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박하 Dec 17. 2019

1. 스물 여덟까지만 살아보려 해.

그러면 내 보잘것없는 이야기도 어떤 비극이 되지 않을까 싶어.





미안해.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말을 꺼내면 대화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나를 자살 위험 우울증 환자 카테고리에 넣고 죽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설득당하고 싶지 않았어. 대부분의 상담은 나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약을 더 많이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 내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나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내가 내 삶을 책임지고 살아보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두 망쳐 온 기분이야. 이렇게 삶을 낭비했으면 앞으로도 낭비할 일밖에 남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해. 모든 것이 좀 절망스러워. 어쨌든, 이게 편지를 쓰는 이유야.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멀리 있고, 전화로 하기에도 이런 이야기는 무겁고 부담스럽지. 별로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편지를 써. 그냥 읽고 버려 줘.


최근에는 이십대에 삶을 망치는 방법, 이라는 영상을 봤어. 내 얘기 같더라. 나 이제부터 글을 써 보려 하는데, 이게 또 내 객기가 아닌가 싶어서. 나는 글 쓰는 데에 소질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 그냥 내 생각일 뿐이지. 나는 내 글을 좋아하고 또 내가 쓰는 글에 자신이 있지만 나만 만족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나름대로 노력하는 걸로는 안 되는 게 많이 있잖아. 남들은 피눈물 나도록 노력하는데 나는 그냥 눈물 흘릴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알아. 열심히 살지 말라고 한 거. 힘내지 말라고 한 거. 힘내지 말고 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하라고 한 거 알아.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인 것도 알아.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어. 나 그냥 노력한다고 말만 하고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은 것 같아 스스로가 한심하고 속상해. 네 말은 다 옳아. 좋은 말들 많이 해 줬잖아. 힘내지 말라는 거, 정말 많이 도움이 됐어. 힘들어하고 있을 때에 떠올리면서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해라. 이런 생각 많이 했어. 덕분에 도움이 정말 많이 됐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보려고도 했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찾아봤어.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이런 걸 하면서 내 삶을 여기에 사용하고 싶었어. 내가…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었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대. 내가 세상에 그리 영향을 많이 미치지 않는 자그마한 존재다, 라는 것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홀가분하게 짐을 덜어내는 사람들이 있대. 아마 후자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겠지. 나는 전자였어. 응. 내가 세상에 아무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너무나 슬프고 무력해졌어. 내가 너무나 작고, 나는 정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졌어.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외로웠어.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인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고. 누군가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데 나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더라. 내가 나를 못 믿겠고, 내가 나를 의지하지 못하겠고. 내가 나를 의심하고 폄하하고 있어.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최근에는 살이 너무 쪄서 그것도 나를 힘들게 해. 알아, 살이 쪘다고 해서 내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렇지만 나는 점점 더 못나지고 못생겨지고 못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스물 여덟까지만 살려는 건 아니야.


아니,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어. 그냥 그 때까지만 살아보려고 해. 내가 내 삶을 책임지는 게 너무 버거워서, 무겁고 힘들어서. 나에게도 내가 감당이 되지 않아서 그만 포기하고 싶어서 그래. 한 사람을 책임지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어. 내 삶에 이유를 좀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그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하나 만들고 지어내서 갖고 싶었는데. 내 삶에 목표와 이유를 좀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괴롭히는 걸 견딜 수 없어서 그래. 내가 나를 견딜 수가 없어.


이해 해 달라고 하지 않을게. 그게 더 나쁜가? 모르겠어. 그냥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 같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맞아, 지금 너에게 짐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너를 힘들게 하고, 못 견디게 하잖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것 같은 나는 정말 살아야 하는 이유 같은 거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 계속 이어서 편지할게. 사랑해.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글을 썼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