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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산 Jul 13. 2020

지리산을 가보는 건 어때?

잘 모르겠을 땐 지리산을 가라 - 01

"지리산을 가보는 건 어때?" 어느 날, 싸부에게 들은 말이다. 마음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내게 며칠 고민하더니 건넨 말이었다. 지리산 하니까 몇 가지 떠오른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 실제로 내가 여행한 지리산 종주 코스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리산은 지리산이지. 김범우와 염석진의 각축장, 무슨 일이 생기면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숟가락과 밥그릇은 나무로 구비해두어야 한다. 심신산골 군경이 들이닥치기 어려운 조건, 그러나 우리에게도 동일한 자연 그 자체.

태백산맥 말고도 이야기들이 많다. 도사니, 무당이니 세속을 등진 사람들이 수 없이 살고 있다 던 지, 어느 선비가 지리산 자락에서 길을 잃어 헤매다 정신을 차려보니 청학동이라는 신선들의 동네를 방문하게 되었다 던 지, 이몽룡이 춘향이를 두고 급제하러 떠난 길이 지리산 어느메 라던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옛날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지리산 골짜기 도사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었는데, 문뜩 그들이 지금도 지리산 골짜기에서 여전히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 친구 형원이와 상현이의 개고생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전국일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스무 살 여름, 그 둘은 내일로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 중간에 지리산 뱀사골을 다녀왔는데 친구들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죽을 뻔했었다'. 산을 오르는데 비가 와서 그랬었나, 아니면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힘들었다고 그랬었나, 먹을 게 없었다고 그랬었나. 확실한 건 기억나는 건 대피소가 엄청 추웠는데 모포 하나 없어서 얼어 죽는 뻔했다는 것이었다. 그 우여곡절 산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 뒤, 지리산 반달곰이 그 코스에 출몰했다나 어쨌다나. 내가 "곰 만날 뻔했었네."하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분명해진다. 나는 지리산을 상상할 때, 내가 그 안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도무지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권유가 일단 일단 매우 신선했다. 아니 삶이 어려우면 다른 일을 해보던가, 공부를 하던가 해야 할 건데 뜬금없이 지리산이라니. 산 가면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그 사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리산 다녀오면 뭔가 달라진다는데 까짓 거 못 갈 건 또 무언가.


'승부'하면 눈이 벌게져서 달려드는 내게, 언제나 도움되는 말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말이야 틀림이 없지만 나를 찾으러 가는 길이니까 전제가 이미 나(라는 이름의 적)를 잘 모르는 상태다. 그렇다면 그나마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 지리산이라도 확실히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당장 검색을 시작했다. 빠른 해답은 블로그나 카페에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로 난항을 빚었다,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고 도리여 너무 많아서 탈이었던 것. 지리산을 다녀왔다는 경험자는 얼마나 많고, 또 산악 전문 블로거들은 어찌나 많은지. 도무지 내가 원하는 정보만 빼서 볼 수가 없었다. 비슷한 글은 계속 봐도 산행의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길래 조금 더 찾아보다가 도서관에나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발견한 글. 30대 중반의 여성 혼자 다녀온 지리산 종주 여행기. 내가 원하는 여행은 코스가 적당히 길고 어려워서 열정을 필요로 할 정도여야 했고, 지리산의 곳곳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는 구성(?)이 있어야 했으며, 그러나 너무 어려워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초보자가 다녀온 검증된 코스여야 했다. 블로그에는 사진을 포함해서 대략 세 페이지 정도로 여행이 요약되어 있었는데 주요 거점이나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 대중교통의 이용 시간까지 포함하여 자세히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오, 오! 탄성을 내지르며 읽고 다시 읽을 때는 같이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총 네 번에 걸쳐서 읽었다. 사진 속의 여성은 즐거운 표정으로 보란 듯이 즐기고 있었다.

대충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 번째, 지리산 종주는 생각보다 훨씬 갈 만하다. 지리산이 빨치산의 고장이 된 데 이유는 험준하고 깊은 산맥이라는 특징 외에도 원하기만 한다면 삶 속에서도 얼마든 뛰어들 수 있만큼 가깝다는 덕분인 것 아닐까? 지척에 두고 얼마든 왕래할 수 있는 산이었다. 사람을 위한 배려가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 곳곳에 안전하게 설치된 데크, 철제 계단이 혹시 모를 위험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와 같은 초심자들이 산을 갈 때 가장 고민하게 되는 부분, 이를테면 잠자는 곳과 식사할 곳이 튼튼한 대피소로 미리 지정되어 있었다. (특히 대피소 수면시설은 거의 찜질방에 준할 정도로 보였다) 다만, 대피소는 산행을 가기 전 최소 보름 전에는 예약을 해두어야 안전했는데, 이 시점의 나는 준비기간이 넉넉해서 걱정 없었다.

