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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22. 2019

처음으로 고양이를 떠나 보냈을 때.

이름은 그냥 고양이. 너는 우리 집 고양이였다. 







삶에서의 상실은 흔하고 가까웠으면서 때로는 멀었다. 몇 가지 상실은 나를 구성했고 몇 가지 상실은 버려졌다. 몇 가지의 상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내려다보면 눈동자가 비쳤다. 너는 참 착했지. 몇 가지의 상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고 몇 가지의 상실은 무덤하게 지나갔다. 몇 가지의 상실은 나를 나이게 했고 몇 가지의 상실은 나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너는 참 착한 아이였지. 나는 생각한다. 앙상하게 마른 몸을 쓰다듬었을 때 만져지던 뼈. 한 번도 나를 깨물어 본 적 없었던 너는 참 착한 아이였고 나는 나쁜 주인이었다. 손바닥만 했던 너를 덥썩 주워 온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너를 키우겠다고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너와 함께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너를 예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너와의 시간을 추억하자면 나는 항상 부끄럽다. 넌 어른스러웠고 나는 아이 같았지. 마냥 예뻐하는 법 밖에 몰라서 좋은 것은 하나도 해 주지 못했다. 너는 많이 잤고, 나는 자는 너를 쓰다듬었다. 너는 괴롭다는 말 한 마디 할 줄 몰라서 자리를 피해 달아나는 법만 알아서 달아나는 너를 나는 쫓아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미안해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너와 무엇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나는 닿기를 원했고 어쩌면 정말 닿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오만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거둔다. 


천국에는 있다고 한다. 너희들이 가는 천국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서 너는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나를 기억은 할까. 나는 지금 너와 꼭 닮은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 아이는 너와 다른 점이 있고 너와 같은 점이 있고 또 비슷한 점이 있고 닮은 점이 있고. 완전히 다른 것도 있고 나는 가끔 너를 떠올린다. 어쩔 수 없이 너와 닮은 것만 찾게 되는 상실이다. 


내 처음이 너였으니까 어쩔 수 없다. 처음은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것에서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다. 내 처음은 너였고, 마지막도 아마 너일 것이다. 어쩌면 비슷한 것을 계속 찾게 되겠지. 비슷한 점을 계속 찾으면서 헤매겠지. 




첫 상실은 멀었다. 나는 너의 소식을 전해 듣기만 했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너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지친 네 몸을 나는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말라서 어떡해. 걱정하는 목소리로 쓰다듬는 나를 본 너는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처럼 내 앞에서 캔을 조금 먹어 보였다. 그게 너의 마지막이었고, 나의 마지막이었다. 너는 참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어. 나는 좋은 주인이 아니었고, 너는 좋은 아이였다. 지금도 나에게 너는 먹먹하고 거대한 슬픔으로 남아 있다. 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 나는 울고 싶어져서 너를 떠올린다. 울고 싶을 때 너를 떠올리면 너에게 받았던 거대한 사랑,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온전하고 맹목적인 사랑. 


다시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은 사랑. 


너는 천국에 간다고 했다. 천국에 가서 무엇을 얘기할까. 나는 좋은 주인이 아니었지. 더 좋은 것을 많이 해 줄 수 있었는데 해 주지 못했다. 아픈 너에게 나는 무엇도 해 주지 못했고. 너는 그냥 아팠지. 얼마나 아팠을까. 가끔은 멍하니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픔이란. 너의 아픔이란. 거대한 아픔이란. 너희들이 가는 천국에는 너희들이 가득할 거다. 나는 그 곳에 가고 싶지만 아마 갈 수 없을 것이다. 거기는 말 그대로 너희들이 가는 천국이니까. 나는 이 생에서 다시는 너와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명백한 사실을 떠올리면 울게 된다. 어떤 사실은 사실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울게 한다. 몇 가지 사실들이 나를 괴롭힌다. 진실. 사실. 명백하고 명명한 것들.  


묵직한 슬픔이 내려앉을 때, 그저 울고 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흘린 눈물만 말라붙어 가는데 나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걸 지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생각나는 마른 너의 앙상한 몸. 털가죽과 뼈밖에 남지 않았던 작고 따뜻한 몸. 손에는 들러붙어 있는 감촉이 선명하다. 나는 아직도 너를 만지고 있는 것처럼 선명히 기억을 더듬는다. 



네 사진을 모두 지웠어. 네가 너무 보고 싶을까봐. 



그러고 났더니 정말 네가 하나도 남지 않았어. 멍청했어.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 두면 더 슬퍼질 줄 알았어. 그런데 모르겠어. 더 슬퍼진 걸까 덜 슬퍼진 걸까. 네 사진을 보면서 우는 것과 네 사진을 떠올리면서 우는 것, 어느 쪽이 더 비참할까. 오랫동안 이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답을 낼 수 없었다. 나는 잘 한 걸까? 네가 알려주면 좋겠다. 네 생각에 나는 어때. 바보 같아? 아니면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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