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길 5-17
카페 시리즈는 마무리했지만 구도심을 어슬렁거리다 뭔가 발견하는 일상은 계속 이어간다.
H와 이른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러 인디플러스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커피는 바우토커피! 마음이 통해 신부동 먹거리길을 가로질렀다. 아직 꽃은 일렀지만 이미 봄기운이 가득하다. 곧 하늘 가득 탐스런 송이를 내보일 커다란 목련나무를 만났다. 자목련인지 백목련인지는 펴봐야 알겠지 두런대며 이리저리 치어다보다가 담장 너머 강렬한 인상을 주는 뒷집을 발견했다. 한 마디로 폐가인데 작은 집을 압도하는 나무의 위세가 대단하다.
그 집을 자세히 보러 목련나무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공터가 열린다. 웰컴 투 동막골이다. 가운데 우물이 있다. 우물의 모습은 남았으되 물대신 잡동사니로 그득 차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더이상 물을 긷지 않는 우물은 사람이 빠질까봐 이런 식으로 메운다 한다. 또 우물자리를 함부로 없애면 좋지 않다는 믿음도 있다고 한다.) 우물 주변으론 텃밭이 좀 있고 시간의 층위를 달리하는 다양한 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공동우물이 있던 시절에 양지바른 동네가 북적거리던 모습을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우리가 꽂혔던 폐가, 북중길 5-17은 생긴 모양을 보니 수십 년 전 이곳이 개발될 때 들어선 공동주택 중 한 채가 아닐까 싶다. 담장과 대문은 잔뜩 기울어졌지만 오래 자란 탱자나무 울타리의 가시가 생생하다. 그리 좁지 않은 마당에 큰 꽃나무들이 제법 여럿이다. 폐가는 한 채뿐이고 깨끗하고 잘 가꿔진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듯하다. 평일 한낮에 개 짖는 소리뿐인 이 골목이 머잖아 꽃대궐로 바뀌리라는 기대에 조금 설렌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북중길이라 불리는 신부동 뒷골목에 이만큼 '구옥'이 남아있는 동네가 있다. 예전 사진을 보다가 어느 봄날 자목련에 이끌려 다가갔던 그 집이 '북중길 구옥동네'의 저쪽 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련 피는 날, 백목련부터 자목련까지 골목을 다시 걸어보기로 했다. 마법처럼 남은 동네에서 여전한 생기를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