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코코넛 밀크 파파야 푸딩-木瓜椰奶冻

by 강화


"구름 같은 연기라.. 거참 아름답겠군. 근데 그 연기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앞집의 연기가 뭉글뭉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걸 보면 겨울이 깊어졌다는 소립니다. 근데 이 연기들은 대체 무엇일까요? 참고로 앞집은 이 동네 몇 안 되는 구식 빌라입니다. 빳빳하게 각 잡고 시멘트 냄새 풍기는 새내기 빌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옛정을 고수하고 자리를 지키는 이 집은 할아버지 댁 연로한 진돗개 황구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합니다.

다시 이 정체모를 연기로 돌아가 보자면.. 시골처럼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도 아닌데, 추운 겨울 기온이 떨어지면 질수록 이 연기는 더욱 짙어진답니다. 이 연기 혹시 어느 곳에서 뿜어져 나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궁금증 해결해주실 분 어디 없을까요? 머리와 눈알을 힘껏 굴려봐도 답은 없는데 말이죠?

여하튼 호기심 가질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숭고한 것 아닌가 생각하며 앞집의 투둘투둘한 벽돌장 사이에 자리 잡은 시멘트처럼 호기심을 발라두었습니다. 철썩!

차곡차곡 지그재그로 올려진 벽돌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같이 궁금해집니다. 매일 아침 7~8시쯤이면 아침 밥하는 싱크대 소리, 저녁 7~8시면 스멀스멀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밥 냄새, 이렇게도 따뜻한 구석만 저한테 내보내고 있는 우리 동네 몇 안 되는 ‘청일점’. 이곳에도 우리와 비슷하지만 어딘가는 다른 자기만의 이야깃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간 기찻길에 흘러두고 왔겠지요?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의 삐쭉 튀어나온 귀여운 주둥이, 된장국 한 사발 들이키는 아빠의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이 모든 걸 바라보는 엄마의 바쁘고 투박해진 손. 지금 벌써 싱크대 소리가 챙챙 들리는 걸 보니 저녁식사 시간을 마무리하려나 봅니다. 전 아직 그 아무것도 시작 안 했는데 말이죠. 시작 안 했다면 시작하면 될터, 그게 무엇이 되든 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구름 같은 연기를 보다, 누군가의 평범한 저녁밥을 쓸데없이 상상하면서 오늘의 야식타임을 느닷없이 시작해봅니다.


[코코넛 밀크 파파야 푸딩 만들기]

재료: 파파야 1개, 젤라틴가루 10g, 코코넛 밀크 50g, 우유 50g, 설탕 2t


1. 파파야는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쪼갠다.

2. 파파야 씨를 숟가락으로 파내고 대기시킨다.

3. 우유 50g, 코코넛 밀크 50g, 설탕 2t를 넣고 중불에 끓여준다.

4. 3번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볼에 담아 식힌다.

5. 젤라틴가루 10g을 40g 차가운 물에 넣고 불려준다.

6. 젤라틴가루가 물을 다 먹었으면 레인지에 30초 간격으로 돌려서 녹인다.

7. 녹인 젤라틴은 4번에 넣은 후 저어서 반쪽으로 잘라 둔 파파야 구멍에 넣어준다.

8. 랩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싸서 냉장고에 2시간쯤 넣어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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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탱글한 새하얀 코코넛 밀크 속살이 주황색 빛깔의 파파야 몸속에 한가득 들어앉아 보기만 해도 얼른 한입 와-앙 먹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죠? 맛있는 음식일수록 기다려야 한다는 법. 프레이팅! 놓칠 순 없죠.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둔 코코넛 밀크 파파야 푸딩을 작은 접시에 옆면이 보이게 세워두고 찰칵. 걸쭉한 엄마표 오미자차를 뜨끈한 물어 타서 홀짝.


소소한 행복을 내 위속에 가득 담아두고 꿈나라로 떠납니다.




"아참! 내 정신!"

다소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뭔가 다급한 발걸음! 신발은 반만 신은 체 계단을 내달립니다. 투박한 한 손에는 보라색 보자기를 들었고 다른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화면 속 재촉하는 시곗바늘을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합니다. 겨우 도착한 기차역, 이제야 헉헉거리며 찬 공기에 숨을 연거푸 내뱉습니다. 입과 콧구멍이 쉭쉭 거리 더니 하얀 연기를 몽글몽글 구름처럼 만들어냅니다. 입 구름을 가르고 기차가 도착하자 보라색 보따리는 나에게 건네 집니다. 보라색 보따리 위 리본을 풀어헤치는 손, 그리고 투명한 유리통에 한 가득 담긴 코코넛 밀크 파파야 푸딩, 한치의 흐트럼없이 잘도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차창밖을 보지만 구름 같은 입김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보이질 않습니다. 기차는 서서히 그의 시선에서 멀어져 가고 어디론가 향해 떠납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입김이 사그라들고 구름이 걷히고 그의 얼굴이 보입니다.

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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