두 번째, 그럼에도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겠다. 먼저 시기가 매우 애매했다. 춥고, 등산로가 얼어붙어 위험한 겨울이나 비 내리는 여름을 제외하면 산행 최적기인 가을. 하필이면 준비를 시작한 당시가 가을의 끝줄이었던 것.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등산 고수들이 "겨울 지리산은 중수 이상 등산가들만 다녀오세요"하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안 그래도 겁 많던 내가 겨울 초입, 체온 유지가 어려울지 모르는 이 시기를 잘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계획은 물품 구입으로 구체화된다. [등산용품]을 검색했다. 종합 쇼핑 사이트 검색창 아래로 10개도 훨씬 넘는 페이지들이 나열되었다. 아마추어, 마니아부터 전문가용 아이템까지. 기왕 철저히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다소 비싸게 느껴지더라도 가성비 좋은 고품질의 용품을 구입하자 했다. 등산이라고는 매년 한 차례 광교산 워크숍밖엔 없었기 때문에 아주 기초적인 용품들부터 찾아보아야 했다. 주요 물품은 2박 이상을 견딜 60리터급 등산 배낭, 비나 바람, 추위를 피하고 나를 보호해줄 기능성 등산복, 발복을 보호해주고 돌을 밟고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등산화 등이었다. 가격은 물론 천차만별이었지만 어느 정도 수준 되는 것으로 구하려 하자 금세 부담스러운 금액이 만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헤드라이트, 아이젠, 버너, 코펠 등 간단한 물품들은 주변에서 빌리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일정을 짜고, 물품을 구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떠난 지리산 여행.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가 준비 과정을 얼마나 즐겁게 임했는지 증명해주는 것이 바로 식사/간식류였다. 낱개로 소포장되어 스무 개 묶음으로 들어있는 트윅스 한 봉지, 연양갱 여섯 개들이 한 상자, 에너지바 여섯 개, 송이가 사 온 육포 여섯 봉지, 간식과 먹을 카누 한 상자, 멋을 완성시킬 팩소주 두 개. 코펠과 냄비를 최소한으로 챙긴 탓에 식사도 단출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이것들을 다 모아놓으면 마치 레토르 식품 장똘뱅이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이제 다음 날이면 11월 1일. 정말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까 괜스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 일어서서는 단단하게 조여놓은 배낭끈을 괜히 한 번 어루만져봤다. 자리에 누워서 친구들이 만날 뻔했다는 지리산 반달곰을 생각했다.


11월 1일 아침, 긴장되는 아침엔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 각성 주사를 맞은 것만 같다. 항상 그랬다. 오늘은 김포에서 사자춤을 추고 오후가 되어 평택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기차 출발 시간이 늦은 밤이므로, 일정 자체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다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간 늦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출근부터 등산복+등산배낭+등산화 풀세트를 장착했다.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어딜 가나 눈에 톡톡 튀는 등산재킷이 모두에게 내 계획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조금 우쭐해했다.

사자춤은 정말 힘들다.

사자춤은 늘 기진맥진하게 만들지만 일정 자체는 금방 마무리되어서 오후 3시 병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남은 계획이 있었다. 헤드랜턴을 구입하는 것. 새벽 산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구해두어야 했는데, 등산복 매장은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안 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병점에 미리 확인해 둔 등산용품점이 두 곳 있었다. 가까운 곳 먼저 갔다. 헤드랜턴 하나에 6만 원, 게다가 먼저를 잔뜩 뒤집어써서 연식도 구분 안 되는 오래된 제품. 다른 곳에 삽십분이 걸려 걸어갔다. 그런 건 없다고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잠깐 경각심이 들었지만, 평택에도 등산용품점은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전철을 타고 내려가는 길에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도시는 차량들의 불빛으로 거리거리 빛나고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은 웬만해서 틀리지 않는다. 15년을 다녔는데 등산용품점이 아닌, 등산 복점인 걸 모르고 지냈다니. 그나마 제대로 되어 보이는 짐은 하나같이 폐점하거나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이제 시간은 저녁 9시, 더 많은 곳을 들를 겨를이 없었다. 아침나절 가볍다고 감탄했던 배낭은 점점 어깨를 조여 오고 있었다. 고작 헤드랜턴 하나 때문에 이 고초를 겪는데 등산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들어간 다이소에서 장난감 같지만 불이 나오는 2000원짜리 랜턴 두 개를 살 수 있었다.(헤드랜턴은 없었다) 당장 건전지 10개들이 한 줄을 함께 구입하고 밖으로 나왔다. 전지를 결합한 랜턴은 꼭 할아버지 기침을 닮은 불을 뱉어냈다. 바닥을 비춰봤다. 간신히 발 앞 코가 보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드문드문 등산객들의 배낭이 보인다

오후 11시가 조금 지나서, 용산발 구례구역 행 무궁화호에 올라탔다. 창가 자리인 줄 알았는데 통로 쪽 좌석이었다. 옆에 남자 어깨가 조금 넓어서 자리가 불편했지만 헤드랜턴을 찾는 여정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금방 곯아떨어졌다. 밤을 끼고 달리는 기차 좌석들에는 얼굴과 상체에 옷가지를 덮고 팔짱을 낀 여행자들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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