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을 땐 지리산을 가라 - 05
아마 삼도봉에서 여기까지가 15킬로미터. 다시 연하천으로부터 벽소령까지가 15킬로미터. 멀쩡한 다리였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적어도 두 시간 이상 가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예상 도착 시간은 네 시. 아무리 산에서 해가 빨리 진다고 하지만 그정도면 넉넉다고 생각했다. 길을 나섰다. 출발 한 지 이십 분쯤, 다리가 괜찮아졌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오히려 쉬기 전보다 아팠다. 그나마 한 시간 동안은 평지 길이어서 갈 만했지만. 그 직후로 지리산 여정 중 가장 험난했던 코스가 시작되었다. 낙석주의 표지판이 곰 주의 표지판보다 많아졌다. 밧줄에 몸을 기대어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기 까지 했다. 다리도 아프고,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물기가 없는 마른 땅만 발견하면 자꾸만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오후 다섯 시쯤 통증을 덜면서 걷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는 점이다. 무릎의 정확히 관절 힘줄이 삔 모양인지 다리를 뻗은 상태에서 오는 충격은 무시할 만했다. 그러다 실수로 무릎을 굽히기라도 하면 엄청나게 저릿저릿했지만. 돌을 밟고 올라야 할 땐 오른 다리를 사용했고 내려가야 할 때는 왼 다리를 사용했다. 점점 등산 속도는 빨라졌다.
경치가 대단했다. 멋진 산을 오르려거든 돌산을 찾으라고 했었던가. 처음 열 시간, 지금까지의 등산으로는 돌산으로써의 지리산을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벽소령 구간에서는 돌산의 진가가 오롯이 드러나 있었다. 돌과 돌 사이에서 피어난 작은 풀들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곽정이 구음진경을 발견하던 외진 숲 속, 청학동을 더듬더듬 찾아가던 산길, 이곳은 옛 약초꾼들의 비밀 길이었다. 한 시간 거리를 네 시간 동안 헤매면서 해는 머리 꼭대기에서 눈과 마주 볼 정도로 내려왔는데 햇볕이 길어질수록 경치는 멋을 더해갔다. 풀과 돌에 맺혀 있는 물기와 빨간 햇볕과 흙냄새가 이곳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언덕을 내려가고, 바위를 올라탔다. 헐벗은 바위, 오래 박혀있어 녹슨 정을 붙잡고 매달리듯 올라갔다. 내려갈 때는 스틱에 기대서 내려갔다. 도무지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산길. 중간중간 부서진 돌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낮은 경사에 쭉 이어진 계단 옆으로는 지금까지 오르락내리락했던 돌산, 흙산이 다 내려 보였다. 중간쯤 올랐을 때 바람이 거세지는 걸 느꼈다. 해는 이제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내릴 것 같았다. 급격하게 어두워져 갔다. 마침내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왔을 때 뻥 뚫린 하늘이 보였다. 갈대밭과 그 사이에 놓인 손잡이용 밧줄이 보였는데 갈대는 바람 때문에 거의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갈대밭을 배경으로 품은 그곳에 벽소령 대피소가 있었다.
세차게 부는 바람을 따라서 거의 눕듯이 기울어진 갈대들. 통나무로 만든 투박한 안전 바 너머로 펼쳐진 해 질 녘의 지리산 등성이.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길 가운데 벽소령 대피소가 있었다. 연하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대피소 부근은 넓은 평지였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손짓으로 스틱을 짚으며 대피소의 쪽 창을 두들겼다. 인기척만 냈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 창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오늘 예약했습니다."
파란 재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용건을 말하라는 투로 보고 있어서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쪽창 안에는 작은 진열대에 라면, 가스, 물 따위를 쌓아놓고 있었고 발 아래쪽부터 따뜻한 불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작은 스토브인 듯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기덕입니다."
"네. 아까 전화드렸는데 안 받으셔서 안 오는 줄.. 일단 들어오세요."
