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는 아래와 아래와 아래에서
사는 게 아슬하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까. 벼랑 끝처럼 내 삶은 아슬하다. 차라리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몇 번. 몇 십번. 소중한 것들이 쓰레기 사이로 파묻혀가는 삶. 무엇이 중요했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이제는 모르겠어. 피곤할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늘도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르겠다. 열두시간이 넘게 잠들어 있다가 일어나면 하루종일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는 것은 지긋지긋해. 너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구구절절 시였던 너는 말을 아껴서 뱉었고 모든 것이 환멸이었다. 이 세상에 대한 환멸. 너는 꿈을 꾸듯 살았고 언젠가 꿈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정말 사라질까봐 무서워서 너를 붙잡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사라질 운명이었던 거지. 사람에게 운명이 있다면 겁이 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어떻게든 살아갈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다면 벗어날 수 없겠지만. 무언가 정해져 있다면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대강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강 살아도 살아지는 세상이었다면 좋겠지만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도태되고 뒤쳐진다. 출발선에서 겨우 한 발자국을 뗀 기분이다. 나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는데. 조금도 어른이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한 해가 다 간다.
살다 보니 살아진다는 것,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잘 모르겠다. 보다 의미 있고 중요한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무엇을 해야 의미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인물을 설정할 때는 항상 결핍을 주었다. 부모의 결핍. 애정의 결핍. 혹은 관계의 결핍. 마음의 결핍이 있는 인물이 성장할 수 있었다. 결핍을 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나의 결핍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내 구멍인 것 같다. 텅 비어 있는 내 구멍들.
뻥뻥 뚫려 있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뚫려 있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이상한 부분이 된다. 모든 것이 튀어나와 있을 때 튀어나오지 않은 부분이 이상해지는 것처럼. 나는 비어 있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다. 온통 비어 있어서 어디서부터 채워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빈 곳을 손대다보면 비어 있는 채로 놔두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빈 것을 묘사할 때마다 나는 채워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빈 사람을 전시하는 것으로 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결핍을 묘사하면서 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글은 결핍과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빈 채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빈 채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평생 동안 그것을 목표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메워지느냐 메워지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채우기 위해 살았다는 것. 평생을 채우기 위해 살았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마치 평생 동안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다 간 화가처럼. 그렇다면 나의 끝 역시 자살인가, 싶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를 갖는 것. 그렇게 해서 나의 삶을 채우는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생각한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을 때 나는 자꾸만 죽음과 벼랑과 추락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삶도 소중하지 않은 삶이 없다고 하지만 왜 나는 자꾸만 무의미를 찾게 되는 것일까?
길게 쓴 글에서 문장들을 추려낸다. 다듬고 더듬어 몇 개의 문장을 골라내면 시가 될 것이다. 그 시를 읽었을 때 내 문장들은 과연 삶을 노래할까 죽음을 찬미할까.
나는 그것이 두렵다. 결국 찾아낸 나의 문장들이 모두 죽음을 추구하고 있을까봐. 내가 고심해서 내리는 결론이 죽자, 가 될까봐. 죽음을 위해 살고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 이러다가 정말 자살하게 된다면 내 유서는 누가 읽어줄까.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나의 유서를 읽고 가장 슬퍼할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 하겠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내 죽음에? 그런 생각을 하면 죽는다는 것도 사치로 느껴진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저 아래가 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손을 너울거릴 때. 이 세상에서 정말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사람이 소멸을 꿈꾼다면, 나는 이미 몇천번이고 소멸하기를 바랐고 몇백번이고 다시 죽었을 테다.
이 벼랑 끝에 서서 몇십년이고 버틴다면 이 곳이 나의 집이 되겠지만.
평생 이런 기분 속에서 살아야 하나? 오늘도 생각하는 것이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누가 과연 나의 삶을 나쁘지 않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과연 남의 삶을 나쁘지 않았다고, 괜찮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누가 누구를 벼랑 끝으로 떠밀었는가. 거대하고 막막한 세상의 의지 앞에서, 마치 세상이 나보고 죽으라고 이제 그만 하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기분으로, 무엇도 찾고 싶지 않은 감정으로. 무엇을 할까. 해야만 할까. 할 수는 있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벼랑 아래를 내려다본다. 저 아래 까마득히 먼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늘도 바람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