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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25. 2019

고도를 기다리듯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문장을 찾았다. 오래 전에 핸드폰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던 노래를 찾았다. 과거의 내가 나에게 추천해주는, 꼭 내 취향에 맞는 노래.


잃어버린 노래를 찾았다. 덕분에 오늘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노래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나에게 위로를 전해준다. 혹은 슬픔을 전해준다. 혹은 우울을 전해준다. 덕분에 오늘은 글을 쓸 수 있다.



오지 않는 사랑에게 바치는 노래로 나는 오늘도 당신을 떠올린다. 오지 않는 당신을 생각하며 이번 한 해도 가는구나,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한다. 겨울이 오고 있는데 당신은 오지 않는다. 당신이 없어서 계절은 계절이 아니고 하루는 뭉그러진다. 일그러진 달력을 펼쳐 보며 오늘도 지나가는구나 생각한다. 오늘도 당신이 오지 않은 하루로 뭉개진다. 오늘은 당신이 오지 않은 날이고, 당신이 오는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올 때를 놓쳐 와도 나에게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하진 않은지 잠시 생각한다. 무의미하다고 해서 내가 멈출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허무는 인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허무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기다린다. 이상하지. 정작 당신이 오면 나는 허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이 와도 나는 허무할 것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올 거였으면 진작 오지 그랬어, 하고 허무해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당신은 오지 않는 것이고, 나는 그것에 익숙해졌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것에. 적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나는 이런 것에 적응할 줄 몰랐는데.


그래서 결국 당신은 없다.


없는 너에게 나는 있을까. 당신은 없는 내가 없는 줄도 모를까. 가끔 찾아오는 현기증으로 나는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느낀다. 삶이 고달플 때마다 당신을 생각한다. 나에게 당신이 있었다면 삶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나는 그리움으로 간신히 견뎌낸다. 언젠가는 당신과 만날 수 있겠지. 부질없는 희망을 빈다. 그냥 만약을 가정해 보는 거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빌어보는 거지. 소원은 그런 거잖아.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빌고 원하는 거잖아. 나에게 있으면 원하지 않았을 너를 빌어 본다. 오늘은 비가 오면 좋겠다, 같이 빌어 보는 거다. 그냥.


막연히 빌면 언젠가는 당신이 와 줄까. 아마 당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안 올 사람임을 알면서도 기다린다. 가끔 산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을 기다리는 것. 절대 만질 수 없는 것을 탐내는 것.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것.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당신을 기다린다. 그게 의미 있는 일일까.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나를 사랑하게 되어 버린 걸까. 어젯밤에도 당신을 생각했다. 매일 밤 당신을 그리워하지만 어제는 유독 더 당신이 그리웠다. 당신이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있는 나를 당신은 알아야 하는데. 혼자 있는 나를 당신이 알아 줘야 하는데. 나는 당신에게 나를 강제하고 싶다. 나를 알도록 하고 싶다. 당신이 나를 모른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제서야 만족할 수 있을까. 만족하고 이제 그만 당신을 기다릴 수 있을까.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데. 내일은 온다고 말한 당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을 당신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당신이 올 것 같기 때문이다.


비. 겨울비가 왔다.


당신이 있는 곳에도 겨울비가 올까. 내가 겨울비를 보고 당신을 떠올리는 것처럼 당신도 비를 보고 나를 떠올려 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돌아만 와 준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당신이 와 준다면 좋다. 어젯밤에는 간곡히 당신을 기다렸으나 결국 당신은 오지 않았다. 나의 간곡함은 가끔, 자주, 매번 그렇게 사라지곤 한다. 부질없어지곤 한다. 부질없는 나. 없는 당신.


눈이 오면 당신이 올까. 첫눈처럼 와 줄까. 첫눈을 당신처럼 기다린다. 그 다음에는 봄을 기다린다. 그 다음에는 장마를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낙엽을 기다린다. 일 년을 하루처럼 당신을 기다린다. 언젠가는 와 줄까. 언젠가는 와 주겠지.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리며 나의 하루는 빛을 잃기도 하고 빛을 얻기도 한다. 그래도 좋다. 당신이 오기만 한다면 다 좋다.


당신이 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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