문화재단에서 거는 전화를 피할 요량으로 안 받았던 것인데 그게 대피소 전화였나. 대답할 대상을 잃어버려서 혼자 중얼거리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바깥문을 열고 들어가서도 신발을 벗고 다시 문을 열어야 했다. 두 번째 문을 열자 더운기가 훅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이구나, 오늘은 안심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대피소 내부는 작은 찜질방 같았다. 황토색 바닥과 벽지, 황토색 나무가 드러나도록 만든 기둥, 계단. 탈의실이라고 쓰여 있는 쪽방 위에는 벽걸이형 텔레비전도 있었다. 카운터에서 삶은 달걀이라도 사 먹어야 할 기분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찜질방에서는 갓 씻은 말끔한 모습인데 반해 지금의 나는 씻지 못해 먼지와 땀 투성이라는 것 정도? 커다란 남자방으로 들어갔다. 좌우로 빼곡히 들어찬 3층 침대들 사이로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통로 끝에는 열풍기 같은 것이 있었는데 거기엔 '양말 올려놓지 마세요'같은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비좁았지만 짐도 옆에 놓고, 몸도 바르게 펴서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 그리고 머리맡에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최신식의 카페를 가야 만날 수 있는 1인 1 콘센트. 문명에 감사했다.
새 옷으로 갈아 입고, 더러운 옷은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배낭 가장 깊숙한 곳으로 집어넣었다. 며칠 동안 산행하는 경우에 여벌의 옷은 필수라고 하더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딱히 씻은 것도 아닌데 새 옷을 입었다고 절은 옷은 다신 입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 모포를 깔고 옷으로 베개를 만들어 베고 누웠다. 아주 잠깐 페이스북을 하다가 몸의 반쪽은 땅 밑으로, 다른 반쪽은 땅에서 조금 떠오르는 기분이 되어 잠이 들었다.
혼미한 정신에 눈을 떴다. 스마트폰을 켜보니까 시간이 꽤 됐다. 지리산의 대피소는 취사장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신이 확 들어서 배낭을 들고, 슬리퍼를 신고서 취사장으로 내려갔다. 아직도 밥을 먹는 팀이 그래도 꽤 됐다. 안심하고 냄비를 들고서 급수대를 찾는데, 급수대는 없고 무슨 표지판만 붙어 있었다. 급수대 아래로 내려가세요. 아래가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의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황망한 기분이란 이런 걸까. 냄비, 취사장, 다리, 대피소를 번갈아 가면서 한 번씩 쳐다보다가 결심을 세웠다. 나에겐 벽소령까지 온 깡과 요령이 있다. 하고. 오른 다리로 짚고 왼 다리로 뻗는다. 계속 반복해서 중간쯤 내려갈 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와 실루엣으로 보기에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남자였다. 나는 몸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서 대화를 이끌어 갈 생각 없이 가만히 쳐다보고 섰다.
"혼자 오셨어요?" 다행히 그쪽에서 말을 이었다. 익숙하고 평범한 대화다. 산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인사 말고 다른 대화를 한다면 그건 혼자 오셨어요? 혹은 여럿이 오셨나 봐요? 정도뿐이다.
"예. 혼자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지리산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인사하고 싶어서요."
참 넉살 좋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대답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지리산에 처음 왔는데 너무 좋네요. 특히 대피소가 너무 멋있네요."
"그렇죠? 저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지리산에 와요. 세 달에 한 번쯤. 저도 여기 벽소령 대피소를 좋아해요. 급수대로 가는 길도 좋고."
남자와 대화하면서 급수대까지 내려갔다. 냄비 가득 물을 뜨고 온 길을 거슬러 갔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가는 길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오르는 길이 그나마 낫다. 그래서 빨리 올라갈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만난 그 남자는 밝은 곳에서 보니 더 쾌활해 보였다. 사랑받는 사람들이 갖는 그런 종류의 쾌활함. 여자들의 짧은 단발머리보다 약간 짧은을 뿐인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었고 추운 것도 모르는지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건강한 허벅지에 힘이 느껴지는 팔뚝. 좋아 보였다. 그를 보며 내가 활기찬 것에 끌린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직업이 없고, 다만 세 달에 한 번씩 지리산 종주하는걸 낙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내 불편한 걸음을 보고 상태를 걱정해주고 기왕이면 장터목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보다 능숙하게 식사를 하고 내일 해 먹을 음식을 취사장 구석에 가지런히 놓았다. 지리산이 꽤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