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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버린 마음

by Swimmer in the Forest

1박 2일간 강원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교회 셀 친구들과 함께였고, 무려 8명이 함께 움직였다. 교회 청년부의 큰 공동체 모임에는 좀처럼 참여하지 않지만, 셀 모임에는 즐겁게 참여한다. 나를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편하고, 마음을 다 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벽을 쳐두어도 한결같이 다정한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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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차 마지막 일정은 가리왕산 케이블카였다. 강원도 여행을 하는 내내 높은 산새와 강의 풍경에 반했다. 그 높은 산맥 위에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니. 나는 몇 년 전에 가리왕산 케이블카 반대를 했던 사람인데, 그게 이 가리왕산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억도 새까맣게 잊었다가 주차장에 와서야 이 산이 바로 그 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거나 이왕 온 것, 잘 보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이 꼭대기에서 보는 산맥의 풍경은 엄청났다. 인증샷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연휴기간에 차를 끌고 강원도에 간다는 것... 은 운전자에게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운전을 못하므로 그저 조수석에서 운전자가 필요한 것을 해주고, 휴게소에서 샀던 간식을 입에 넣어주는 것으로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하지만, 오가는 시간 내내 운전을 한 이의 고생이 대체되지는 않을 터. 가는 길에는 7시간이 걸렸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5시간 정도 걸렸다.


내가 타는 차를 운전하는 셀리더의 표정이 밝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으로 많이 지쳤냐고 물어보았다. 웃으며 '네... 약간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니까 힘내라고 말을 했으나 걱정되었다. 왜냐면 정말이지 갈 길이 구만리였기 때문이다. 대신해줄 수 있다면 해주고 싶지만 나는 정말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럴 때 나는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곤 한다. 서울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그는 이런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은 몸이 지친 것이 아니라, 친구들 카톡방에서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 10명 정도 되는 대학 친구들 모임인데 예전처럼 자주 만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친한 모임이었는데 강원도로 여행 온 그를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 중심에는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셀리더는 몇 개월 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터라 이제 곧 조만간 청첩장 모임도 해야 하고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데 더 난감하겠다 싶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 시절, 그러니까 그의 나이 즈음(셀리더는 나보다 한참 어리다)에 나였다면 갑갑하고 속상한 마음에 울적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 대입해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데, 나는 앞뒤 상황을 확인해 보고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다면, 그저 나를 소외시키는 듯한 친구를 놓아줄 것이다. 그 친구와 동조하여 나를 소외시키려고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과도 멀어질 것이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상황에 놓인 당사자가 아니므로 호기롭게 조언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다르고, 내가 그들의 관계를 모두 알 수는 없으므로. 그저 그 친구에게 잘 못하거나 사이가 틀어질만한 일이 명백하게 없다면, 마음을 조금 놓아두어도 되지 않을까, 정도의 말만 건넸다. 이야기를 더 길게 하는 것이 상심한 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애써 다른 주제를 찾아 정막을 깨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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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고 침대에 누우면서 나의 늙어버린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관계에 집착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저 쿨하고 싶은 마음속에는 사실 누구에게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어있다.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관계에 있어서 약자라고 느꼈다. 그것은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차단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무언가를 꼭 누구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나는 혼자서도 잘하기 때문에 나와 같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을 구걸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지. 이런 마음으로 차단하고 외면하는 사람이 되었다.


곧 있으면 나의 생일이다. 생일에 크게 설렐 만한 이벤트나 기대하는 선물 같은 것이 없다. (작년 생일은 작년 한 해 가장 최악의 날 중에 하나였다.) 대학시절에는 친한 친구들 생일 때마다 여기저기 모이면서 생일 주간이라는 것을 치렀는데 이제는 그저 카톡 몇 개만 받아도 날 기억해 주는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전혀 섭섭한 것은 없다. 그런데 고맙게도 한 친구가 내 생일이 되는 주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해주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약속을 정했다. 오늘 어떤 친구가 날짜를 착각했다며 정한 날짜는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나 같았으면 다 같이 시간이 되는 다른 어떤 날을 다시 정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럼 그냥 시간이 되는 친구들끼리만 보자"라고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다. 오늘도 이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저 말했다. 그럼 그냥 되는 사람들끼리 보고 시간이 안 되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 생일이 뭐 대단한 거라고 다 모이나. 그저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되는 것 아니겠어. 나중에 또 만나면 되지 뭐. 이런 마음이었지만 분명 상대방은 섭섭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모른 척 외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섭섭한 마음에 나를 등지게 된다면?


그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섭섭한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사과도 아마 안 할 것이다. 틀어질 관계라면 그저 내버려둔다.


실망하고 싶지 않고 마음이 다치고 싶지 않아 벽을 만드는 지금의 나. 치열하게 관계를 고민하고 마음 졸여하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편하다. 그런데 그때보다 느끼는 짜릿한 행복은 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긴장과 극도의 행복함을 포기하고 편안함과 소소하고 안정된 행복을 지키기로 한다. 나이가 들어버린 마음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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