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숨기고 과소평가하는 것도 나에 대한 거짓말이란 것을
어젯밤 꿈에서 나는 초등학생이였다. 깨고나니 기분이 얼떨떨했다. 무려 25년(!)을 거슬러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교복을 입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꿈 속의 나는 하복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내 무의식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어린 나 또한 그 시절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불안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게 한눈에 보이는.
초등학교 3-4학년 무렵 나는 거짓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큰 거짓말은 아니었다. 엄마의 직업을 바꾼다거나 내 수학 점수를 올린다거나 하는 식의 실용적인(?) 거짓말도 아니었다. 정말 사소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아무 효용없는 거짓말들을 했다. 예를 들어 등교길에 보지도 않은 꽃에 대해서 ‘엄청 예쁜 꽃을 봤다’며 거짓말을 한다던가,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먹어봤다고 하거나 본 적 없는 어른들의 영화(19금)를 봤다고 하는 식이었다.
사실 누구도 그다지 귀 기울여 듣지 않고, 기억도 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거짓’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있는 자리는 달랐다. 여느때와 같이 별 생각없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데,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커피를 마실 줄 안다고 했던가, 술을 마셔본 적이 있다고 했던가. 어쨌거나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친구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말을 버벅거렸다. 그때의 친구의 눈빛은, 뭐랄까, 불쌍해하는 건지 어이없어 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잦아든 거짓말은 고등학생 때 피씨 채팅을 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닉네임으로만 소통하는 상대들에게 거짓말하기는 쉬웠으니까. 그때의 거짓말들은 그야말로 나를 부풀리기 위한(?) 말들이었다. 집이 얼마나 큰지, 부모님이 얼마나 굉장한 일을 하고 계신지, 내가 얼마나 우수에 젖고(!) 똑똑한지(!!)에 대해 마구잡이로 거짓말을 했다. 내게 없는 것들을 마치 내 손 안에 늘 있어왔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공허하게 만드는지 그 시절에 많이 실감했다. 온라인 친구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일을 몇번 거치면서, 기억나지도 않는 거짓말에 발목이 묶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대가 끝나고 20대로 넘어갈 무렵에 나는 거짓말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인가 아닌가.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할 수 있나?’ 스스로 자꾸 검열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부터 그 검열이 조금씩 심해졌다. 뭔가 성취하거나 인정받으면 ‘이게 정말로 거짓이 아닌가?’ 의심했다. 에디터로써 ‘주간 마감을 끝냈다’거나 ‘평균 조회수보다 높은 글을 썼다’는 눈에 보이는 사실이 있는 성과 앞에서도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에디터들도 다 하는 일이야. 우쭐할 일 아니야.”
하지만 회사 일이란 연차가 올라갈수록 ‘내가 잘한 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정리하여 전시하는가가 중요한 법이다. 자기 자랑을 세련되게 하는 일도, 자신감을 셀프로 충전하는 일도 능력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보면 마음 속으로 몰래 ‘뻔뻔한 거짓말쟁이’고 생각했다. 화려한 꼬리를 활짝 펼쳐대며 으스대는 게 꼭 공작새 같다고.
물론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해낸 성과가 좋은 평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절히 자신을 전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그 능력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자신을 평가절하 하지 않을 것.
아쉽게도 나는 변하지 않은 채로 9년여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퇴사를 했다. 다른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내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대표이자 직원이자 비서이자 경리인 1인 회사도 세웠다. 더는 같은 회사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 내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0부터 100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나갔다. 재미있었지만, 분명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지치려할 때마다 나를 북돋아줄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타인에게 자랑할 줄 모르는 것만큼, 내가 해낸 일을 나 자신에게도 자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사탕을 만들었다고 치자. 사탕을 만들면서 생각한다. ‘열개만 팔리면 좋겠다. 열개면 설탕값도 나오고, 적어도 실패했다고 볼 순 없을 거야.’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10개, 20개, 50개를 사간다. 그러면 생각한다. ‘잘했어. 하지만 내일도 이만큼 해내야 진짜 잘한 게 아닐까? 아직 자만할 때가 아냐.’ 주변 사람들이 “요즘 사탕 잘 팔린다며! 축하해!”라며 칭찬하고 인정해줘도 “이제 시작일 뿐이지. 이번엔 운이 좋았던 거 같아.”하고 희미하게 웃는다. (생각해보니 진심으로 격려해준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하네. 흑)
내가 생각했던 ‘뻔뻔한 거짓말쟁이’나 화려한 꼬리를 펼쳐 으스대는 공작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히려 나를 옮아매고 자기 검열을 강화해왔다는 걸, 나는 몰랐다. 작은 성취라 할지라도, 내가 이룬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혹시 10대 때의 나처럼 스스로를 부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이게 문제라는 것을 어느날 <개떡같은 기분에서 벗어나는 법>이라는 책에서 ‘사기꾼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난 후 깨달았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사기꾼 콤플렉스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지성이나 기술, 역량 따위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현상이다. 사기꾼 콤플렉스를 겪는 사람들은 뭔가 성취한 후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고 어디까지나 운이나 연줄 같은 외부적 요인 덕분에 일이 잘됐을 뿐이라고 여긴다. 성공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과연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래서 성공을 할 때마다 기쁨이 아닌 안도감을 느낀다.”
자기 검열과 거짓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취를 (스스로에게도) 숨기고 성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 내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었다. 이 콤플렉스를 깨닫고 좀 더 자기 자랑과 성과의 전시를 잘 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회사 생활이 한결 쉬웠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1인 회사를 꾸려가는데 있어서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성공을 매번 셀프 축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잘했어’라는 말을 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엄마나 동생, 남편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메시지를 보낼 때도 있다. [나 요즘 잘한 일이 뭐가 있지?] 그리고 그들이 해주는 답을 들으면서 ‘맞아. 저건 내가 잘한 일이야’ 인정해주려 노력한다. (여전히 그게 잘한 건가? 그정도로 잘했다고 할 수 있나? 의심할 때도 있긴 하다.)
그리고 축하할 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축배’를 든다. 축배를 들고 싶어서라도 뭔가 축하할 일이 생기지 않았나 열심히 찾게 되는 좋은 점이 있달까. 취하면 흥겨워지기 때문에 내 성취에 대한 의심보다는 기분 좋은 만족이 좀 더 커지기도 하고, 술잔을 짠짠 부딪힐 때마다 “축하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감도 생긴다. 늦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스스로를 부풀리는 것도 거짓말이지만, 자기 자신을 숨기고 과소평가하는 것도 나에 대한 거짓말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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