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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박하 Dec 23. 2019

2.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

앞으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는지 말야.






의사 선생님에게 스물 여덟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했어. 선생님은 나에게 스물 일곱살이 아니냐고 물었지. 그래서 맞다고 대답했어. 올해가 일주일 정도 남은 지금, 내 삶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는지 다다음주 상담에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어. 나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고. 그리고 상담실을 빠져나왔어.


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죽음 이후에 편해질 거라는 착각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고 했지. 맞아. 정말 맞는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기로 했어.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어쩌면 영원히 고통받는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몰라. 어느 종교처럼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지. 누군가는 천국이 있다고 말하지만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하잖아. 어떤 사람들은 윤회에 대해서 말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는 않은데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는 건 유의미한 일일까, 무의미한 일일까? 어떤 척박한 삶을 살고 있어서 죽음 이후는 편안하고 평온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보다 나빠질 것이 있을까, 싶어. 


어쩌면 난 죽고 난 다음에는 글을 쓰지 못해서 혼자 울고 있을지도 몰라. 살아 있을 때 글을 많이 쓸 걸,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지. 죽은 다음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으니까. 나는 결국 공허 속에 버려질지도 몰라. 죽은 사람들은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니까 자꾸만 유령으로 나타나고 접신으로 나타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 죽음도 어떤 관문이지 않을까, 싶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의사 선생님은 죽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진 않으셨지. 그렇지만 내가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어. 그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스물 여덟까지만 살기로 결심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일 년이라는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죽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몰입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 그 누구도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평생을 이 논제를 가지고 고민하게 될 거야. 내 평생이 그리 길지 않다 해도.


가장 무서운 건 버려지는 거야. 가장 무서운 건 잊혀지는 거야. 죽은 뒤에 나는 버려지고 잊혀지겠지. 나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쩌면 가장 끔찍한 악몽으로 나를 내던지는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도망칠 곳이 없구나, 싶어.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 그러니까 진작에 이렇게 하라는 말을 들으면 좋았잖아, 라고 말이야. 나에게 말하진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당신의 생각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어떤 마음인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아.


당신은 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걸 알고 있지. 나는 그 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천국의 문턱이라도 밟았으면, 지옥불의 열기라도 느꼈으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었겠지. 죽음 이후는 이런 것입니다. 어쩌면 천사가 내 인중에 손가락 자국을 더욱 깊게 남겼는지도 몰라. 모든 것을 잊고 내려가렴. 그래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지독한 두통을 느꼈고,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아. 살아 버렸다.


내가 두려워하던 오늘이 왔다.


죽었으면 맞이하지 않았을 오늘이 와 버렸다.


내 경험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 자살 시도에 대해 상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옳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 자살에 대해 보도할 때 말이야. 요즘 우리들은 자꾸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글을 읽었잖아. 너무 자세하게 보도되어서 나는 그걸 읽고 어떤 식으로 죽는 게 덜 아프고 덜 힘들지를 알 수 있었어. 그러니까 자세하게 쓰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 그렇지만 당신, 알고 있잖아. 나는 가끔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세상에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 꼭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나는 그 사명을 이미 다 해버린 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내 삶이 이렇게 쓰고 남은 것처럼 쓰이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 차라리 내가 누군가의 쓰다 남은 삶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가서 물을 수 있겠지. 저를 어디에 버리신 건가요? 저를 좀 더 확실하게 버려 주시면 안 되나요?


내가 당신의 쓰다 남은 삶이 아닐까? 나는 가끔 당신에게 묻고 싶어. 당신에게, 사랑하는 당신에게. 나는 왜 존재하는 것 같아? 내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이라고 나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면서도 가끔은 그렇게 묻고 싶어. 그렇게 묻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해. 그 무엇도 이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그런데도 나는 죽음을 상상하는 것처럼 이렇게 질문하고 나면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당신은 결코 이 질문을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나는 천박한 글을 쓰고 있는 척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앞으로 일 년 동안 나는 어떤… 천박함들을… 그래도 문장으로 포장하기 위해 애를 쓰겠지. 그런 천박함에… 누군가는 관심을 보일테고 말야. 천박하다는 건 욕이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게 사랑이잖아. 그건 사랑스럽다는 뜻이야. 


그래도 당신, 이런 내가 살아 있기를 바라?


당신은 응, 이라고 대답하지 않겠지만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하겠지. 나는 당신의 말을 짐작할 수가 없어서 과거의 당신이 했던 말들을 파헤쳐 봐. 그 곳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당신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살아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지. 고생했다고 말했고, 살아달라고 말하지는 않았지. 그래도 당신은 내가 살아 있기를 바라?


당신이 응, 이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놀랄 거야. 비명을 지를지도 몰라. 그래도 당신, 나에게 응, 이라고 대답해 줄 수 있어? 사랑하는 당신, 한 번만 나에게 살아 달라고 말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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