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위안을 품은 팥- 紅豆沙湯圓(훙더우-사-탕위안)
"얼음물에 담아두었던 공기들이 창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손가락 사이에 앉는다."
겨울 하면 역시 눈인데, 올해는 눈이 올는지.. 비쩍 마른 나뭇가지에 소복소복 눈이 씌워지고, 윤기 없는 빌딩 숲들이 크리스마스트리가 되고, 내 몸도 뜨끈한 디저트 한 그릇에 사르르.. 녹아 시냇물이 되어 흘러가는 상상을 두서없이 해봅니다. 상상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좋습니다. 입속에 달달한 디저트 넣어주는 일까지 더하면 더할 나위 없고요.
오늘 소개할 디저트는 홍콩식 디저트-탕위안을 품은 팥- 紅豆沙湯圓(훙더우-사-탕위안)입니다. (이 음식의 오리지널 버전은 팥죽과 탕위안으로만 만들어졌지만 코코넛 우유 러버인 본인은 개인 취향을 반영하여 코코넛 우유까지 추가해 별미를 더했답니다. 하지만 아래는 오리지널 버전으로 소개해 볼 예정입니다.)
우선 탕위안이라는 것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탕위안은 중국 송나라부터 민간에서 내려온 중식 디저트이며 정월대보름에 가족의 행복을 빌며 같이 먹는 음식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이는 비슷한 시기의 고려부터 전해져 내려온 동지팥죽에 들어간 새알과도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식감부터 천천히 설명해보려고 하는데 혹시 동지팥죽에 콩콩 박혀있는 새알을 떠올리셨나요? 그럼 새알의 쫀득쫀득한 식감과 함께 슬그머니 혀끝에 침투해오는 찹쌀의 향기도 기억나시겠지요? 환상적이지요! 이 탕위안이라는 것도 찹쌀로 새알처럼 만들어졌는데 다른 점은 새알 속에 흑임자 소가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겉에 있는 찹쌀의 피가 희고 얇고 부드러워 숟가락에 올려두면 흑임자 소의 무게를 못 이겨 동그랗던 모양이 슬쩍 돔 모양으로 가라앉아버립니다. 숟가락을 반쯤만 입속으로 넣고 치아가 아닌 윗입술로 탕위안의 배를 지그시 누르면서 입 안쪽으로 반을 빨아드리면 숟가락에 남은 반쪽 탕위안에서 흑임자 소가 쭉 흘러내려 숟가락에 작은 시냇물을 형성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입술이 데일 수도 있다는 점, 그래도 그 맛에 못 이겨 계속 먹게 되겠지만.ㅎㅎ) 혓바닥 위에 올려진 반쪽짜리 탕위안은 물렁물렁한 체형으로 흑임자와 찹쌀의 향기를 구강 벽에 구석구석 펴 바르기 시작합니다.
이쯤에서 팥을 소개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탕위안으로 이미 입안의 열기가 하늘을 찌를 때 연거푸 후후거리며 식히고 있을 테니까요.) 이때 마침 중불에 끓여주어 열기를 식힌 달달한 팥죽을 입속으로 보냅니다. 이러기를 반복하며 한 그릇을 뚝딱 먹어버리면 밖의 세상 만물은 이미 수묵화로 그려져 눈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뜨끈뜨끈해진 몸이 나른해지고 멍 때리며 창밖의 무(無)를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평온한 감정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4년 전 누군가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감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저는 아마도 ‘행복’이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나 3년 전부터는 행복보다 크고 가득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요함이 가져다주는 평온인 것 같습니다.
이별은 늘 낯설고 익숙해지기 어려우나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안아주는 마음은 천천히 물들어가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길을 떠난다면 훙더우-사-탕위안(红豆沙汤圆)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은 날입니다. 그곳에서도 따뜻한 향기를 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