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른백산 Jul 16. 2020

노고단 약초꾼들의 길을 넘어서

잘 모르겠을 땐 지리산을 가라 - 03

데크 아래는 낮게 깔린 야생초들이 드문드문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얇은 나무가 한 그루씩 자기 영역을 만들고 있었다. 완만한 깔린 언덕, 알프스가 생각나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성삼재로부터 시작된 여정은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땀방울과 비례해서 점점 거칠어갔다. 데크 계단을 깔 필요가 없기 때문인지 돌 무더기로 얼기설기 쌓아올린 비좁은 층계를 올라야 했다. 이게 진짜 산행이구나 생각될 무렵 매끈하고 평탄한 시멘트 길을 밟게 되었다. 노고단 대피소의 첫 인상이었다.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으로 얻어놓은 화장실, 지대가 확실히 보이지 않아 몇층인지 구분되지 않는 대피소 본 건물, 그 옆에 취사실이 있었다. 열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오는 길에 두 번이나 쉬었지만 밝은 불 아래서 마음놓고 앉아있다 가고 싶었으므로 취사장 바깥 야외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가방 옆구리에 꽂아 놓은 물병으로 한 모금 물을 들이키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성삼재 후반부부터 길을 같이 쓴 노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 다들 헤드랜턴을 켠 채로 식사한다.


"아이 참, 안해요"

"거 있어봐. 저기 학생-"

여성분의 만류를 가볍게 제지하고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반응을 보이자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달라며 내게 스마트폰을 넌지시 건냈다. 나는 취사장의 불빛을 라이트 삼아 각도를 잡았다. 하나, 둘, 셋, 찰칵. 아저씨는 프레임 속에 있는 것은 희미한 가로등 뿐, 풍경사진이랄것도 못되었는데 만족스러운 듯 빙그레 웃었다. 쉬는 김에 이것 저것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지리산은 물론이고 산이라고는 다녀본 일이 도통 없는 초보 등산객이었는데, 이 산 저 산 안다녀본 산이 없는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졸라 아침 산행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짐이 왜 이렇게 많냐며, 아주머니가 묻자 아저씨가 젊은 총각은 2박 3일짜리 종주 코스를 가는 거라 짐이 많다고 아는체 하고 동의를 구했다. 나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10분 가량 쉬었을까, 하늘이 도착했을 당시보다는 약간 밝아진 기분이었다. 일정이 많이 남았으므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내가 일어서자 노부부도 함께 따라 나섰다. 노고단은 십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관리인이 사용하는 나무집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오르는 길이 꽤 가파른 편이었는데, 노고단까지의 길은 그보다 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게 느껴졌다.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보이는 넓은 하늘, 노고단 갈림길이었다. 정면에 작은 나무집이 있고, 그 옆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었다. 오른쪽에는 잘 정돈된 포장 데크가 완만하게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정도 시설은 순천만에나 가야 있을까, 꽤 낯설었다. 포장 데크 길에 [노고단 올라가는 길] 표지판이 있고, 그 앞에 출입금지 패가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출입 가능 시간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었다.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노고단 갈림길 공터. 실제로는 훨씬 넓다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가 옛날 이야기 들려주었다. 아저씨 젊을 적엔 저 노고단을 넘어서 천왕봉까지 가는 길이 주 코스였는데, 노고단 위에서 라면도 끓여 먹고, 비박도 하다 보니 유적이나 노고단 자생식물들이 도저히 보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노고단 보호 차원에서 새로운 길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옛 약초꾼들의 길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새로 뚫긴 길로 가야 하지만, 가끔 노고단을 넘어가는 길이 생각난다고.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대피소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배낭 없이 간단한 차림으로 조끼를 입은 남자. 지리산국립공원 직원이었다. 데크 위, 출입금지 표지판을 치우고 나무집으로 들어가려는 남자에게 내가 물었다.

"노고단 이제 올라가도 돼요?"

