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아론 Nov 02. 2017

잃을 게 있다는 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을 좇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찾아내는 능력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다. 아니, 돌아보면 내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스무 살 무렵 우리 모두가 그랬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고 싶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고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고 싶었고(실제 밴드를 잠깐 했다), 격투기를 배우고 싶었고(여전히 할 줄 아는 건 숨쉬기뿐), 3개 국어를 섭렵하고 싶었고(한국어만 잘한다), 주식 천재가 되고 싶었다(경영학과라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마음에 쏙 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두서없는 욕심들을 따르고 애쓰는 게 즐거운, 청춘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보니, 그건 청춘이어서가 아니라 성격이었다. 직업이 생기고, 돈을 벌고, 책을 내고… 남들이 보기엔 안정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데도 자꾸 하고 싶은 게 생겼다.


아니, 이 역시 내가 유별나서가 아니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매일 저녁 크로스 핏을 하는 사람, 주말마다 독서 모임을 나가는 사람, 디제잉을 배워 금요일 밤에는 클럽 무대에 서는 사람, 뜬금없이 프랑스 자수를 놓는 사람…. 일상이 되어버린 일 이외에, 다들 자신만의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노력들이 전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지 않다는 것. 새로운 것에 마음 쏟으면 즐거운 동시에 ‘괜한 짓 하는 건 아닐까’, ‘혹시 망하면 어쩌지’ 불안했다.


일본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여행 일본어 정도는 멋지게 하는 나’를 꿈꾸며 시작한 일본어 공부도 그랬고, 영상에 대해 1도 모르는 주제에 ‘유튜버가 되겠다’며 촬영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첫 책이 나오고 나서 ‘다음 책은 스스로 기획하겠다’고 다짐했을 때도 그랬다.


목표를 이뤘을 때 느끼게 될 기쁨만큼 그것을 잃었을 때 겪을 두려움 혹은 괴로움도 점점 가깝게 느껴졌다. 욕심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자꾸 넘어뜨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누군가 인생을 초연하고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면 무작정 부러웠다.


다 포기하고 한 그루의 나무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땅과 바람과 물과 햇빛,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라 슬펐다. 그런데 며칠 전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을 보다가 예상치 못한 답을 얻었다. “잃을 게 있다는 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지.” 킹스맨 해리(콜린 퍼스 역)의 대사였다.


악당에게 죽임을 당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냉정함을 잃어버린 킹스맨 에그시(태런 해저트 역)에게 말했다. “내가 죽는 순간 무엇이 떠올랐는지 아느냐”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완벽한 킹스맨처럼 보였던 그이지만 삶에 집착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죽는 순간 아쉬울 것도, 그리울 것도, 후회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엉뚱하게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였을까. 나는 내가 꿈꾸는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그것들이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만 욕심내서 뭔가를 가지려고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내가 인생에 ‘잃을 수도 있는 것들’만 만들어 내고 있다며 야속해했기 때문이다. 나를 불안하고 두렵게 만든다는 이유로, 꿈과 목표들의 밝은 면은 보지 않고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바보처럼.


“욕망과 행복은 둘 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욕망은 욕망대로 최대한 노력해서 추구하는 근력도 필요하고 행복은 행복대로 너그럽게 감지하는 촉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욕망을 위해 행복을 포기할 필요도, 행복해지기 위해 욕망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임경선 작가의 책 『자유로울 것』에 적힌 구절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 나면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현명하게도 그 둘 사이에 선을 그어둔다. 그녀는 “행복이란 얼만큼 행복한 일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 상태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내내 욕심쟁이였던 나는, 덕분에 종종거리는 것에, 욕심내는 것에, 그리고 종종거리며 욕심을 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에도 익숙한 사람이 됐다. 내 삶은 주로 실패와 그다음 실패로 촘촘히 짜여져 있는 셈이지만, 돌아보면 내가 이뤄낸 썩 근사한 일들이 반짝이고 있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욕심을 내려놓고 초연해지는 일이 아니라, 욕망을 좇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찾아내는 능력이었다. 요즘처럼 욕망이 가득한 시대에는 행복이 먼 얘기처럼 느껴진다. SNS만 켜도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보인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여행을 즐기는 장면들이 있다.


회사에서는 높은 스펙을 요구하고, 사회는 계속 성장할 것을 종용한다. 느긋하게 지금의 행복을 맛보는 사람에겐 ‘우유부단하다’, ‘철이 없다’는 딱지가 붙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기만 하고,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잃을 것이 있는 삶’을 긍정하기로 했다. 내 안의 욕망은 또 솟아오를 것이고, 나는 또 그것 때문에 종종댈 테니까. 그건 설레는 동시에 불안한 일이겠지만, 불행한 일은 아닐 것이다. 노력하는 사이에 내 삶은 한 뼘 더 가치 있어질 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동시에 더 자주 행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만 않으면 말이다.


Illustrator 키미앤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