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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25. 2019

진부한 우울을 이야기하며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에요.









그건 별로 즐겁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라고 느꼈다. 이상하지. 다른 누구도 필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텐데 나는 혼자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순전히 기분상의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만족시킬 의무가 있었다. 나는 나를 돌보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나를 위로하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없는 우울에 잠겨 가기 때문이다. 어쨌든 즐겁지는 않았다. 만족스럽지도 않았고. 그러나 결과적으로 저질러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세상에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 일은 정확히 필요했고 정확히 행해져야 했다. 그리고 나는 했다. 저질렀다. 저질렀다고 말하기에도 밉살맞을 정도로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미 저지른 일. 그것이 나를 충족시켰다. 만족과 충족은 얼마나 다를까?


어떤 일들은 결과에 상관 없이 그저 이루어졌다는 자체로 무언가를 충족시킨다. 조건을 달성하듯. 나는 무언가를 달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한 사람. 훈장 같았다.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혼자 뿌듯했지. 나는 일전에도 이런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아무리 참아 보려 해도 참을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도 저질렀다. 그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고양이가 한 마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질렀다. 고양이는 잠든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고양이는 어젯밤 잘 때 내 품에 파고들어 주었다. 날이 추웠을까. 나는 따뜻하고 폭신한 털 뭉치를 끌어안고 가만히 쓰다듬었다. 뜨거웠고, 따뜻했다. 위로가 되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문서가 유서로 보였다. 문득. 남기고 있는 모든 글들은 나의 비명 같은 글이고 나는 상시로 비명을 지르면서 살고 있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봐 줘야 한다. 누군가는 나를 생각해 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것 같아서. 어떤 사람은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충격을 받고 어떤 사람은 안도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 쪽일까. 나는 분명히 두려운 쪽이다. 이 세상에 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그만 외로워지고 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다면 나는 좀 덜 외로울까 혹은 더 쓸쓸해질까. 어떤 것들은 영원히 알 수 없고 어떤 것들은 영원히 알고 싶지 않다. 어떤 것들은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몇몇 깨달음은 나를 할퀴고 지나갔다. 움푹 패인 상처를 더듬으며 나는 그 때 얼마나 아팠는지를 추억한다. 몸서리를 친다.




내 손목에는 새긴 글자는 누군가 에게는 분명히 유치할 것이다. 나는 도와달라고 말하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괜찮다고 말하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누군가는 나를 유치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치만 나는 이 방법밖에 없었는걸. 이게 나를 상징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걸. 누군가의 감성이 짓밟히고 누군가의 눈물이 비웃음 당하는 요즘, 나는 자꾸만 나를 사랑하고 동정하게 된다. 가엾게도. 그런 것들을 품고 살았구나. 그런 것들을 소중하다고 품고 살아왔구나. 가끔은 이렇게 전면으로 부정 당하는 일이 있어 여전히 나는 내가 가엾다. 강해지고 싶어. 단단한 진주를 토해내고 싶어. 유서 대신 일기를 쓰고 싶어. 일기 같은 유서 대신 일기다운 일기를 쓰고 싶어.


지긋하고 지겹고 지치고 지루하다.



모든 삶이 다 그래? 모든 삶이 다 그렇다면 왜 나만 견디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거야? 왜 다른 사람들은 잘 견딜 수 있는 것을 나 혼자서만 버티지 못하고 있는 거야? 당신의 삶이 소중하다면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거야?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면 이 순간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거야? 모든 삶이 다 이렇지 않다면 나의 삶은 왜 이런 거야? 삶에도 차등이 있고 순번이 있다면 나는 몇 번째의 삶을 살고 있는 거야? 왜 나는 그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거야? 삶에서 이유를 묻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따져 묻고 들어가면 모든 것이 우울해진다고 했다. 나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하루 우울해지고 있다. 이상한 공식에만 맞물리는 내 삶.


이건 별로 즐겁지 않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해요.


아파요.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가 돼요.


진부하죠. 알아요.


어떤 클래식도 격언도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표현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들 것 있잖아요. 늪에 빠진 느낌. 사방이 좁은 방에 갇힌 느낌. 누군가 목을 조르는 느낌. 이런 것들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푸른 우울.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요. 나의 깊고 푸른 우울.




이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아니고 해야 하는 일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저 하고 싶은 일일 뿐이에요. 나는 나를 위해 이런 일을 가끔 해 줘야 해요. 정말 나를 위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괜찮아진다면 나는 게워내고 편해지는 쪽을 택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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