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을 땐 지리산을 가라 - 04
올라도 올라도 1킬로미터는 줄어들 줄 몰랐다. 끝이 없는 언덕. 대략 사십분 정도 올라갔을까, 표지판에는 반야봉 0.5킬로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날이 밝아지면서 등산로도 소란스러워졌다. 왁짜지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피해주길 십수번, 몸이 축축 쳐지는 바람에 시계도 더 자주보게 되었다. 노루가 지나가는 길목, 노루목에 도착했다. 갈림길이었는데, 목적지인 천왕봉으로 가는 길 말고도 반야봉 가는 길이 나 있었다. 좌측으로 1킬로미터만 가면 된다고 써있는데, 그럼 금방 도착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갈까 말까 고민하게 되었다. 오전 11시, 원래 계획으로는 오후 3시 전후로 대피소에 도착해서 뜨끈한 방바닥에 몸 지지고, 블루투스 키보드로 오늘 겪은 일을 옮겨 적는 거였는데. 어림도 없는 계획이라는 걸 그 땐 왜 몰랐을까.
그래도 기왕 지리산에 왔는데, 반야봉을 지금 아니면 언제 가겠나 싶어 방향을 꺾었다. 봉우리만 찍고 대피소 가자. 가서 점심 먹자. 왕복 2킬로미터. 금방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초입부터 꽤 가파른 흙길이었다. 좁고 불편했지만 고개 들어 언덕을 바라보며 금방 도착하겠거니 발길을 재촉했다. 나 스스로 내 단점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남을 얕보는 습관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게 혼줄난 일이 많았는데, 반야봉도 마저 동일한 경험을 선사할 줄이야... 올라도 올라도 반야봉 1킬로미터는 줄어들 줄 몰랐다. 끝이 없는 언덕. 체감상 사십분 가량 올라갔을 때 만난 표지판에 반야봉 0.5킬로미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지리산 와서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초목으로 뒤덮여 있어서 좁은 길 외엔 사방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시 올라갔다. 다시 삽십분 가량 올라갔을 때 어느덧 초목은 사라지고 돌 무더기들만 놓이기 시작했다. 굴러가는 돌을 조심조심 밟으며 올라가는데 눈 앞에 고개를 들어야 끝이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옆에 아슬아슬한 철제 계단도 보였다. 계단에는 중년의 부부가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둘이 함께 찍어달라고 부탁해왔다. 반야봉에 대해 물어보기도 할 겸, 여러장 잘 찍어주고 말을 건냈다.
"노루목에서 보니까 1킬로미터만 가면 된다 그러던데, 엄청 머네요"
"그럼,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린데 당연하지"
깜짝 놀랐다.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니, 어쩐지. 언제 출발했는지, 어디로 갈 건지 대화를 나누다가 마저 올라가기로 했을 때 부부는 가방을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스틱만 들고 오를 것을 제안해주었다. 노루목 분기점에 한 무더기의 가방이 놓여있던 것을 떠올리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철제 사다리 아래 가방을 두고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사다리를 오르고 15분 가량 더 갔을 때, 완만한 언덕 너머 넓은 하늘이 나타났다. 반야봉 1732. 봉우리 자체는 돌 무더기로 볼품없지만 주변에 모든 산이 발 아래 깔려있다는 거, 그리고 최초로 정복한 도달지점이라는 사실이 감격하게 만들었다. 광교산을 올랐을 때와는 다른 뿌듯함.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원체 겁이 많아서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내가 스스로 해낸 첫 성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내가 본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려왔다. 오는 길에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비싸게 주고 산 배낭, 그리고 삼일 간 먹고 마실 음식물을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 까 걱정이 들었다. 날듯이 달렸다. 멀리서 보면 발 네개 달린 짐승 같았을 것 같다. 15분 오른 길을 10분만에 주파한 끝에 안전하게 놓여있는 배낭을 볼 수 있었다. 몸 여기 저기가 후끈후끈했다. 잠시 쉬었다 내려가려고 상의 지퍼를 열어 열기를 배출하는데 손등에 톡 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을 보니 반야봉 위로 짙은 구름이 끼어있었다. 비가 내리려고 했다. 옷 속이 찜통이었던 이유도 비 때문이었던 걸까? 등산화를 단단히 조여매고 배낭을 들쳐멨다. 배낭 커버도 없고, 우비도 없는데 걱정이 들었다.
