선물은 눈길이 닿을 때마다 아. 하고 짧은 신음을 내게 했다. 원하지 않는 선물은 그런 식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 선물은 그런 식이었다. 언니는 자신을 그런 것에 비유하곤 했다. 나는 쓰레기라는 말보다 훨씬 와닿지 않아? 언니는 희미하게 웃었다. 언니는 이해 받기 힘든 부류였다. 너무 우울해서, 우울해서. 슬퍼서, 슬퍼서. 가라앉아서, 가라앉아서.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람. 다른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 그렇지만 누가 언니를 보살피려 할 것인가. 누구도 언니를 사랑하지 않고 누구도 언니의 글을 원하지 않는데. 



언니는 보통 볼품없었다. 



볼품없는 글은 그래서 나왔다. 앙상한 글을 보면서 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니는 가끔 자신이 글을 썼던 공책을 펼쳐 보곤 했다. 그리고 얼마 읽지 않고 덮어 버렸다. 어느 부분을 읽고 만족을 했을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해서 덮은 걸까. 언니는 왜 공책을 뒤적거렸을까. 나는 가끔 궁금했다. 왜 자기 만족으로 쓴 글은 자기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쓴 글은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버려진 것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언니는 스스로를 어디에 버리려고 자꾸만 가는 걸까. 사라져 가는 걸까. 



언니는 글을 썼는데, 가끔은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나는 글을 써. 그게 나를 존재하게 해. 라고 말했다. 마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았다. 글을 쓰기 때문에 존재하는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어. 이게 나를 존재하게 해. 언니는 혼자 쓴 글을 읽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내 존재 의미야. 그렇지만 언니, 그건 누구에게도 언니를 의미 있게 만들지 못하잖아. 나는 말했고 언니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살면서 누군가 필요하긴 하더라. 나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니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분명히 삶에는 누군가 필요했다. 언니는 그걸 잘 알고 있어서 글을 썼다. 글이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처럼. 글은 무언가를 대신할 수 있을까? 언니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누군가 있잖아. 내 글을 읽어 주면 좋겠어. 언니는 누군가에게 글을 내밀어 주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글을 읽어 보라고 내밀지 않으면서 언니는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어 주길 바랐다. 그냥, 읽어 주고 누군가에게 남았으면 좋겠어. 어떻게 남았으면 좋겠어? 이런 글이 있구나, 하고 알아 주면 좋겠어. 그냥 그거면 충분해? 그거면 충분해. 아닐 거야. 언니.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야. 언니는 더 많은 걸 바라고 있잖아. 사랑받길 바라고 있잖아. 글로 사랑받는 게 언니의 꿈이잖아. 나는 찌르듯 뱉었고 언니는 듣지 않았다. 듣지 못했다. 들을 수 없었다.  



언니. 약은 잘 먹고 있어? 

여전히 슬퍼? 








약은 잘 먹고 있어. 



여전히 좀 슬퍼. 여전히 좀 우울하고. 조금 지친 채로 살아가고 있어. 산다는 게 그렇지 뭐.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과 같아. 보내준 글 잘 읽었어. 생각을 좀 해 봤어. 너는 항상 옳은 말을 하니까. 네 말은 항상 맞아. 핵심을 찔러. 그래서 나는 네가 쓴 글이 좋아. 너도 글을 쓰면 좋겠다. 너는 분명히 나보다 나은 작가가 될 테니까. 우리는 작가를 꿈꾸는 한 쌍의 자매가 되어서 서로에게 글을 보여주자. 내가 쓴 글은 너에게 보여주고, 네가 쓴 글은 나에게 보여주고. 우리는 그렇게 글을 쓰면 어떨까. 나는 아직 글을 쓰고 있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보여주고 싶어. 이런 글도 있다고, 이런 것도 글이라고. 이런 것도 글이라고 보여주고 싶어. 비웃는 것보다 무시당하는 게 슬퍼. 그렇지만 비웃음도 무시도 무서워하지 말아야 글을 쓸 수 있는 거겠지… 비평과 비난은 다르지만, 글을 읽어 주고 말을 해 주는 사람은 얼마나 번거로웠겠어. 그렇게 말해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거지… 귀 기울여 들어야 겠지. 말해주지 않고 무관심하게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말해 준다는 것이 감사하지. …그렇지 않니. 나는 잘 모르겠어. 나는 아직도 글을 어딘가에 꺼내 놓는 것이 무서워. 누가 뭐라고 할까봐, 혼이 날까봐. 겁이 나. 너는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잘 못하겠어. 그러니까 너는 나보다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요즘은 그렇게 지내.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읽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나는 새벽이 참 좋더라.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참 좋아. 너는 어떤 시간을 가장 좋아하니. 네가 좋아하는 시간이 궁금하다. 오들도 네가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행복하길 바랄게. 그 어느 순간이든 너에게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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