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왔었어? 언제? 그냥 누가 캔디(牛轧糖)나 만들어
“눈이 왔었어? 비가 아니고??”
토독토독 토도독...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오는 12월 둘째 주 일요일 오전 9시 43분. 포근 뽀송한 아이보리 체크 패턴의 이불 탓인지, 전날에 갓 바꾼 폭신폭신한 거위털 가득 들어찬 베개 탓인지.. 꿀잠을 자도 너무 자버렸습니다. 머리끝까지 덮고 자던 이불속에서 지렁이처럼 꿈틀대다가 겨우 얼굴만 빼꼼 내밀고 반쯤 떠진 눈으로 책상 위 전자시계를 멍하니 쳐다보았습니다. 09:43... 09:44... 09:45??? 3분쯤 멍하니 시계를 보다가 현실을 마지못해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저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란 녀석은 대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보기 좋아하는 본인은 토요일 자정에 괜히 이런 굳은 결심을 내렸었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소설 쓴다고 하는데 나라고 못 할 줄 알아? 흠.. 뭐, 새벽 4시는 나랑 안 맞고.. 5시!.. 아니다. 5시 반? 오키! 내일 한번 5시 반에 일어나 보자고!’
그러나 현실은... 눈을 떠보니 이미 시계에 박힌 아라비아 숫자들은 몸을 들썩들썩거리며 저를 비웃고 있었다지 뭡니까... 적잖이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전혀 아무렇지 않은 척.
‘아, 밖이 왜 이리 어둡지? 오오 비가.. 비가 오네? 역시 그러니까~내가 못.. 일어.. 났?’
아무리 변명을 해재껴도 무음 전자시계의 비웃음 소리는 귀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너 무음이라 하지 않았어? 전자시계..) 이런 한바탕 마음의 소란을 겪고서야 이불속에서 빠져나오니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토독토독토도독--- 12월인데 비라.. 이 참 뭔 일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2020년 한 해를 뒤덮은 마당에 12월에 비 내리는 것 정도는 황당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는지 그냥 자연스레 넘어가 버렸습니다.
한참을(1시간 정도) 미적거리다 핸드폰을 왼쪽 손바닥에 올려두고 더없이 왜소해 보이는 오른손의 검지로 핸드폰 화면을 스크롤하다 그제야 알아버렸습니다. 내가 들었던 그 빗소리는 눈이 녹아 처마에 떨어지기 바빴던 비의 탈을 쓴 눈이었었다는 걸. 간 밤에 혹은 아침에 눈이 꽤 내렸나 봅니다. 온갖 SNS 계정들은 첫눈의 달콤함을 전해주기 바빴지만 나만 그 희열의 군중 속에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흐아.. 나도 느끼고 싶네, 그 새하얀 눈송이들을’
비록 아침부터 이런 마음 아픈 일이 두 가지나 나를 연거푸 때려댔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디저트를 만들든 영상을 편집하든 글을 쓰든..
주방을 서성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핸드폰 속에 진열된 레시피들을 보았다 꺼뒀다 결국 저는 대만 누가 캔디(牛轧糖)를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만? 재료가 부족하.. 네요. 결국 저는 누가 캔디는 레시피만 정리해두고 택배 아저씨와의 만남 그 후를 기약하며, 영상편집에 몰두하였답니다.
[누가 캔디 만들기]
재료: 마시멜로우 150g, 우유분말 100g, 버터 35g, 땅콩, 크랜베리
1. 버터를 팬에 두르고 흰색 마시멜로우를 넣어 약불에 녹인다.
2. 마시멜로우가 녹을 때까지 주걱으로 뒤집어 주다가 우유분말을 넣어 섞는다.
3. 땅콩, 크랜베리 등을 기호대로 넣고 또 섞어준다.
4. 기름종이 위에 이상 ‘내용물’들을 올리고 평평하게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준다.
5. 냉장고에 2시간 정도 넣어두었다가 꺼낸 후 사각 큐브 모양으로 잘라주면 누가 캔디 완성
대만 누가 캔디 레시피는 정리해두었고 디저트 영상편집도 마무리되었고. 2가지를 놓쳤으니 2가지로 메꾸는 나만의 위로 방법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나만 아는 비밀.. ㅎㅎ)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풀이 죽어 늘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놓쳐버린 걸 되돌리진 못하지만 깔끔히 잊고, 아니 깔끔히 잊진 못하겠지만 그 기억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찌질해 보이지만 나라도 나를 위로해야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해보진 못했지만 첫눈을 보진 못했지만 대신 저는 조금은 부끄러운 기억을 마음속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또다시 나와의 약속을 잡았습니다.
2020년 12월 셋째 주 월요일은 5시 40분, 더 이상 시계의 비웃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