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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Nov 28. 2016

외로워야만 사람이다

그 과정 속에서 외로움을 다루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외로웠다. 외로워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다. 돌이켜 보면 누구나 그랬다. 20대에게 외로움은 유행병이나 전염병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저질렀던 수많은 미친 짓과 어리숙한 행동들을 설명할 길이 없을 테니까.


몸도 따라주지 않는 주제에 술 처마시고 주정 부리는 거, 며칠을 씻지도 않고 밤새 게임에 몰두하는 거, 매분마다 SNS에 기웃거리는 거, 심지어 자체 공강을 일삼았던 것도. 그래도 괜찮았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으니까.


‘외로움은 평생 풀 숙제’라며 다들 그 어려운 걸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외로움이 우리에게 착하게 굴었던 적이 있던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글쎄, 덕분에 적지 않은 연애 경험을 갖게 됐지만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사랑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보거나 상대를 헤아리기도 전에 무모한 접촉을 시도하는 도화선이 됐을 뿐이다. 그런 기억들 또한 지금의 내게는 유의미한 일이라 믿지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종종 든다.


외로울 때는,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을 때는, 상대의 좋은 점이 마치 그 사람의 전부처럼 보인다. 사람은 단면적인 존재가 아니고,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 사람과 있으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 같다는 희망. 외로움은 그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사람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사실은 연애 따위로 그토록 거대한 외로움이 채워질 리가 만무하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걸 깨달은 나는, 연애가 아닌 다른 것으로 고독을 채워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그건 얼마간 유효해 보였고, 심지어 효과도 더 좋았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때의 충만함,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느끼는 안정감…. 하지만 대부분은 순간적이었다. 게다가 지속 가능성은 연애보다도 떨어졌다. 매번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야 했다는 말이다.


누굴 만나는 것도 뭔가 해보려 애쓰는 것도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분명 있었다. 집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으면 청승 맞게 눈물이 났다. 혼자인 것이 너무 슬펐다. 내속에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외로움의 자리에 온갖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잠이나 자야지, 해도 그런 날엔 꼭 불면이었다.


내가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홀로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만 같은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그런 내가, 잠시 외로움이 멎는 경험을 했다.

함께 잠들고 눈뜨는 사람이, 언제나 살을 맞대고 있을 존재가 생긴 이후부터다. 새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소속감도 한몫했을 테다. 나를 구성하는 것 중에 외로움의 비중을 치자면 팔 할쯤 될 것이라 짐작됐는데, 그 커다란 것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자 정말 기이한 일이 생겼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 충족되어 있었다. 그 자체로도 좋았기 때문에, 누굴 만나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지 않았다. 나의 흥미를 강렬하게 끄는 것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사실은 텅 빈 충족감이었던 것이다. 이대로도 충분히 좋아. 그런 생각에 잠식되었고, 나는 차츰 멍해지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퇴근 후 피곤한데도 영화를 예매하게 만들었던 것도, 친구와 매일 밤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으러 다녔던 것도, 술과 음악에 취해서 주말마다 밤을 새우게 만들었던 것도, 책을 읽게 한 것도, 더 좋은 음악을 듣게 한 것도, 결국에는 외로움의 힘이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안으로 멀리뛰기』라는 책에서 이병률 시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우리 모두 병에 걸려 있잖아요. 외로움이라는 병. 하지만 젊은 사람한테 외로움은 약이 될 거예요. 외로움이란 스스로 ‘자존(自存)’하기 위한 방식에서 생겨나는 거니까. (중략) 혼자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갖느냐가 결국 그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외로움의 세포’를 잘 다스리면 괜찮은 사람, 나은 사람이 돼요. 이건 명백히 확실해요.”


외로움은 분명 나를 괴롭게 했다. 그것만 없다면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아지리라고, 덜 슬퍼지리라고, 불안하거나 부족한 나의 모습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외롭기 싫어서 나는 자꾸 사람들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더 나아 보이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사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을 위해서 영화를, 책을, 음악을 찾았다. 좋은 것들을 흡수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는 애써 뭔가를 만들거나 쓰려고 발버둥 쳤다. 그 괴로움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나를 만들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


어쩌면 그 과정 속에서 외로움을 다루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절하게 외로웠던 날들에 자주 들여다보던 시를 글의 마지막에 붙인다. 다시 들여다보니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게 만드는 것도, 산 그림자가 굳이 마을까지 내려오는 것도, 종소리가 널리 널리 울려 퍼지려는 것도 외로움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우리는 그 힘으로 무엇을 하게 될는지.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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