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이 있던 자리

역전쌀상회

by 모링가

천안역을 오가며 안부를 살피던 집이 있다. '역전쌀상회' 간판을 달고 쌀과 곡식을 파는 가게다. 천안에 철도역이 생기면서 뚫렸다는 신작로, 지금도 사방팔방 뻗어나가는 시내버스가 쉴 새 없이 지나는 길가에 있다. '싸전'이란 말이 절로 나올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족히 백 년은 된 건물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천안 출신 작가 이기영이 신문에 소설 《고향》을 연재하던 1930년대, 이 거리에는 이미 관공서와 은행. 상점들이 즐비했을 것이다. 세월 따라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중 하나가 살아남은 건 아닐까. 전에 원주역 근처에서 아는 이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1층에는 작은 가게가 있었고 안쪽으로 방과 부엌이 이어져 있었다. 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본 2층은 뜻밖에도 다다미방이었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전형적인 일본식 상점 건물 마치야(町家)가 아닐까 싶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작은 집>에서 사랑에 달뜬 여인이 모던보이를 찾아 드나들던 2층 하숙집도 이와 비슷한 구조로 보인다.


뭣보다 아침이면 부지런히 가게문을 열던, 구순을 바라보는 주인장이 있었다. 지역신문과 방송에 여러 번 나오면서 모자가 대를 이어 장사해 온 사연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결국 역전쌀상회가 간판을 내렸다. 쌀가마, 곡식자루, 시간을 붙잡아두던 저울과 빗자루, 바가지 같은 것들은 다 치웠다. 툇마루가 달린 작은 방도 허물고 앞은 유리로 마감해 멀끔하니 흰 벽의 네모난 상자로 재탄생하였다. 간판 대신 임대 딱지를 붙이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건물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역전의 명수'로 남아주길 바랐던 마음이 좀 허전하다. 이 거리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소문이다.

2023.8월 역전쌀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