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탕쉐리(얼음사탕+배)-冰糖雪梨
2021년:
“저기 풍선씨가 오고 있답니다”
“네? 풍선씨 가요?”
“네. 풍선씨가 겨울바람 가득채우고 동동거리며 오고 있답니다.”
“뭘요? 겨울바람을?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시오.”
“...”
“...진짜요? 진짜 오는 것 맞소?”
“거참.. 저기 보시오! 쪼-기~ 보이 지오?”
“휴.. 진짜 오셨구려.. 풍선 씨.. 왜 이리 늦었소? 1년이나 기다렸는데”
“그러게요. 올해엔 참 많이 늦었구려.. 근데 뭐.. 왔으면 됐지요.”
이불밖에 내민 코끝이 차가워졌습니다. 한 손으로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이고 핸드폰을 이리저리 찾아 헤맵니다. 다행히도 통통한 허리살에 깔린 핸드폰은 아직 전사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이불을 몸에 칭칭 번데기 마냥 감고선 꾸물꾸물 불키러 가봅니다. 똑-딱!
“꺄악-----! 우 C. 깜짝야 악!”
방안에 풍선 귀신이 들었나 봅니다. 간밤에 얼굴에 바람을 불어넣었나. 왜 이리 부었노? 진정 이 얼굴이 내 얼굴이란 말인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풍선 귀신이 바로 나인건 빼도 박도 못하는 진실입니다. 자 우선 심호흡하고 얼굴을 마구마구 비벼봅니다. “붓기야~ 바람아~ 좀 꺼져줄래?”
영 가라앉을 생각 없는 붓기를 꼬집으며 냉장고 야채칸을 뒤적뒤적거립니다. 배 하나 건져 올립니다. (그래, 너로 정했어, 네가 바로 붓기 빼주는 과일이라 그거지? 자! 내 도마 위에 올라가보올~까? )
[빙탕쉐리(冰糖雪梨-얼음사탕+배) 만들기]
재료: 배 1개, 얼음 설탕 1/2 종이컵, 물 800ml, 레몬, 애플민트
1. 동그란 배의 껍질을 돌돌 깎아낸다.
2. 배는 나박 썰기 하고 물에 담근 후 소금을 조금만 넣는다. (소금을 넣으면 배가 노랗게 변하는 것을 막아준다)
3. 팔팔 끓인 물에 배와 얼음사탕을 넣어 2분간 기다린다. (아삭한 느낌을 원한다면 2분 정도만 끓여주고 말랑말랑한 느낌을 좋아한다면 더 끌여도 괜찮다)
4. 3번을 국자로 떠서 컵에 부은 후 레몬을 잘라 넣어 주고 예쁘게 애플민트 한 잎 조용히 얹어주면 끝!
“오늘부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겠습니다. 채널A 뉴스 날씨였습니다.”
우엉-웡- 어디선가 날씨를 전해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진짜 추워진 것 같습니다. 왜인지 이제야 겨울이 왔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군요. 조용히 컵을 손에 들고 따뜻한 기운을 느껴봅니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2020년, 뭔가 텅텅 비어 통-통 소리 날 듯한 공허했던 시간들이 조용히 흘러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이번 겨울은 너무 추워”라는 일상이 2021년엔 온 것 같습니다.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덥고, 그랬었던 평범한 하루가 볼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동동거리며 겨울바람을 타고 오는 것 같습니다.
2020년:
저 멀리 가려다 뭔가 본 듯 뉘 집 창문에서 잠깐 멈추는 풍선씨, 통통 몸을 튕기며 노크해 봅니다. 드르륵- 창문이 열립니다.
“풍선씨 어떻게 여기까지 왔습니까?”
“시간을 타고 여기에 왔는데 말입니다. 추운데 혹시 잠깐 몸을 녹여도 될까요?”
“네, 추운데 얼른 들어오시오. 자, 안 그래도 지금 막 배를 뜨끈하게 끓여봤는데 한 잔 좀 받으시오. 몸이 녹을 거요”
“감사합니다. 조금만 먹어보도록..”
호로록---
“다 드셔도 됩니다. 언제든지 리필해 드리겠습니다. 허허”
“아고, 감사합니다. 근데 너무 많이 먹으면 바람이 다 빠질까 봐서요..” 풍선은 불그레 졌다.
“아... 이런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그 생각을 미처 못했네요.. 자 그럼 이리 내시오”
“괜찮습니다.”
“아니오, 자 이리 주시오”
“아! 괜찮습니다!”
“자 주시라니까?”
“아, 괜찮다---고;;;”
쨍---그랑---- 컵이 떨어지고 배가 굴러 나왔다.
“아이고 이걸 어쩐담..” 미간이 찌그러진 뉘집 주인.
“아, 그러니까 왜 빼앗고 그러십니까?”
“아 거참.. 바람 빠지면 풍선이요? 풍선씨 보호한다고 그랬지요”
“하-휴,, 참, 바람 빠져도 풍선입니다. 흑.. 왜 저를 그렇게 보시는지”
“아니, 내가 그렇게 본건 아니고.. 아깐 풍선 씨가 바람 빠질까 봐 적게 드신다고 그랬잖습니까?”
“그건.. 풍선씨한테 조금 더 예뻐 보일라고 그런 거란 말입니다”
“에? 풍선 씨요? 어느 풍선씨요? 여기에 풍선씨가 또 있는 거요?”
풍선씨는 주인의 빵빵해진 풍선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하... 풍선씨... 집을 잘 못 찾은 것 같습니다.. 전 풍선씨가 찾는 풍선씨가 아닙..니다..”
“네?????” 당황을 멈출 수 없는 풍선씨.
“흐윽.. 전 풍선이 아니란 말입니다..” 흐느끼는 뉘집 주인.
풍선씨는 어찌할 바 몰라, 땅에 떨어진 배 한 조각, 두 조각을 집어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풍선씨의 바람은 점점 빠져나갔다. 슈욱--- 쭈그러진 풍선을 본 주인은 눈물을 훔치며 풍선씨에 겨울바람을 채워 넣어 시간에 태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