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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Nov 29. 2019

자장가가 나를 베어먹습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째깍째깍 진부합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항상 나를 잡아 먹었습니다. 나는 노랫소리에 조금씩 발목을 뜯어 먹혔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내가 사라졌습니다. 머잖아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를 반으로 나누기 시작했을 때 반절이 다시 반의 반절이 되는 것처럼 끝도 없이 반씩 나누어 사라지는 것은 영원히 반절의 반절로 쪼개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반의 반절이 남게 되는 것이라고. 당신의 자장가는 나를 반씩만 베어 먹었습니다. 나는 조금씩 먹혀 사라지면서 어젯밤의 꿈 때문에 두려워 울었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나를 완전히 먹어치우리라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나 같은 건 먹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자장가가 나를 잡아먹습니다.




꿈 속에서 나는 뜯어먹히고 있습니다.


한 입을 베어먹히면 다른 한 입이 나를 물어뜯습니다. 나는 생생한 이의 감촉을 살결로 느낍니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촉각이라는 것은 항상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너무나 익숙하기 짝이 없어서 자꾸만 잊게 되지요. 나는 또 잊고 있었던 감각을 떠올립니다. 당신의 시선이 나를 뚫어버릴 때 마다 나는 구멍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나의 구멍이 다시 하나 생겨났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으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갑니다. 당신은 뚫린 공간으로 나를 들여다봅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마치 나에게도 보여줄 것 같습니다. 나는 매일 간을 뜯어 먹히는 벌을 받는 심정으로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날이 되면 나는 말짱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꿈이 다 꿈으로만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언젠가 이 꿈이 나를 잡아먹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나의 반절을 남겨 두겠지요. 나는 남겨진 반절로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의 존재로.


왜 당신은 나를 전부 먹어치우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항상 당신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장가가 나를 물어 뜯기 시작하면 나는 곧 모든 생각을 잊습니다. 내가 먹히고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당신이 나를 물어 뜯을 때 나는 통증도 두려움도 아닌 진부함에 가득찹니다. 오늘도 먹히는구나. 그리고 내일도 나는 먹히겠지. 비어 있는 사이의 하루가 오직 당신을 기다리기 위한 것 뿐인 느낌으로. 나는 오늘도 살아 있지만 그건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인가요? 당신이 나를 살려 두는 이유는 썩지 않도록 보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나를 보관하지 못해서 나는 오늘도 내 몸을 기웁니다. 한 땀 한 땀 기워지는 살결을 내려다보며 당신이 오늘도 나를 먹어치울 부분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이 나를 먹어치우기 때문에 아니면 내가 살아남기 위해 어쩌면 둘 다를 위해 나는 나를 기워냅니다. 우물 속에서 물을 기워내듯.




진부하게도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신화도 아닙니다. 해피엔딩도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신화가 되기에 우리는 너무나 최근을 살고 있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해피 엔딩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요. 나는 아직 배드 엔딩과 해피 엔딩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나는 항상 죽음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선택지를 준다면 나는 고통 없이 죽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언젠가 삶의 무게가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 무거워질 때 내가 선택할 것은 고통스러워도 죽음이겠지요. 그러므로 나는 나를 잡아먹는 당신의 자장가를 오늘도 새겨 듣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무게추를 더해 주거나 덜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어느 쪽이든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당신의 자장가가 오늘도 새롭습니다.





