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을까봐 두려운 부분보다 영영 이대로였으면 하는 부분을 세어보려한다
얼마 전 주말,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날 따라 SNS 속의 사진들이 자꾸 나를 한숨쉬게 만들었다. 파리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 유명 브랜드의 새 향수 론칭 파티에 참석한 사람, 안 그래도 늘씬한 몸매인데 운동을 또 하고 있는 사람,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사람, 사람들.. 핸드폰을 내려놓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이때다 싶어 내 배위에 올라와 눕는 우리집 고양이 쿠키의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이대로 괜찮을까?
버는 돈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멋진 여행에서 인사이트를 얻은 것도 아니고, 몇달째 대단한 일 없이 살아온 내가 갑자기 한심해졌다. 그래놓고는 주말이랍시고 오후 두시가 넘도록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니! 이 귀한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고 있었다니! 이래서는 지금 이대로 영영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조급한 마음에 벌써 일어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누구라도 만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주말이 다 끝나가는 이 마당에 갑자기 나를 만나줄 사람이 있을리가 만무하지. 친구들은 각자의 주말에 전념하고 있었고 나는 더더욱 시무룩해졌다. 사람도 제대로 못 챙기고.. 흑흑..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대체 뭐니..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니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질문(이자 의문)이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행복이 아니라 불행에 기대기 시작했다. 들여다보면 무언가 이뤄야만 한다고 늘 재촉받아왔던 학창 시절과 회사 생활을 거쳐오면서 견고해진 불안이 그 한 문장의 질문(이자 의문) 안에 숨어 있었다.
어릴 때는 이런 나약한 불안 따위,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인생은 학교나 회사처럼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서, 내가 가진 선택지가 무한대로 늘어난다. 그 중 어떤 기준에서는 좋은 성과를 보일 수 있을지언정, 모든 기준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는 없다. 밤낮으로 열심히 글을 써서 글쓰기 점수가 높아지면, 그 시간만큼 방치해둬 지저분해진 집 때문에 집안일 점수는 낮아지는 식으로. 그러다보면 항상 어떤 부분은 마이너스 점수일 수 밖에 없다.
잘하고 있는 것들 도 많지만 어째서인지 눈에 가장 먼저, 제일 크게 띄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다. 어느날 심리학을 연구하는 박진영 작가가 쓴 <나, 이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책을 읽다 무릎을 탁 쳤다. 작가는 “실제로 비슷한 종류의 사건일 때 긍정적 정서에 비해 부정적 정서의 강도가 더 심하며 더 오래가고 주의도 더 잘 빼앗는 등 부정적 정서의 영향이 지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현상을 부정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한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라고 썼다.
그럼 그렇지,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열심히 글 쓰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 서서 집이 (여전히)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풀이 죽는다. 집이 깨끗하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 아쉬운 것들만 열심히 줄을 세울까. 그런 내가 못마땅 했는데 다들 그렇다고 하니 어쩐지 안심이 되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존재 화이팅)
언제나 불행과 불만은 힘이 세고, 몸집이 크고,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몸과 마음은 자꾸 불행과 불만 쪽으로 기운다. 그러다보면 더 중요한 요소들, 예를 들어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 아끼는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잘 지낸다는 것,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이 잘 버텨주고 있다는 것들을 잊는다. 내가 ‘무사’하다는 것에 대해 나는 너무 무심하다.
그렇게 무심한 내가 ‘이대로 괜찮을까?’ 다그치듯 뱉어내는 그 질문. 그 질문의 핵심은 ‘이대로’라는 단어에 포인트가 찍혀있다. 변함없이 이 모양으로 살게 되어도 넌 괜찮겠냐는 질문. 여기서 멈출까봐, 바뀌지 않을까봐, 나아지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질문. 그건 나 뿐만 아니라, 언제나 ‘더 나아져야 한다’고 주입받아 온 우리 모두가 쉽게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모양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도 분명 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혼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 열살이 다 되어가는 내 고양이들이 여전히 우다다 거리며 똥꼬발랄하다는 것. 회사 다닐 때와 다르게 글을 쓸 시간이 넉넉히 주어진다는 것. 매일 운동을 하며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도.
이대로 괜찮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변하지 않을까봐 두려운 부분보다 영영 이대로였으면 하고 바라는 부분들을 세어보려 한다. 내 삶이 무사하도록 지켜주는 일들을 발굴해서 내 눈길이 잘 닿는 곳에 두어야 한다. 그건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억지스럽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항상 눈에 띄는 건 아니라도 의외로 소중한게 많거든, 우리 삶에는.
Illust by BAR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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