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칭찬이란 자기 마음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잘했어. 잘 먹어야 기분 좋고 행복해지는 거야. 배고프면 다 소용없어. 내 딸이 꼭 필요한 일을 잘 챙기고 다니는 것 같아서 좋다. 멋있네.”
늦게까지 밀린 일을 하고 이제 겨우 저녁을 먹었다는 한탄에 엄마가 쏟아낸 칭찬들이다. 밥 한 끼 먹었다는 얘길 가지고 멋있다는 말까지 하다니…. 엄마는 매사 이런 식으로 칭찬을 남발한다. 딸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벌써 일주일 째 달리기하러 나왔어. 나는 내가 이렇게 잘 뛰는지 몰랐다? 뛰는 게 기분 좋더라. 다음 달에 마라톤 대회도 나가보려고.” (나: 한 달 만에 마라톤 대회까지?)
“오늘 아침에 매생이 국을 먹었는데, 그게 너무 너~무 맛있는 거야. 깜짝 놀랄 정도였다니까.” (나: 그거 엄마가 끓인 거잖아?)
“몸살 걸릴 것 같아서 미리 스포츠 마사지 받으러 왔다. 엄마 잘했지?” (나: 그으럼. 잘했지…)
매일 통화할 때마다 듣는 엄마의 셀프 칭찬들은 방식도 종류도 다양하다. 정말 작은 것에도 칭찬할 구석을 찾는 게 매번 신기하다. 사실, 고백하자면 엄마의 이런 자화자찬을 나는 ‘극성’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해주는 칭찬들도 별로 믿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거나 다 잘했다고 하지, 흥. 그렇게 남발하는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 어린 심통이었달까. 하지만 갑작스레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장례를 치루고, 일주일간 휴가를 내 곁에 붙어있던 두 딸이 서울로 올라간 후 엄마는 혼자 남았다. 아빠와 매일 얼굴은 맞대고 20년 넘게 살았던 그 집에서, 엄마는 홀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출근도 해야 했다. 그때 엄마를 지켰던 건 내가 유난스럽다고 구박했던 ‘셀프 칭찬’이었다. 잘하고 있어, 나는 잘 하고 있어. 그게 엄마의 힘이 됐다. 그제서야 나는 믿게 됐다. 셀프 칭찬이란 의미 없이 좋은 말이나 과잉된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나도 셀프 칭찬을 해봐야지. 엄마를 보고 결심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히려 노력할수록 내가 스스로를 칭찬하는데 인색한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됐다. “A를 끝냈다니, 잘했어”하고 칭찬하는 게 아니라 “A는 했는데 B는 왜 아직 안했지?”하고 다그치는 일이 더 많았다. C를 잘 해냈어도 D에서 실수를 하면 ‘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잘 해낸 C는 벌써 잊고 잘 못한 일만 헤아리고 있었다.
자화자찬도 노력을 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니. 난 왜 이것도 못해? 그렇게 투덜거렸더니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라고. 날 때부터 할머니와 둘이 힘겹게 살아오며 ‘잘 될 거야’ ‘잘 하고 있어’ 매일 매일 머릿속에 되새기던 말들이었다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었던 날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셀프 칭찬을 하겠다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책을 사 모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칭찬 일기를 쓴다느니 나에게 보내는 격려 편지를 쓴다느니 설레발만 쳤다. ‘셀프 칭찬’이라는 과제를 잘 마치면 내가 단번에 긍정적인 사람이 될 것처럼 단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칭찬하는 일은 긍정으로 가는 고속 열차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바닥에서 자기 자신을 딛고 일어서는 나직한 신음에 가까운 일이였다.
“힘내, 이번엔 잘 안 됐지만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누가 뭐래도 나는 네 편이야.”
“괜찮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누구나 친구에게 이런 응원의 말을 해본 기억은 있을 거다. 친구가 좀 더 힘을 냈으면, 기분이 좋아졌으면,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말이다. 셀프 칭찬도 똑같다. 가장 내밀한 상처나 괴로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친구가 건네는 말은, 누구의 말보다 더 확실한 효과를 보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지만 어색해서, 쑥쓰러워서 영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셀프 칭찬 멘트가 있다.
“그래, 뭐… 나 정도면 괜찮잖아?”
이게 무슨 칭찬이냐고 코웃음 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 저 말을 읊조리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 뭔가 웃겨서 입가가 씰룩씰룩 거린다. 장난끼 섞인 단순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돼’라는 자괴감이 ‘괜찮아. 그래도 이만큼은 하고 있잖아’ 하는 위안으로 변하는 게 느껴진다. 나 자신을 칭찬하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단지 이런 전환점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생각을 달리하면 ‘물이 반 밖에 없어’라는 불안감이 ‘괜찮아. 물이 반이나 남았잖아’하는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칭찬과 응원,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많아진다. 그건 부모님이나 지인의 죽음처럼 커다란 일일 수도 있고, 늦어지는 취업처럼 사회적인 일일 수도 있으며, 인간관계나 재정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크게 혹은 작게 무너질 것이다. 다행이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를 지탱해주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나 그걸로는 부족한 때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 때를 위해 여러분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셀프 칭찬을 준비해두면 좋겠다. 웃으며 말해보는 거다.
“나 정도면 괜찮잖아?”
“뭐, 이 정도면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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