당신을 묘사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당신은 악몽을 닮았고, 무지개와 비슷하고, 새벽의 음악소리와 같습니다. 당신을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당신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당신을 보고 있는데 당신을 묘사할 수 없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묘사하기 위해 애를 써 봅니다. 당신은 지쳐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낡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입술은 뻣뻣하고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그 입에서 어떻게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분명히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노랫소리가 나의 뇌를 한 입 베어 먹습니다. 내 두개골 안쪽 빈 자리에서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듯 울립니다. 오늘도, 오늘도. 당신의 노래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괴담을 알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내 집의 구조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현관문을 열어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그 시야 그대로를 떠올립니다. 천천히 벽을 따라 걸으며 집 안의 모든 곳을 돌아다닙니다. 방과 방, 벽과 벽, 모서리와 모서리를 따라 돌아볼 때 누군가를 발견하면 나에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혹자는 그것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만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여우의 창문처럼 들여다봐서는 안 되는 것을 들여다보고 저주받게 된다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을 걸다 보면 조현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환청이 들리지 않는데도 들리는 것처럼 대답하다 보면 진짜로 환청이 들리게 된다고 합니다. 시도해 볼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만 내가 당신을 만난 것도 결국에는 환상을 자꾸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존재하지 않을 당신은 오늘도 나에게 자장가를 불러 줍니다. 오늘도. 당신의 노래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의 노랫소리에 그만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오늘도. 당신의 자장가는 내가 잠들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자장가가 그러듯이. 내가 잠들고 나서의 가사를 들은 적이 없는 나는 가사가 궁금해서인지 당신에게 뜯어 먹히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항상 잠들기 직전까지 발버둥쳤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잠들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잠들지 않고서는 내 몸을 다시 기워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속삭이고 나는 그 속삭임을 온전히 받아냅니다.




진부하게도 이것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노래합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나를 재우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자장가가 그러하듯이. 나는 당신에게 자장가를 부탁한 적이 없었는데 늦은 밤이 되면 당신은 나타나곤 합니다. 나의 잠자리 곁에. 잠들지 않은 나의 책상 옆에. 나의 화장실 문 앞에. 자박자박 맨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다가온 당신은 똑똑, 손을 세워 노크합니다. 문을, 책상을, 벽을. 당신의 노크 소리에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노크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매일 밤 찾아와 나의 가슴에 대고 똑똑, 노크를 합니다. 나는 오늘 밤도 당신을 맞이합니다.




진부하게도. 이것은 죽고 싶은 나를 찾아오는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검은 옷을 입지도 않았고 낫을 들지도 않았습니다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초읽기를 하는 당신의 자장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나입니다. 시간은 매 초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분읽기를 하고 시간읽기를 하고 해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 해가 흐를 때마다 나는 당신이 다가옴을 느낍니다. 나는 언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나요? 당신은 대답 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을 조금만 빠르게 돌려보아도 시간이 빠르게 흐르지는 않습니다. 나는 동영상의 재생 바를 앞당기는 것처럼 시간을 당겨 놓고 싶습니다. 한 시간 뒤로. 다섯 시간 뒤로. 나의 인생은 아주 느리게 흘러갑니다. 나는 언제 죽을 수 있나요? 당신은 대답 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당신의 노래는 지겹습니다. 매번 똑같은 음에 똑같은 가사를 반복합니다. 오늘도. 오늘도. 째깍거리는 당신의 눈은 열 두개입니다. 예순 개입니다. 어쩌면 하나입니다. 가운데에 뚫려 있는 구멍이 당신의 유일한 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자장가가 나를 베어 먹습니다. 내 발목이 잘려나가지만 피는 흐르지 않습니다. 나는 관절부터 썩어갑니다. 가장 여린 부분이 가장 잘 뭉개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도 내가 죽을 날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다시 하루를 기워냅니다. 썩은 물을 마시듯 바가지를 들이킵니다. 영 맛이 없지만 마시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쓴 약을 먹는 것과 닮아 있지만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나는 하루를 게워내듯 기워내고 있습니다. 하루를 마시면 하루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자꾸만 내 몸에서 흘러나가고 나는 오늘치의 삶을 다 살았습니다. 오늘치의 시간이 사라집니다. 당신의 이름은 육십 개이면서 열두 개이고 어쩌면 두 개이면서 한 개입니다. 당신은 하루이고 오전과 오후이며 한 시에서 열두 시이고 일 초에서 육십 초입니다. 당신의 노랫소리는 지겹습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초조합니다. 당신의 손은 하나이면서 두 개이고 세 개일때도 있습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나의 방에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디에나 스며들고 어디에나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장가가 오늘도 나를 갉아먹었습니다. 당신의 시간이 나를 베어갑니다.




