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수도 없이 나를 꺾으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얼마 전, 집을 이사하며 사무실 겸 작업실도 함께 이사를 했다. 세무서에 가서 주소가 바뀐 사업자 등록증을 들고 돌아오는 기분이 묘했다. 나는 작년 2월에 사업자를 등록했다. 4월에 퇴사를 했으니 두달은 더 회사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설레발은 내가 잘 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일단 간단하고 신나는 ‘등록’부터 했다.
왜 사업자 등록증이 필요하냐고? 사실 나는 글도 쓰지만 향도 만든다. “작가이신데(or 에디터이신데), 어떻게 조향을 시작하셨어요?”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럴 듯한 계기나 이유는 없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의 나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던 사람이었다. 장기 집중력이 약하고 새로운 것을 매우(!) 좋아하는 성향도 한 몫하여, 수많은 것들을 배우러 다녔다. 글에도 몇번 쓴 적이 있는데 디제잉부터 작사까지… 범위도 참 다양했다.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 비슷비슷했다. 멋있어 보여서, 혹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조향도 그렇게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개월짜리 주말 수업을 등록했다. 기초반이었다. 끝나고 나니 아쉬워서 다음 코스를 찾아보았다. 그게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결국 조향은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오래 매달리고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가 만든 향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향수를 만들자! 사업의 ㅅ자도 모르는 9년차 직장인 주제에, 순진하게도 그런 목표를 세웠던 거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몇달에 걸쳐 조향한 것은 프리지아 향이었다. 파릇파릇 푸르른 풀잎향에 노오랗고 달콤한 꽃향이 더해진 그린 플로럴이었다. 향이 완성되었으니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였다.
나같은 개인이 향수라는 화장품을 제작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에, 제작할 업체를 찾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정말 많은 업체들에게 연락을 했다. 제작 수량만 듣고 단박에 거절하는 곳도 많았다. 재차 연락을 하면 잡상인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해줄 듯 해줄 듯 안 해주는 사장님도 있었고, 처음엔 호의적이다가 계속 가격을 올리고 또 올리며 협상을 하는 업체도 있었다.
공장까지 직접 찾아간 날도 있었다. 인천 서구의 어느 산업 단지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운전을 못하는 나는 전철로 거기까지 가는데만 두시간 십오분이 걸렸다. 사장님은 회사의 긴긴 역사를 이야기하고 자기 자랑도 약간 덧붙인 후에 내 사업 계획을 물었다. 누군가 내 제품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봐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솟아 오르는 흥분을 누르며 차분히 말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조향한 향으로 첫 제품을 만들거라고 하자 사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스스로한테 그렇게 자신이 있어?” 이미 잘 팔리는 것이 증명된 유명 브랜드의 향을 카피한 제품들도 판매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만든 향을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조말론 타입의 OOO 향과 딥디크 타입의 ㅁㅁㅁ 향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사장님이 아주 못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거라 믿고 싶다. “여기서 향수 제작한 작은 업체들이 잘 안되는 거 보면 마음이 쓰이더라고. 다 잘 되자고 하는 거잖아?” 그런 말을 덧붙이는 걸 들으면서, 나는 다음 번에 완성된 향을 가져와서 시향해드리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한 내 입은 웃고 있었어도 눈은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이후 그 사장님은 내 문자에 한번도 회신을 한 적이 없었다.
가깝지 않은 타인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건 쉽다. 잘 안 될거라고, 그렇게는 시작할 수 없다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왜 그런 고집을 부리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수도 없이 나를 꺾으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자주 좌절했고 가끔은 며칠씩 가만히 고여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뾰족한 극복 방법은 없었다. 타인이 휘두른 언어의 칼에 맞으면, 쓰러진 채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나는 수 밖에.
쓰러지고 일어나고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다보니 다행이 첫 향수가 탄생하는 날이 왔다. 그리고 그 향수는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약 1천명의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았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화장품 시장에서 1천명이라는 숫자는 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 놀라운 결과였다. 향수를 배송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리뷰를 남기는 것을 읽는 것이 한동안 나의 낙이였다. “향이 너무너무 좋아요” “하나밖에 안 산 게 후회돼요ㅜㅜ” 이런 말들을 읽을 때는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이런 향 만들어줘서 너무 고마워요”라는 문장 앞에서는 창피하게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두번째, 세번째 향수를 제작하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언어에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걱정이라는 탈을 쓰고 부정적인 말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을거면서 초치는 말 한마디는 꼭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럴 때마다 품 안에 숨겨둔 작고 다정한 응원들을 꺼내어본다. 그리고 매번 다짐한다. 쉽게 이길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날 선 타인들의 언어에 지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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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펀딩 중인 향수 링크
https://tumblbug.com/knittyhug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