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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업 없는 생활

by Swimmer in the Forest

여유롭고 평탄해 보이지만, 내 마음이 타들어가는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 없기 때문이다. 과업이 없는 상태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 후회, 절망 같은 감정이 최근의 나의 상태다.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이야기해도 그 안에 묘하게 울적해졌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매일 아침 한 페이지씩 필사하는 글쓰기 책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처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으로 매일성경 읽기와 함께 지켰다. 수영-매일성경-필사-영어공부까지 이어지는 나의 아침 루틴이 없었다면 금방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매일 휘청휘청 대는 와중에, 이러한 반복이 나를 쓰러지지 않게 지켜줬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과 반복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현재 과업이 없다. 과업, 사전에서 찾아보니 꼭 하여야 할 일이나 임무를 뜻하는 이것. 나에게 이것이 없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이다. 나에게는 지금 너무 많은 시간과 이를 주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동동거림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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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드라인이 있던 일을 수행한 적이 언제였던가. 벌써 몇 개월 전이다. 교회에서 주어진 일 말고는 없다. 주일이 나에게는 가장 활동적이고 많은 일을 하는 날이 되었다.


오늘 필사한 문장에 이런 것이 있었다. 삶의 비결을 묻는 누군가에게, 여든이 된 유명한 조각가는 "삶의 비결은 과업을 갖는 것입니다. 평생을 바칠 무언가, 평생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 순간 모든 것을 쏟아부을 무언가를 가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절대 해낼 수 없는 과업이어야 한다는 겁니다!"라고 했다.


과업에 짓눌려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고요한 시간이다. 나는 나에게 내가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어떤 과업을 스스로 부여해야겠다고 (조금 전) 결심했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것도 양질의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무어든 만들어내고 기록해 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집에만 있지 말고, 덥다고 졸아서 아무것도 안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보고 기록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알려야지.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지 말고 구체적이고 매일의 과업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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