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습니다.
근황을 전하자면 저는 여전히 썩 좋지는 못합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하루 앞을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당장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힘겹다는 느낌을, 요즘 사람들은 잘 이해해 줄 것 같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 버겁다는 느낌. 이 세상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부피가, 면적이, 과분하다는 느낌. 아주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대로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 저는 그런 생각을 여전히 곧잘 떠올리고, 새삼 생각하고, 다시 곱씹습니다. 네, 저는 여전히 좋지 못합니다. 아주 좋아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앞으로도.
요즘에는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50분 정도 제 얘기를 늘어놓는 시간인데,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든 자유롭게 말문을 엽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도 좋고, 지난 일주일 동안 인상 깊었던 사건을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도 괜찮습니다. 무엇이든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중간 과정을 거치고 30분 정도가 되면 저는 울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약 두 달 정도 상담을 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매번 갈 때마다 울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무엇으로 시작하든,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것은 전부 제 이야기였고 저는 제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울게 됩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렇게 슬프고 억울한 걸까요. 저는 그냥 제게 있었던 일과 제가 한 생각들을 말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아 보면 자기 연민이나 동정심과 관련 없이 그저, 고단하고 지친 마음으로 깨닫게 되어 버립니다. 지나간 시간 속의 내가 무엇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지, 외면하고 있었는지, 또 무심결에 했던 버릇이나 습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이사를 하면서 여러모로 돈이 나갈 일이 많았습니다. 이삿짐 센터를 부르고, 필요 없는 가전제품을 중고로 처분했습니다. 방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청소해 줄 사람을 구했고, 도배도 해 주고 나왔습니다.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저는 고양이를 키워도 된다는 말을 듣고 계약했었지만, 나갈 때가 되니 고양이를 키워서는 안 되었었다고 말하며 청소를 하고 나가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부당함이나 불공평함을 말하자면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 금전적 문제와 양심적인 문제, 충분히 힘을 내기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그저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하고 업체를 예약했습니다.
이사 당일, 중고 가전을 가지러 온 업체는 주기로 했던 값을 깎았고 짐을 옮겨 준 이삿짐 센터 사람들은 추가금을 받았습니다. 떠나온 집을 청소해 주신 분들도 추가금을 요구했고, 저는 그냥 다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중고 가전을 가지러 온 업체는 작업이 힘들었고 가전제품이 생각보다 오래된, 낡은 것이기에 값을 깎아야겠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 업체가 한 일은 고난이도의 작업이라기보다는 그저 그들이 서툴렀기에 어려웠던 것이고 가전제품의 상태는 이미 모델명과 사진을 보내주었던 것이기에 이제 와서 값을 깎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지만, 논쟁하기 싫고 귀찮아서, 이 사람들이 빨리 떠나 주길 바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이삿짐을 옮겨주신 분들도 일이 힘들었다면서 돈을 더 요구하셨고, 청소를 해 주시는 분들은 구체적인 이유 없이 추가금이 발생했다고 말해 전부 다 주었습니다. 금전적으로 약간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사실 그 돈은 제 돈이 아닙니다.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아니었기에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되는 돈인데, 제 수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냥 써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하냐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아가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아주 약간만 더 지치는 일이 생기면 바로 무너지곤 합니다. 그 사람들이 저에게 얹어 주는 스트레스는 너무 과중했고, 저는 그저 돈을 주고 모든 것을 빠르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처리했습니다. 피곤하군요. 왜 사람들은 자꾸 사람들을 갉아먹으려 하는 걸까요. 아마 다들 삶이 힘겹고 버겁기 때문이겠죠. 모두가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고 여유가 없으니 기회가 될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손에 넣고 싶어서 그럴 겁니다. 제가 이해해 줄 이유는 없지만, 그렇게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끼리 싸워서 또 남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쉽게 저를 훼손하고 갉아먹습니다. 제 권리를 잘 챙기지 못합니다. 남이 저를 훼손하고, 침범하고, 상처 입히고 빼앗아 가게 그저 내버려 둡니다.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것을 얻고 떠나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마 모두가 결국에는 저를 떠나게 될 것이고 저는 언제나 혼자일 것이므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입니다. 무언가를 원하는 관계는 차라리 명확합니다. 시작과 끝이. 그들을 멀리 쫓아 보낼 수 있다면 그 정도의 값은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추가금을 지불했고, 가격을 깎아 주었고, 청소와 도배를 해 주었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나오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사랑하는 제 가족 고양이가 무언가 불결한 것, 더러운 것, 냄새나고 이물질을 생성하는 지저분한 것 취급당한 일입니다. 저는 고양이가 없으면 살 이유도, 필요도, 의미도 없는데 누군가는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죠. 말도 통하지 않는 동물이 뭐가 그렇게 소중한지, 왜 그렇게 끔찍이 사랑할 수 있는지 전혀 공감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것도 저에게는 지나치게 피곤한 일입니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얘기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제 고양이가 저를 구원해주었고 제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제게 많은 위안과 행복을 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난이나 몰이해를 마주할 때 속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요.
제가 미련하고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을 너무 순하게 산다고, 강단 있지 못하다고, 악착같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손해만 본다고, 힘들게 산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난하면서 저를 도와주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사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새집은 이전 집보다 낫습니다. 예전 집으로 도망치듯 이사를 올 때, 이삿짐을 옮겨주신 분이 그렇게 말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사는 지금 집보다 더 큰 집으로 갈 수는 있어도, 더 작은 집으로 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그러니 점점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서 더 잘 되고, 잘 풀리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때 저는 지금보다 불안정했고, 아무것도 없었고, 모든 것이 막막했고, 지금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분의 말이 참 감사했습니다. 그때 저는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더 좁고 작은 집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분의 덕담에 감사하며 감동을 받았는데, 정말 그분의 말대로 이전 집보다 좋은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기억에 이렇게 오래 남아서, 저를 또 울게 만듭니다. 간혹, 그렇게 사소한 것에 자꾸 울게 됩니다.
저는 나아질까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영원히 낫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작 한 걸음, 고작 반 뼘일지라도 저는 나아갈 것 같습니다. 저는 나아지고 싶고, 더 괜찮은 삶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싶습니다.
어느 날 자려고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문득,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희망도 근거도 없이 그냥, 좀 더 살아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살아보려 합니다. 반 뼘씩이라도 나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