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무침과 봄
오늘은 얼만큼 봄이 가까워져왔나, 살펴보는 일을 좋아한다. 동네 나무에 새잎이 나기 시작했는지, 수명산에 풀포기가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차근차근히 관찰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 지난 주와 다른 이번 주를 기대하곤 한다. 새벽 수영을 나설 때 캄캄하지 않고 밝은 날이라 이제 날(낮)이 더 길어질 것을 생각하면 설렌다. 요즘에는 새벽길에 딱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딱새 울음소리는 휘파람 소리같고 청량하다.
어제 엄마가 숙모네 들러서 냉이를 한봉다리 받아왔다. 포천에 주말농장을 하는 숙모네는 때가 되면 제철 채소를 잔뜩 보내준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먹는다. 가끔 엄마가 외숙모네 들렀다 오라고 심부름 시키면 귀찮아했는데 글을 쓰며 어쩐지 반성하게 되네...
그 냉이를 가지고 엄마가 냉이된장무침을 해주었다. 남은 냉이로는 냉이된장찌개를 해준다고 했다. 스윽스윽 냉이무침을 하면서 나에게 간을 보라고 한조각 입에 넣어주는 엄마. 그걸 아기새처럼 받아먹고 맛있다고 따봉을 날렸다. 냉이는... 봄의 맛이다.
그리고 냉이를 맛보며 봄이 왔다고 느끼는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와, 나 어른이네!
쌉싸름한 냉이의 맛을 어린 시절에는 안 좋아했다. 엄마가 먹으라고 하면 피하기 바빴다. 엄마는 냉이가 들어가면 나와 오빠가 먹질 않으니 아빠와 먹을 것을 구분해서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번거로움이 뭔지 전혀 몰랐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맛에 좀 더 관대해지고, 달고 짜고 매운 것만이 맛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늦게나마 깨닫고 나서는 즐기는 음식의 범위가 확연이 넓어졌다. 그래서 어른이 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냉이를 먹다니, 나는 어른이야.
표고버섯의 특유의 향이 싫어 어릴 때는 신라면에 들어있는 건더기도 별로 안 좋아했다. 그저 맵고 짠 라면스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었던 나... 요즘엔 없어서 못 먹는 표고버섯. 버섯은 정말이지 좋은 식재료다. 건강하고 맛있고 자극적이지도 않고 식감도 좋다.
위궤양을 앓으며 식단도 조금 조절하고, 의식적으로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다보니 조금만 매운 것을 먹어도 쉽게 탈이 난다. 탈이 날 것을 걱정하는 나는 맵고 자극적인 저 음식을 앞에 두고도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어른이 되나보다.
엄마가 남은 냉이로 된장찌개를 해줄까, 국에 넣어줄까 라고 물어봤을 때 망설이지 않고 된장찌개라고 외쳤다. 근데 그러고 보면 아직 어른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면 직접 찌개를 끓였겠지...
미세먼지와 산불만 없다면 더 없이 좋을 계절. 산불 때문에 더 없이 심란하다. 나라가 이토록 혼란한 적이 있었나. 냉이를 먹으며 어른이 되었다 싶다가도 산불과 탄핵정국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어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