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내릴 때 나는 자살을 연습하는 심정이었다.
어떻게 나를 살아.
내가 나로 살아 보는 건 처음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내가 나를 살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아? 처음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이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다들 인생을 세 번씩은 살아 본 사람 같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 수 있는 거야? 아무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다들 척척 살아내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러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계속 정해진 걸 따라오기만 했는데, 갑자기 버려진 기분이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거야? 이제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거야?
무의미하게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 같다. 내 시간인데 내가 버리고 있다. 아무도 챙겨 주지 않는 시간을 버리고 있자니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하다. 어떤 문장들은 무의미한 글 속에서 탄생하는데 영원히 빛나지 못할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문장도 빛이 나지 않는 것 같아 쓰고 있는데 열심히 쓰고 있는데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나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쓰다 버릴 것처럼 망가뜨리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모두가 이런 기분으로 살아남고 있는 걸까. 나만 쓰레기장 한가운데를 뒤적이고 있는 느낌으로 살고 있는 걸까. 다들 어떻게 살아남는 걸까. 이런 세상에서, 이런 삶에서. 이런 기분에서.
기분과 감정은 다르다고 한다. 기분은 일시적이고 감정은 지속적이라고 한다. 나의 감정은 우울한데 기분은 오락가락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울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우울하게 산다고 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견뎌내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든 오늘을 버텨냈다. 내일은 버틸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산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버리면 오늘은 차곡차곡 버려져서 어디에 쌓이게 될까. 그대로 내 발목을 삼켜 나를 짓뭉갤 것 같은 착각을 한다.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 평생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만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질투한다. 너희는 좋겠다. 잠깐을 있다 갈 수 있으니까. 나도 삶에서 잠깐 있다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을 중단시킬 권리가 있으면 좋겠다. 일시 정지라도 하고 잠시 살다 가고 싶다. 멈춰 놓고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 바삐 삶을 망치고 있다.
내 망가지는 삶을 누가 동정해주나.
가만히 누워 있을 때 당신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 다 죽게 되어 있어. 당신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위로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었다. 당신은 조용히 당신을 꺼내놓았다. 나는 당신이 꺼내 놓은 당신의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와 닮아 있었고, 어떤 나와 같았고, 어떤 나와 전혀 달랐다. 당신의 말은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위로하고 싶어했고, 어떤 말을 전하고 싶어했고,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나는 그런 당신을 알고 있어서 기꺼이 당신의 말을 받아 삼켰다. 그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당신의 말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게 나에게 정말 해당되는 말인지도 생각했다. 나는 쓰임을 다 한 열쇠같이 잊혀지고 버려지는 게 아닐까. 나는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이미 할 일을 다 마친 것처럼 나중으로 미뤄지고 버려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많은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누워 있는 동안 많은 말을 들었다. 우울증이래. 누군가 속삭였다. 흔해 빠진 병명을 달고 얕은 숨을 내뱉었다. 누구든 그렇게 병원에 오고 누구든 그렇게 죽을 뻔 한다. 누구든 그렇게 한 번씩은 자살 시도를 하는 것 같다.
번지점프를 할 때는 뛰어내리는 연습을 했다. 등에 끈이 달려 있는데도 뛰어내리지 못한다면, 등에 끈이 없을 때에도 뛰어내리지 못할 테니 나는 뛰어내리는 연습을 했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망설이던 사람들이 줄줄이 뛰어내렸다고 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그 사람들은 그저 내가 용감했다고 말할 것이다. 조금씩 미쳐가는 기분이었다. 미친 사람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와해되는 문장과 무너지는 단어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기들은 도저히 다른 곳에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해서 어디에도 꺼내 놓을 수가 없었다. 그저 읽어 볼 뿐이다. 읽어 보면서 과거의 내가 그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이런 절망 속에서 잠들었지. 간신히 약을 삼키고 잠들었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어딘가에 빠진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문장들은 완전히 망가져서 어디에도 꺼내 쓸 수가 없다. 나는 내 문장이 빛나게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저 쓰고, 쓰는데. 이렇게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도 가끔 생각을 한다. 어떤 문장들은 내가 썼기 때문에 영영 빛을 보지 못한다. 어떤 글은 영영 읽히지 못한다. 다만 새기는 것이 의미가 있어 나는 새긴다. 누군가는 기억해주겠지.
내가 나를 살 자신이 없어.
몇 번의 사랑 고백을 했고 몇 번의 사랑을 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두려워서 달아나고 버림받는게 무서워서 먼저 버리는 사람이었다. 네가 나를 버리는 순간이 싫어서 나는 먼저 버리고 달아났다. 그렇게 달아나면 상처받지 않을 줄 알았다. 후회는 해도 아프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몇 번의 고백과 몇 번의 이별 끝에 간신히 다다른 결말은 언제나 내가 먼저였다. 내가 먼저. 그렇게 나를 우선하려 했지만 버려지는 쪽이 나였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항상 버려지는 쪽은 나였지.
번지점프를 할 때 허공에 던져지는 아찔함이 있었다. 그게 있었다. 나는 그 때 허공에 있었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롭게. 그러다가 강을 향해 추락한다. 나는 그대로 물에 빠져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팽팽해진 줄이 나를 당겼다. 나는 다시 상승한다.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면서 일정한 궤도를 찾게 된다. 나는 두 번째로 추락할 때 더욱 아찔함을 느꼈다. 그 아찔함이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나는 그대로 죽어도 좋았을 것이다. 줄이 끊어지는 상상을 했다. 아무것도 나를 당기지 않는 상상을. 반짝거리는 강물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들어가면 망가질 강물이 아름다웠다. 비명을 지르지는 못했다. 떨어지는 사람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대롱대롱 줄에 매달린 채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배 위로 오르면서 나는 추락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뭍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굽이 있는 샌들을 신고 있었다. 힐을 신고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누군가 수군거렸다. 추억한다. 그 순간들. 아름다웠던 시간들. 맨발로 뛰어내렸으면 더욱 좋은 연습이 되었을까. 추락할 때 발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놓고 뛰어내린다. 나는 강변에 가서 다리 위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다. 몇 번이나.
요즘은 한강에 떨어져도 금방 구조해낸다면서?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해.
한강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구조율이 구십 퍼센트를 넘는대. 나는 그 말을 새겨 들었다. 내가 떨어져도 나를 건져내겠구나, 하는 것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진짜로 떨어져 잠겨 죽고 싶은 사람에게 그건 마음대로 죽을 권리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세상은 나를 살게 하지 않는데, 나를 죽게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시체처럼 죽어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를 살리지도, 죽이지도 않을 거라면.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마음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면 왜 살게 했어. 대상 없이 원망해본다. 이 따위로 내 삶을 망친 건 나인데. 나를 원망하다 보면 결말은 항상 죽어야지, 가 되었으니까. 나는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못하게 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해. 스물 여덟살 이전에 요절하는 것만이 나를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 같은데.
번지점프를 하러 가고 싶다. 뛰어내리고 싶다. 아찔함 속에서 번지는 흰 빛에 나를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