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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아론 Mar 10. 2017

이 미친 세상에, 혼자를 기르는 법은 뭘까?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으로 살펴본 서울, 20대, 여성, 자취생...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저도 마니아 중 1인) 주인공 시다는 고시원에서 시작해 한 칸짜리 청파동 원룸에 살고 있는, 서울 자취생인데요. 훌륭한 분‘이시다’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준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인테리어 회사 막내로 ‘시다’ 역할을 하고 있죠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사는 20대 여성이 솔직해지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지는 서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웹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낭만도 없고, 멋짐도 없는 시다의 삶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우리의 얘기 같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네요.


# 내가 살고 있지만, 내 공간은 아닌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시다는 고향 안동에서 부모님의 반대를 헤치며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이란 생각만큼 멋진 일이 아닌 법. 원룸에 들어서며 설렌 마음도 잠시, 꽃무늬 벽지 때문에 ‘식물 성기의 악몽’을 겪게 되는 시다를 보니 제 과거가 떠오르네요(저도 자취집 3곳 중 2곳에서 꽃무늬 벽지를 만났죠). 

방에 들여놓고 싶던 심플하고 무채색의 물건들(가령 무인양품)은 놀랍도록 비싸고, 오히려 복잡한 색감과 모양새를 가진 물건들은 저렴합니다(다이소에는 왜 핑크색과 형광색이 많은지). 시다 말대로 ‘수고 들여 만든 못난 것들’로 채워지는 이 공간, 전세 계약 기간동안 잠시 머물다 갈 이 공간을 내 공간이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 인간이나 햄스터나 다를 게 뭐람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윤발이는 시다가 키우는 햄스터입니다. 2년 남짓 되는 햄스터의 수명을 생각하면, 영원히 회자되는 주윤발의 이름을 갖게 된 것 또한 시다의 이름처럼 아이러니한 작명이죠. 고양이나 개와 달리 햄스터는 인간에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단순한 햄스터의 삶과 인간인 시다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입니다.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주어진 대로 살다가 죽어가는 것 같은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기도 해요. “나도 돌고 돌지만 능동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똥밖에 없”다는 말이 웃기면서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요? 시다가 끊임없이 윤발이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자기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지네요. 


# 일, 하기만 하면 불행해도 괜찮나?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비록 한 칸짜리 좁은 집에 살지만, 시다는 ‘원하는 공간’을 명확하게 꿈꾸는 인테리어 회사의 직원입니다. “기회만 온다면 조오오오오오올라 멋진 그런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아무데나 들어가’서 대충 ‘일단 맞는 척’ 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밤샘 야근이 많아지면서 시다의 회사에는 ‘침대방’이 생깁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아무리 무리한 요구가 들어와도 “괜찮아, 안 죽어. 인마”라는 말로 다독이며 야근을 이어가는 사람들. “견딜 만큼은 불행해도 괜찮은”지 궁금해 하는 시다에게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제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네요…. 


# 깨닫지 않아도 될 것을 깨달아야 하는 밤들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밤늦게까지 놀다가 귀가하려던 시다는 골목길에서 담배와 불을 빌려달라는 남자들을 마주칩니다. 그들은 이내 “감사하니까… 오빠들이 재미있게 해줄게”라고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며 도망쳐 나온 시다와 달리 “쟤 잘 도망가네”라고 말하는 두 남자의 모습에 분노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 또한 ‘자정을 넘긴 딸들’로써 비슷한 상황을 한번쯤은 겪어보았기 때문이겠죠. 20대 여자로 살아가는 것의 기본 옵션에 어째서 저딴 성희롱이나 성폭행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자신에게 향하는 우려와 걱정, 체념 섞인 말들을 들으며, “그 말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시다는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가해자인 ‘그들’에게서 시다를 보호해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피해자인 시다를 ‘안전’한 철창 안에 가두는 일이죠. 시다는 말합니다. “그게 제가 세상의 악의를 감당하며 살겠다는 말은 아니”라고요. 


# 우리에겐 따뜻한 자조가 있다

출처: 다음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이렇듯 솔직을 넘어서 적나라할 정도로 현실을 보여주는 이 웹툰에서 우리는 묘하게 위안을 얻습니다. SNS에는 멋진 사진과 글들이 넘치지만 실제 우리 삶은 시다와 닮아 있으니까요. 보면 알겠지만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된 감성은 자조입니다. 수많은 국가 중에서 헬조선, 그 중에서 가장 ‘헬’인 서울, 그 중에서 약자인 여성, 그 중에서 가진 것도 보호막도 없는 20대, 그중에서 외로운 자취생…. 이 상황을 웃음으로 비틀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삶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욕망이 강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웹툰 속 시다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사회에게 질문합니다. 우리 또한 그런 질문들을 안고 살아가야겠죠. 그렇게 혼자를 기르고 있는 수많은 ‘혼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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