삼켜버려 소화된 나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잠을 자면서 잃어버린 나를 채워 나갑니다. 때로는 온전히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하루종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닙니다. 잃어버렸는데 오히려 무게가 늘어나곤 합니다. 부조리함은 익숙합니다. 진부하게도 이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고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고 누구에게 향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당신은 끊임없이 걷기만 합니다. 당신의 같은 속도가 지겹습니다. 당신은 빠르고자 할 때 느리고 느리고자 할 때 빠릅니다. 당신은 새겨지면서 지워지고 지워지면서 새겨집니다. 결국 당신은 돌아오곤 합니다. 한 바퀴를 돌아서 돌아온 당신의 눈을 마주하면 당신은 노래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오늘도, 라고 시작되는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도. 당신의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악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섭니다.




당신의 이름은 죽음이 아니고 당신의 존재가 흐름은 아닌데 당신은 죽음을 연상시키고 당신은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나를 반절만 베어 먹습니다. 반절의 나는 밤으로 사라지고 꿈으로 사라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사라집니다. 그 곳에서 나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않습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평생에 사랑할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몇 번이나 죽기도 합니다. 그건 그저 꿈에 불과합니다. 꿈을 사는 나와 현실을 사는 내가 합쳐져서 온전한 하나의 내가 되지만 나는 사실 다른 세계의 나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꿈 속의 나도 그 곳에서 무언가를 남기기는 하겠지요. 꿈 속의 세계가 어딘가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나의 연장선이라면 그곳의 나는 이곳의 나를 꿈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나도 당신의 자장가에 잠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은 왼쪽과 오른쪽을 반대로 비춰내지만 모든 것이 반대는 아니고 어떤 세상처럼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는 세상이 꿈은 아니지요. 이곳의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곳의 내가 당신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근거로는 꿈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한 마디도 나에게 해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저 흐르고, 존재하고, 흐르고, 존재하고.




나는 한시 바삐 죽고 싶은데.


당신은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지도 느리게 다가오지도 않고 그저 꾸준히 매일 밤 한 입씩 나를 베어먹을 뿐입니다. 한 입씩 먹히는 나는 지겹습니다. 진부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나를 하루에 두 입 먹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 입만 먹는 것도 아닙니다. 꼭 정해진 만큼만 나를 먹습니다. 나는 조금 더 많이 먹히는 것 같은 날이 있고, 조금 덜 먹히는 것 같은 날이 있지만 당신이 나를 일정한 양으로 일정한 속도로 먹어치운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는. 불변하는 것들 중 하나인 당신은 오늘 밤에도 나를 찾아오겠습니다.




이상한 비유이지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오늘도 오늘도, 로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오늘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환청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당신의 목소리에, 노랫소리에 대답합니다. 당신의 노래는 대답 없이 흐르지만 때로 그 노래가 나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어떤 문장이든 이어 놓으면 나름의 의미가 생기게 됩니다. 나는 당신의 문장 뒤에 나의 문장을 이어 붙입니다. 당신의 문장과 나의 문장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없다고 한들 나란히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미한 연결점을 찾습니다. 찾을 수 없는 것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노랫소리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의미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집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데 존재하게 된 것처럼.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명명된 순간부터 존재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를 갖습니다. 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취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수없이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흔적은 곳곳에 남습니다. 악물었던 이. 쓰여진 편지. 하다못해 깜빡이는 눈꺼풀에도 당신의 흔적이 남습니다. 나는 눈물샘이 고장난 것처럼 울었고 젖은 베개에도 당신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오늘도 나는 빨리 죽었으면, 바랍니다.

당신은 결코 나를 빨리 죽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이십 년 뒤의 나를 상상합니다.

당신은 이십년을 다음날로 앞당겨 주지 않습니다.




미지의 공포가 나를 먹어치웁니다. 나는 내일을 알 수 없어 두렵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어 내일 모레를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당신의 노랫소리만이 나에게 명확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만이 유효합니다. 나는 또 당신의 자장가를 듣습니다. 오늘도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잘 시간입니다. 나를 기워내고 뜯어먹힌 부분을 채워넣어야 합니다. 내일 또 당신에게 뜯어먹힐 부분을 만들어 두기 위해 나는 눈을 감습니다. 오늘의 잠자리는 미지근합니다. 당신의 자장가는 째깍째깍 진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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