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벌, 책 한권, 하물며 펜 한자루에도 내가 만든 이야기가 들어있다
며칠째 옷방을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고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청소’와 ‘정리’는 365일 내 To-Do 리스트에 들어가있는데, 성공(?)하는 것은 반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대부분은 시늉만 하다 말고, 잘못된 방식으로 시작했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진다. 한번에 착착 정리와 청소를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내 문제는 유전자에 있는 게 분명하단 확신까지 들 정도다. 전세계 하위 10퍼센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냐, 5퍼센트 일지도.
옷방 뿐 아니라 침실이든 부엌이든 책장이든 책상 위이든, 공간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나의 정리 결심은 실패하기 일쑤다. 문제가 뭔지는 나도 안다.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무언가를 버리는 것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 특별한 수집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은 기어코 책장을 정리하겠다! 마음을 먹었다가도 손에 잡히는 수첩 하나, 편지 하나를 지나치지 못하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면 그날 반나절은 훌쩍 날아가버린다.
동생과 함께 살때는 그나마 조금 나았다. 동생이 ‘버리기 요정’이 되어줬던 덕분이다.
“이거 올해 한 번이라도 입었어?”
“음.. 한 번쯤?”
“작년에는?”
“입었던 것 같기도 한데..”
“버려”
“내년엔 입을 것 같은데?”
“안 입을거야. 버려.”
동생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그 옷을 손에 꼭 쥔 채 망설이는 바보같은 나.
결혼하면서 이전에 살던 집에 많은 것들을 두고 오긴 했지만, 2-3년 새에 작은 집이 빼곡하게 채워질 정도로 물건들이 불어났다. 물욕이 많은 것도 아닌데 물건들이 새끼라도 낳는 걸까?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내 것’들 앞에서 고민만 거듭하는 내게 친구가 조언했다. “집에서 나올 때마다 무조건 뭔가 하나씩 들고 나와서 버려. 어제는 패트병 몇개, 오늘은 구멍난 티셔츠, 내일은 코팅이 벗겨진 후라이팬…. 문 앞에서 버릴 거 없나 둘러보면 뭐 하나는 꼭 있더라고!” 오, 그거 좋은 팁인데? 친구 말대로 뭐든 하나는 버리는 습관을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이전보다 집이 더 깔끔해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간과한 게 있으니…. 친구야, 우리 집은 너희 집보다 물건이 더 많아…. 그걸로는 어림도 없단다.
한때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면서 나 또한 내 삶을 바꿔보려 애쓴 적도 있다. 미니멀리즘 책을 여러권 읽었고, 여백의 미를 넘어 허전해보이는 빈 공간을 누리며 산다는 일본 미니멀리스트들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남기는 것, 하나의 물건을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것, 되도록 집에 새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 오래된 물건들도 선별하며 갯수를 줄여가는 것…. 책에 적혀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알아갈수록, 나는 평생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겠구나 깨닫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는 건 삶을 무겁고 복잡하게 하는 일 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조금이라도 홀가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에게 그런 바람이 있으니 나같은 사람도 미니멀라이프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걸 테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선물받은 꽃다발 포장지 끝에 적힌 친구의 ‘보고싶었어’라는 필체가 아쉬워 포장지를 잘라두는 사람이다. 입사할 때 썼던 수첩 속 구구절절한 메모들을 고이 간직해두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으면 괜히 명함을 집어올 것이다. 그 도시에 다시 가리란 보장도 없으면서.
쓸모와 실용만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정말 바보같은 짓이겠지만, 버리지 못한 것들이 나이테처럼 내 주변에 차곡히 쌓여가며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은 오래된 편지들 속의 오그라드는 문장들은 순식간에 어렸던 나를 소환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3년만에 꺼내 입은 아빠의 외투 주머니에서 나온 손수건을 발견했을 때는 또 어떻고. 고등학교 때 자주 입던 낡은 가디건, 스무살이 넘어서 내가 번 돈으로 처음 샀던 지갑, 10대 때 동경하던 만화책 속 주인공을 따라 산 비비안 웨스트우드 목걸이…. 이것들을 버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쓸모로 물건을 판단할 줄 모르는 나의 멍청함을 그 때만은 찬양하게 된다. 옷 한벌, 책 한권, 하물며 펜 한자루에도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들어있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 내 모습이 물건 하나로 단박에 내 앞으로 불려나온다. 그 때의 그 감정까지도 함께.
잊고 지내다가도 열어 젖히면 그리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르골처럼, 그 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갈 나만에 타임머신들이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다. 때로는 그립다는 마음도, 그리워할 추억들도 자주 잊고 살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그마저도 없다면 나는 나를 자주 잃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한 뼘 더 깔끔해지는 대신 한 줌 더 희미해질 것 같다. 그러니 삶이 좀 미니멀하지 않으면 어때. 까마득한 기억과 추억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먼 노랫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들이 한데 모여 묘한 소리를 내는 것에 귀 기울여가며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