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눈이 참 싫어”
“...?”
“눈이 너무 지저분해, 이 길바닥 봐봐~ 참 나, 또 세차해야겠구먼”
“...”
“아가씨는 눈이 싫으면 베트남이나 그쪽으로 가요”
“...”
“그쪽에 가면 지저분한 눈 볼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아”
“하... 하... (이를 어쩐담.. 난감하네.. 뭐라 말을 이어야지.. 근데 난 왜 난감해하지?? 흠)”
이 둘의 대화는 좌회전하는 코너에서 힘없이 툭 끊어졌다. 애초에 이어지지도 않았지만 실낱같이 아주 미세한 연결고리가 생기려고 하려는 찰나 어색한 대화? 가 아닌 자기 고백에서 끝나버렸다.
나무 위 눈송이들이 별이 되어 찡긋, 물고기가 되어 찌르륵 정체모를 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 시간은 오후 1시경, 역시 사람은 바깥공기를 마시면서 살아야 하나 봅니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홀쭉하다 못해 껍데기밖에 안 남은 위는 식도에 대롱대롱 걸려 연거푸 꼬르륵 소리를 온 힘을 모아 “살려달라고~달라고” 애원을 해댔지만 이 놈의 심장은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두라고”하며 눈을 보며 찡긋, 비둘기 보며 생긋, 아주 신나 버렸습니다.
얼마만의 감옥 탈출인지 이 마음은 제멋대로 혼자 나부끼는 깃발이 되었습니다. 그 누가 알까요? 점잖은 외모와 멍 때린 눈동자 안에 숨겨진 이 줏대 없이 펄럭이는 마음을, 뭐 알고 싶지도 않겠지만 그냥 그렇다고요. 뭐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나만 이런 건가요?? 그렇다면 뭐 어쩌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좀 외톨이가 된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이런 외톨이가 되는 신세, 전 좀 즐기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서 괜찮습니다..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중이니 끼어들지 마소)
하여 오늘도 제멋대로 나부끼는 마음을 다시 잡아 집으로 들이고 위장을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밥은 감성이라, 위의 밥은 당연히 식량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둘은 가끔 역할 체인지하는 놀이를 즐겨한다고 하지요. 뭐 요즘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한 가지만 죽어라 파서 살긴 힘든 노릇이라.. 이 척박한 세상 속 살아남으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둘은 가끔 상대방의 역할을 대신해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풍부한 감성이 위를 달래주는 일도 있고. 고소한 음식의 향연이 마음을 달래주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무튼 별소리는 아니고 “ 오늘도 맛있는 음식으로 위장과 마음을 동시에 달래 볼까~?” 그러면서 준비하고 있다는 소립니다. (거참 말 The Love게 길게 말하네? 그죠잉?? 상상이 TMI인지라 저도 어쩔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새알 품은 호박죽 만들기]
재료: 찹쌀, 호박 1/5, 설탕 1t,
1. 호박은 나박 썰기한 후 물에 넣어 익힌다. (물은 호박을 잠길 수 있을 만큼만 넣기)
2. 익은 호박과 물은 함께 믹스기에 넣고 곱게 갈아준다.
3. 찹쌀가루는 미지근한 물을 넣고 반죽한 후 원기둥 모양으로 만들어 1cm 간격으로 잘라준다.
4.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준 새알은 끓는 물에 넣어 물 위에 동동 뜨기 시작하면 꺼낸다.
5. 믹스기에 곱게 간 호박을 종이컵 한 컵정도의 물을 더 넣고 끓이면서 미리 개어둔 찹쌀가루를 붓고 저어준다.
6. 호박죽? 위에 새알을 넣은 후 이파리로 데코 하면 끝 (역시 음식은 비주얼이지)
근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중식 디저트를 만들던 필자가 갑자기 한식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인가 하고 궁금해하실 누군지 모를 그 한 분을 위하여 구구절절 얘기해 보렵니다. 실은 중식 호박 디저트를 만들려고 하다 계획에 차질이 생겨(실패했다는 소리) 호박죽이 되어버렸다는.. (중식이든 한식이든 뭣이 중헙니까? 걍 맛있으면 됐지!라는 위로를 받을 준비는 다 되었으니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럼 이 호박죽의 맛을 얘기해 보자면.. 바로 실패한 쓴 맛을 달래주는 다행의 맛이라고나 할까요?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맛 (조금 오싹하니 이건 패스)? 벼랑 끝에서 흔들거리다 떨어졌는데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 목숨은 부재한 맛? 부드럽게 흐르는 강물같이 스르륵 넘어가는 식감과 쫀득쫀득한 새알의 컬래버레이션, 온몸이 꽉 차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맛? 상상이 되십니까?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인 것 같습니다만.
조금씩 조금씩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릇을 보며 갑자기 오전에 만났던 이름 모를 택시기사 아저씨의 자백이 떠오릅니다. 눈이 증~~말로 싫다던 아저씨는 호박죽은 좋아할까요? 너무 달아서 싫다고 할까요?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말은 나오기 힘들겠죠? 다시는 스칠 일도 없는 그 아저씨가 이 타이밍에 왜 생각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호박죽에 대한 확고한 의견이 궁금하긴 합니다. 뭐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상상이나 열심히 해보는 걸로.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수도?
“난 호박죽이 싫어, 왜냐고? 다 먹고 나면 그릇에 계란 노른자를 덕지덕지 묻혀놓은 것 같잖아. 지저분해 보여”
“호박죽 좋지?? 아가씨는 어려서 모를 수도 있는데.. 라떼는 말야~ 호박이 얼마나 귀했는 줄 알아??? 그게......(웅얼웅얼웅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