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박하 Dec 30. 2019

3. 오늘은 운동도 가지 않았어.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못했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여섯시에 눈을 떴는데 어젯밤에 세웠던 계획들이 전부 희박한 호흡처럼 흩어졌어. 운동도 가지 않았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으니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항상 응원해주고 지켜봐주고 있는데, 미안해. 오늘은 당신의 기대를 모두 저버린 불편하고 불안한 날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르면서 오늘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구나, 시간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어. 당신에게 말을 붙일 용기도 나지 않아.


당신은 나에게 더 이상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했지. 발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은 움직이면서 해야 한다고 했어. 알아. 이해해.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아. 항상 당신이 맞고 나는 틀려. 잘못된 선택을 자꾸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내가 싫어. 오늘도 내가 조금 더 싫어진 날이고 우중충한 날씨 덕분에 모든 것이 내려앉는 기분이야. 조용하고 고요한 곳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서 글을 쓰고 싶어. 아무도 없는 어둑한 방에서 오직 활자만을 타이핑하면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동정하고 나를 비난하고 나를 매도하고… 오늘은 그러고 싶은 날이야. 무엇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무엇도 나를 위로할 수 없는 날이야. 억지로 밝은 척을 해 보았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았어. 억지로 행복하다고 중얼거려 보았어. 무엇도 마음 내키는 게 없었어.


살아 있는 게 당신을 낭비하는 것 같아 하루 하루를 버리는 것 같아.


당신 곁으로 가면 무언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그러면 당신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버리고 무언가를 내던지고 왔다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당신을 위해서, 라는 말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 당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런 거라도 생각하고 있는 거지. 생각만 많아. 나는 항상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우울한 것들만을 바라보게 돼.


떨어진 공모전이라든지.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이라든지. 버려진 것들과 잊힌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보면서 나 역시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고 누구도 원치 않는 것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 한편으로는 알아. 나는 부족해. 모든 것이 부족해서 충분하지 못해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아. 나는 나를 잘 알아. 오랫동안 나를 들여다봤기 때문에 우울한 만큼 나를 잘 알아. 오늘은 약도 잘 듣지 않는 것 같아. 날씨 탓으로 돌려 봐. 겨울이고, 비가 와서 우울한 거라고. 그래서 그만큼 나도 눅눅해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 탓을 해. 모든 것을 바깥으로 돌리다가 보면 안으로 곱아드는 순간이 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거라고. 내가 잘못된 거라고. 노력하지 않는 내가 못된 거라고.


당신은 이런 나를 좋아할 수 없겠지만 사랑하는 당신, 오늘도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가 나는 궁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있잖아. 오늘은 아침부터 눅눅하게 비가 왔어. 내 마음에도 비가 오는 것 같았어. 생각은 몇백번을 했어. 운동을 가야지. 일어나야지. 몸을 씻어야지. 바깥에 나가야지. 담배를 피워야지. 커피를 마셔야지. 몇 개의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저 늘어져 있고 싶었고 다 놓고 싶었고 다 포기하고 싶었어. 울고 싶었어. 한없이 울어서 나를 표현하고 싶었어. 눈물로 얼굴을 다 적시고 손을 내려다보고 싶었어. 비어 있는 손을 보면서 한숨을 뱉고 싶었어. 푸우, 하고 숨을 쉬고 싶었어. 그저 숨을 쉬고 싶었어.


있잖아. 살아 있다는 게 너무나 무거워.


내가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벅차고 두렵기만 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라고 하지만 나는 도저히 내 삶을 소중히 여길 수가 없을 것 같아. 모든 것이 실패하고 모든 것에 무너지고 모든 것에 망가지는 삶이 너무 여리고 연약해서 나조차도 손을 댈 수가 없어. 아무도 만질 수 없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그런, 나의 시간에는 도전하는 것조차도 힘껏 뭉개지는 것 같아. 있는 힘껏, 망가지는 시간. 내가 망가뜨리고 있는 나의 시간.


오늘은 정말 뭔가를 하고 싶었어.


정말로 뭔가를 하고 싶었어…….


결국 아무것도 못 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 줘. 정말로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도전하고 싶었어. 운동도 가고 싶었고, 구직 센터에 가서 일자리도 알아보고 싶었어. 상담도 받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어. 노래도 부르고 싶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술도 마시고 싶었어. 많은 것을 하고 싶었어. 다 과거형이야. 결국 나는 우울하고 싶어져서 우울하게 타자를 두드리고 있어. 누군가는 나보고 오늘 하루를 버렸다고 하겠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운동을 가지 않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나는 오늘 하루를 버린 거라고 생각해?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비난해. 오늘을 버렸구나. 나는 또 소중한 오늘을 버렸구나.


그렇지만 정말로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


어떤 결과가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 자랑스럽게, 이것 보라고. 나도 뭔가 해냈다고. 성공했다고. 이제 이 성장을 발판으로 더 나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항상 결과 없는 노력을 하는 것 같아.


나는 노력했는데. 아무도 내 노력한 시간을 알아 주지 않아. 사랑하는 당신만큼은 알아주면 좋겠는데, 그럴수록 사랑하는 당신에게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당신에게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째서 잘못된 일만 계속되는 걸까? 나는 왜 잘못만 하고 있는 걸까?


오늘은 조금 울고, 내일부터 다시 힘내볼게. 그러면 안될까? 




작가의 이전글 2.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