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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28. 2019

혼잣말

무엇을 보았나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꿈을 보았어요.



어떤 꿈이 있었는데 아주 작고… 의미 없었어요. 그런 것일수록 소중하지 않나요. 작고 의미없는 소중한 것들이 나를 이루지 않나요. 그런 것들만 모아서 나를 만들어서 그런가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의미 없고 소중한 것들. 요즘 사람들은 점점 단조롭게 산대요. 가벼운 삶이 흘러가는 삶이 좋은 것이래요. 팔에 무언가를 끌어 안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래요. 품이 차가워요. 그런가요. 뭔가를 품어 본 지가 오래 되었네요. 그래서 그런가봐요. 어떤 것들을 품었었나요. 이젠 기억도 나지 않아요. 아마 의미 없고 소중한 것들이었겠죠. 잃어버린 것 같아요. 잊어버린 거죠. 잃어버린 것과 잊어버린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잃었다고 할 수는 있다고 잊었다고 할 수는 없죠. 소중한 것일수록 잊어버리기 쉽다네요. 소중한 것인데 왜 잊어버리는 거죠? 너무 어루만져서 닳아 없어져서 그래요. 그런가요. 그랬던 적이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그런 적은 없어요. 소중한 것일수록 멀리 했거든요. 일부러 소중하지 않게 만들려고… 그게 나를 삼켜버릴까 무서웠어요. 소중한 것에 삼켜진다? 그게 내 전부가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무슨 꿈을 보았죠? 잊어버렸어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증에 걸렸어요. 어떤 기분인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죠. 버려진 기분이 들어요. 쓸모 없죠. 그런데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니, 정말 쓰레기 같아요. 무언가를 하면 되지 않나요. 무엇을 해야 하죠? 아무것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꼭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나요?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의미 있는 모든 것이 생존으로 귀결되다니 참 비참한 삶이에요. 이것을 하면 얼마짜리. 이것을 하면 얼마짜리. 모든 것을 돈, 돈, 돈으로 따지고 있죠. 삶이 각박해요. 흔하게 하는 말이잖아요. 살아 남기가 너무 각박해요. 세상 살이가 힘들어서 그래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일 년을 버텼네요. 어떻게든 살았죠. 무엇이든 해보려고 했어요. 적응하려고 노력도 했죠. 나를 맞춰 보려고 구부리고 일그러뜨리고 접고 구겨 넣어봤어요. 남은 게 뭔 줄 아세요? 그저 자국. 자국 뿐이에요. 접혔던 자국, 구부러졌던 자국, 일그러진 자국. 온통 엉망진창이에요.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요? 다들 이러고 살고 있나요. 그럼 다들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죠? 죽을 것 같은 하루를, 죽고 싶은 하루를 어떻게 참고 견디는 거죠?


왜 나는 같은 시간을 보내도 모든 것을 낭비하는 것 같을까요.

왜 어떤 생존은 낭비가 되는 걸까요.


내 삶이 낭비같아요. 누가 쓰다 버린 거라면 차라리 좋을텐데. 누군가의 새어나가는 구멍이 된 것 같아서 속이 쓰려요. 이런 구멍은 빨리 메워 버려야 하는데. 나는 때워져야 하는데 때워지지도 못하는 구멍이에요. 나는 어쩌다 이런 구멍이 되었을까요. 구멍난 삶도 아니고 그냥 구멍이에요. 뻥 뚫렸죠. 너무 큰 것 같아요. 작아지다가 없어지는 게 내 삶이에요.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잊히다, 는 있는데 왜 잃히다는 없을까요. 나는 누군가 잃어버린 게 분명한데.


그래서, 무슨 꿈이었죠?


소중하고 작은 꿈이었어요. 잃어버렸죠. 그래서 더 소중한 것 같아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아요. 오래 전이었죠. 얼마나 소중했나요. 인생 전부를 걸고 싶었어요. 내 모든 것이 꿈처럼 아득했고 아련했죠. 나는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었어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멀어졌어요. 이제는 내 것이 아니게 되었죠. 그런 꿈이 있잖아요. 나도 있었어요. 그런 꿈. 그런 순간. 그런 시간. 누구나 있잖아요, 한 번쯤. 한 개쯤.


이제 와서 소중하다고 고백해도 늦었어요. 들어 줄 사람이 없어요. 의미 없는 고백이라도 발화하는 순간이 소중하지 않나요. 그런 것으로 견딜 수 있나요. 나는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소중하다고 인정하는 거죠.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 사랑한다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 것들이 있잖아요. 상실의 끝에서, 무엇을 기대하나요? 돌아오는 것? 되돌아가는 것? 내가 기대하는 건 그저… 내가 나이길. 그저 나이길 바라고 있어요. 나아지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내가 나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걸로 충분한가요? 충분하다고 믿어요. 믿음이 전부인가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될 수 있겠죠. 그걸로 만족해요. 만족하면 끝인가요? 끝은 아니에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영원하다는 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요. 영원한 게 있다고 믿으세요?


영원을 바라면 영원해질 수 있을까요?


오늘의 부재를 확인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소중함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당신이 영영 오지 않아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기다림으로 빚어낸 무언가를 가지고 당신을 사랑한다면 만족하시나요. 어떤 꿈은 너무나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티끌을 모아봤자 티끌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 줌을 어떻게든 끌어 모아도 한 줌이었을 뿐이에요. 한 줌짜리 내 인생.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비참해요. 많은 사람들이 한 줌짜리 인생을 살고 있을 거예요. 혼자만 비참해 하지 마세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누구시죠?


일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무엇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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