비 대책을 아주 안세운 건 아니었다. 배낭커버는 (당시엔 몰랐지만) 배낭 안쪽에 결합되어 있었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비를 막을 접이식 우산도 챙겨왔었다. 우산의 경우는 당시에도 가지고 있는걸 알고 있었는데 차마 쉽게 사용하지는 못했던 것이, 한쪽 스틱을 놓는 것도 불만이고, 작은 우산정도로는 배낭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비가 더 많이 오기 전에 빨리 도착하는 길을 택했다. 점심까지 목적지는 연하천 대피소. 그 전에 삼도봉을 지나야 했다.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기 때문에 노루목을 다시 돌아가지 않고, 샛길로 삼도봉까지 주파하려고 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안경은 빗물로 뿌옇게 변한지 오래였다.
길이 이상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내 몸통보다 두꺼운 나무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기 일쑤였다. 돌들의 경사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서 자체도 몹시 힘들고, 분명 반야봉까지는 많이 보였던 사람들도 도통 보이지 않아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끊임 없이 의심하며 길을 가야 했다. 분명 위기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걸었는데도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배낭의 특수처리된 표면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극적으로 삼도봉에 도착했다. 문뜩 장난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산행은 나 혼자 하는 것이고, 내가 걷지 못할 상황이 되거나 잘못 길을 들면 나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 지리산 종주 포스팅을 볼 때까지만 해도 삼도봉에 도착하면 감격에 한참을 즐거워 할 줄 알았는데. 남은 5킬로미터, 산길이 야속했다. 다행히 비는 톡 톡, 가끔 떨어지는 것 말고 더 내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무릎 상태를 알 길이 없었다. 아마도, 상모 배울 때 말썽이었던 무릎에 후유증이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픈들 어찌하랴. 한 발자국도 못움직일 위험천만한 상태가 되었더라도 일단 대피소에 가야만 했다. 삼도봉-연하천 코스는 야트막한 고개가 많았다. 돌을 넘어가야 하는 봉우리, 멍석을 길 위에 완전히 덮어버린 봉우리, 평탄한 길, 다시 돌 많은 봉우리. 속옷까지 땀으로 젖고, 시간 개념도 희미해질 무렵 매끈한 데크 계단이 나왔다. 데크 너머에 대피소가 보이길 얼마나 바랬는지 모르겠다. 좌절하고 기대하기를 반복하며 세 번째 데크를 지날 때 둥근 지붕의 건물이 나타났다. 연하천 대피소였다. 오는 길, 사람들이 옆을 스쳐 지날 때마다 어깨를 붙잡고 통사정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묵묵히 걸어 온 세 시간. 너무 기뻤지만 마음 한 켠엔 벽소령 대피소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함이 남아있었다.
연하천 대피소는 자연풍광과 조화롭게 지어져 있었다. 좌측에는 내가 내려온 높다란 봉우리, 바닥은 흙으로 된 평탄한 마당이 있었다. 첫 인상은 북유럽풍 펜션 느낌이었는데, 둥근 적갈색 지붕이 하얀 벽과 어우러져보였기 때문이었다. 대피소 본 건물의 1층은 취사장이고, 사선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1.5층 높이의 본 입구가 있었다.
입구 우측에는 직원들이 매점을 관리하고 있었다. 나는 취사장으로 내려와 짐을 부리고,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신은 다음 식사 준비를 했다. 가느다란 다리로 간신히 서 있는 버너에 가스를 연결하고, 붙을 붙였다. 라면 양보다 물을 조금 많이 했다. 덜어서 컵에 카누 커피를 타고, 즉석 카레에 물을 부었다. 남은 물로 라면 반개를 끓였는데 물 조절이 잘못된 탓인지 국물이 조금 밍밍했다. 카레에 부대찌개면, 거기다 식후 간식과 커피까지. 완벽한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몸에 온기가 도니 기운이 났다. 무릎도 접었다 폈다 해보는데 식사 전보다 훨씬 수월한 기분이었다. 괜찮아졌을리 만무하지만 어느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보았다. 동작을 반복할 수록 밀려오는 통증, 잠시 자리에 앉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했다.
간단히 내린 결론, 종주 완주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세운 계획, 예약한 숙소 등 아쉬운 요소가 너무 많으니 오늘은 일단 벽소령 대피소까지 가고, 내일 오전에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비도 그치고 배도 불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해서 바닥의 물기와 습습한 공기가 아니고서는 비가 왔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피소 마당은 고르게 다져 놓은 평지여서 불편함 없이 걸어 갈 수 있었다. 화장실 앞에 있는 원형 나무 테이블에 가 앉았다. 조심스럽게 다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막 연하천에 도착했을 때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다시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