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
친구를 만났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며 바쁘게 사는 친구 A와 나는 그 생활의 간극이 커져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다. 연휴에 시간이 생겼는지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고 나도 별다른 일정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A의 사는 이야기를 주로 들었다. 마음이 힘든 이야기, 병원에 다니는 이야기, 여행을 떠나는 부모님을 걱정하는 이야기. 나보다 훨씬 어른인 것 같았다.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과 마음도 있었지만, 친구의 책임감과 걱정이 가득 들어찬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을 터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와는 연락이 끊겼지만 친구와는 SNS로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친구 B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잊고 살고 있으나 가끔씩 인스타에 친구추천으로 B가 뜨곤 하는 것을 보긴 했다. 연락을 끊은 쪽은 내 쪽이라 그저 보고 넘길 뿐이다. 그런데 SNS도 거의 안 하는 A의 친구로 B가 연결되어 있다고? A의 계정을 통해 B의 SNS를 들여다봤다. 항상 똑 부러지고 무엇이든 나서서 잘했던 B였지만, 우리가 점점 멀어지던 시점부터 나는 그의 생활을 이해할 수 없었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서서히 연을 끊어 냈었다. 그리고 나는 사실 깊게 생각은 안 했지만, 그가 잘 지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되게 불안정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잘 지내네? 게다가 나랑 같은 직군이네? 나는 지금 이렇게 빌빌대고 있는데, 이 아이는 엄청 잘 나가잖아?
그때부터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 어디선가 B를 우연히 만나면 나는 B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다. 나는 아직 제자리인 것 같은데 B는 그가 대학시절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모습이었다. 졸업하고 벌어진 여러 상황 속에서 나는 그 아이를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는 자신의 능력만큼 잘 살고 있었던 거고 나는 그냥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싫을 수가. 무엇이 싫은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고, 이 상황이 싫은 건지, 아니면 그 친구가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A와 헤어지고 돌아오면서 이런 나의 못나고 후진 마음을 혹시나 A에게 들켰으려나, 그런 걱정이 들었다. 내 표정을 읽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나 역시 너무 후지고 구리다.
무슨 쿨병에 걸린 것처럼, 해탈한 도사처럼, 속세에는 미련이 없는 도인처럼 산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닌 나. 잘 사는 사람들이 부럽고 질투 나고, 왜인지 억울하고 싫은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이런 나의 후지고 작은 마음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도 용기 내어 기록해 본다. 이런 마음을 남겨 놓고 수개월, 수년이 지나서 다시 이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이때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상황이 힘들어서 모든 것이 밉게 보일 때구나'라고 다른 사람처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마음이 복잡해서 좀 걷고 싶었는데, 너무나 추운 날씨에 빠르게 후퇴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친구들과의 만남 시간이 줄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다는 것이다. 식사하고 바로 헤어져도 아쉽지 않고, 체력을 아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라는 마음이 드는 것. 어릴 적엔 낮에 만나면 밤까지 놀아야 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거의 방전 상태였다.
나이가 드는 것은 후진 내 마음이 근사해지는 마법 같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진 마음을 후지다고 돌이켜 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