졸린듯 고개만 끄덕이는 남자. 나는 노부부에게 어디로 갈 건지 물었다. 둘은 노고단을 지나치지 않고 길을 가겠다고 했다.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노고단 공터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데크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나 언덕이 없어 거칠 것 없는 매선 바람이 얼굴을 정면에서 밀어냈다. 배낭도 없는데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데크 아래는 무릎 아래 높이로 낮게 깔린 야생초들이 드문드문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얇은 나무가 한 그루씩 자기 영역을 만들고 있었다. 완만한 깔린 언덕, 알프스가 생각나는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5분 가량 올라가자 천길 낭떠러지 아래 빛이 점점이 찍혀나왔다. 절벽 아래 구례 시내 가로등 불빛인 모양이었다. 아슬아슬한 풍경, 나도 긴장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노고단 유적지를 한참 보다가 내려갔을 텐데. 높은 곳이 두려운 나는 지천년 전 신라 화랑들이 쌓아 올렸다는 전설의 돌탑도 마다 하고 날듯 뛰어서 내려갔다.

노고단 정상. 돌탑은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찍을 수 없었다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랜턴을 새로 셋팅했다. 이제부터는 경사 높은 내리막이기 때문에 잘 보고 가야했다. 약 10분 정도 삐뚤빼뚤한 돌 길을 밟고 내려와서 산 허리를 끼고 도는 좁은 평지길에 다다랐다. 대체로 평탄했지만 중간중간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이제야 지리산 깊숙히 들어온 것인지 바짝 말라있던 지금까지의 길과 달리 산길 바닥이 군데군데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하늘이 점점 밝아왔다.



약초꾼들의 길이다

고전 사극(?) 드라마중에 임꺽정이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한다. 특색있는 캐릭터들, 소설 원작의 탄탄한 시나리오. 덕분에 장길산도 꽤 주목을 받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몇 가지 고르자면 마지막, 임꺽정이 산 위에서 화살을 여러방 맞고 죽는 씬, 그리고 부인과 처남을 처음 만나는 씬 정도가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두 씬 모두 지리산에서 비슷한 장면을 경험하게 되는데, 아마 작가와 pd가 산에서 느낀 경험을 드라마에 옮긴게 아니었나 싶다. 임걸령 가는 길은 부인을 소개하던 장면과 닮았다. 부인과 처남 천둥은 모두 백두산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어찌나 산을 타고 놀았던지 자기도 모르게 축지법을 익혔다가 어쨌다나. 화려한 카메라 무브와 독보적인 효과음. 나무 그늘 아래 음습한 흙과 조용히 내리쬐는 햇살이 딱 그 모습이었다. 지리산에서 로케이션 하지는 않았겠지?

산 허리에서 시작한 길은 어깨를 짚고 올랐다가 무릎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아침해가 방긋 떠올라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간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능선을 따라 높은 길을 한참 걷기 시작했다. 산과 산 사이 용처럼 뻗은 운무. 가까이 있는 산부터 멀리 있는 산까지 점점 희미하게 보였다. 옇은 파란색의 산들이 내가 지리산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나 지리산이었다. 그리고 임걸령에 도착했다. 임걸령은 임걸이라는 산적이 이곳에 거처를 두었다고 해서 이름붙여졌다. 마실 수 있는 샘이 지금도 흘러나오는 곳이라 그래서 뭔가 구조물이 있을까 싶었는데. 뭐가 있기는 커녕 바닥이 축축해서 오래 있을 곳이 못되었다. 그래도 생수가 떨어진 참이니 물을 가득 채우고 앉을만 한 자리를 찾아 잠시 쉬었다. 오전 8시, 노고단 대피소에서 뭘 먹지 않아서 배가 많이 고팠다. 가방에서 초콜릿과 육포, 양갱, 에너지바를 꺼내서 한 개씩 먹었다. 허기는 가셨지만 따뜻한 음식이 아니라 기운이 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는 길에 한 무리의 등산객이 등산로 구석에서 뭔가 끓여 먹는 것 같았는데. 그 냄새를 맡아서 더 허기진 것 같았다. 지리산에서는 정해진 취사장 외에 불 사용 금지라고 했는데.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도착해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임걸령 약수터. 물 맛은 잘 모르겠다.



이전 03화 지리산에는 반달곰 70마리가 살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