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든 딸기는 맛있다

딸기 크레이프 케이크(芒果千层)

by 강화



“멍든 딸기는 루돌프 코가 되어 겨울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겨울이는 흰 눈 한가득 손에 담아 선물로 건네주었다.”



초등학교를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사거리, 늘 똑같은 자리에 있는 과일 노점상 주인의 바구니에는 딸기 자리가 늘어났습니다. 한 팩에 8천 원, 마트에 비하면 싼 편이지요. 그럼에도 선뜻 사가는 사람 한 명 보이질 않습니다. 안타까운 시선을 떨구며 저는 집에 돌아와 창가에서 멍들어가는 딸기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합니다.


“빨리 먹어치워야겠네~”


오늘은 오븐, 레인지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딸기 크레이프 케이크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8년 전 홍콩의 한 탕수이(糖水) 가게에서 처음으로 이 케이크를 봤던 것 같습니다. 여러 나라의 얼굴이 교차하여 쏟아져 오는 비좁은 인도(人道)에서 오로지 친구의 가냘픈 팔만 의지한 채 시선을 길가에 줄지어 붙어선 가게에만 두었습니다. 딤섬 파는 가게를 지나면 육포 가게, 탕면(湯麵) 가게를 지나면 밀크티 가게, 그리고 반짝이는 유리벽 안쪽에 망고 크레이프 케이크를 12등분으로 잘라서 한 조각만 튀어나오게 진열해 둔 탕수이 가게... 노란색 영롱하고 반짝이는 빛깔은 저의 시선을 한 번에 잡아버렸습니다. 한 발자국 앞으로 향할 때마나 목은 10도씩 뒤로 돌아갔으며 결국은 친구의 팔을 훽 잡아 멈추게 했습니다.


“야. 잠깐!”

“왜? 망고 크레이프 케이크(芒果千层) 먹으려고?”

“...”


1초 동안 말없이 서있다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대학생의 바지 주머니는 생각보다 많이 홀쭉했어서 대신 추억 한 사발을 가득 쏟아 넣었습니다. 강력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저를 놓지 않는 걸 보면 ‘첫사랑’이 틀림없습니다. (첫사랑은 인간과 인간만이 하는 건 아니지 않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차가운 물에 딸기를 뽀득뽀득 씻어 내고 과도로 이파리를 제거한 후 키친타월에 하나 둘 올려둡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다섯이 열이 되어가며 눈처럼 쌓여갑니다. 또 한 장의 키친타월을 절개선따라 투드득 뜯어 딸기의 물기를 하나하나 닦아 냅니다. 멍들었지만 그래도 예쁜 딸기입니다. 우리 모두처럼.


그리고 딸기는 네모난 큐브 형태로 잘라 볼에 담아 대기시키고 크레이프와 생크림을 만듭니다. 크레이프와 생크림 만드는 방법은 “우리 집, 오늘 첫눈이 내렸다.”편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 번 더 소개해도 되긴 하지만.. 뭐, 오늘은 배짱이가 되고 싶어서 말입니다. 1년 365일 개미로 살다 간 저승의 문턱을 너무도 빨리 넘을 것 같은 느낌이..?)


다 보고 오셨지요? ( 흠.. 안 봤다고요? 괜찮습니다~ 안 봐도 그만인걸요. 우리 다 같이 배짱이가 되자구요. 가끔은. ) 순서대로 크레이프 한 장, 생크림 한 층, 딸기 콕콕 박아두는 과정을 두서너번 반복하다 보면 딸기 크레이프 케이크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멍든 딸기는 겨울이가 건네 준 흰 눈으로 멋진 일요일 브런치가 되었습니다. 딸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여리고 민감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죠. 딸기가 더 멋지게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 외 더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세심했으면 딸기는 안 다쳤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딸기 크레이프 케이크를 깨끗이 먹어치웁니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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