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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12. 2022

공자는 왜 안회의 죽음을 그리 애석해했던가?

안회의 죽음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던 진짜 이유.

子謂顔淵曰: “惜乎! 吾見其進也, 未見其止也.”
孔子께서 顔淵을 두고 평하셨다. “애석하구나, 〈그의 죽음이여!〉 나는 그가 진전하는 것만을 보았고 중지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 장 역시 앞서 안회에 대한 칭찬과 함께 그가 어떤 점에서 칭찬을 받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배우는 자들에게 권계 하고자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여기서는 그가 일찍 요절한 것에 대한 스승 공자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점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애제자 안회의 요절에 대한 스승 공자의 아픔은 자식을 잃은 아픔을 넘어설 정도였다. 이 앞의 장이 안회의 성정에 대해 말하고, 안회의 죽음에 대한 애석함과 앞 장에서 확장된 안회의 본질에 대한 논평이 이 장에서 심화된 것이고, 그의 죽음에 대한 공자의 논평이 다음 장에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주자는 이 장에서 공자가 설명한 진전하는 것과 중지하는 것이 그 앞서 배웠던 산을 만드는데 흙 삼태기를 얹는 과정으로 설명했던 그것과 같은 것임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進(진)’과 ‘止(지)’ 두 글자는 해설이 윗장(흙삼태기 장)에 보인다. 안자(顔子)가 죽자, 공자께서 이를 애석히 여기시어 그가 진전하고 그치지 않았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앞 흙 삼태기 장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進(진; 나아가다)’과 ‘止(지; 그치다)’의 핵심은 자신의 의지이다. 의지가 없다면 다 이루었어도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보태지 못해 그간의 노고가 모두 헛수고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만 첫 삽을 퍼옮겼더라도 제대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훌륭한 시작이니 결국 자신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차이가 그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안회가 했던 것은 계속해서 정진함만 보였을 뿐 완성을 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행동 따위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는 공자의 슬픔 어린 극찬인 것이다. 슬픔이 어린 것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하던 애제자의 죽음에도 있지만, 그런 제자를 다시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서글픔이 담겨 있다. 이 서글픔은 배우는 자들에게 마땅히 이래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한탄 섞인 가르침이다.

때문에 어설픈 현대 해설서에서 ‘進(진)’을 ‘진보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공부가 한참 부족한 티를 내는 자들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현대어에서의 ‘진보’는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취를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를 혼란스럽게 새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進(진)’의 명확한 의미는 그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부화뇌동(附和雷同)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공부와 수련을 하는 것이요, 그것을 결코 어느 한 시라도 멈추거나 그만두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는 쉼이나 단절됨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 강조함과 동시에 그 가르침이 결코 막연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실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였던 ‘안회(顏回)’라는 자가 있었음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 간략하고 살펴볼 것 없을 듯한 문장에서 당신에게 조금만 더 들어간 질문을 던진다. 이 장의 내용을 근거로 봤을 때, 공자가 안회의 죽음을 그리도 안타까워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위에 설명 다 해놓고 이게 무슨 다시 도돌이표 찍는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하지만, 정작 똑같은 질문도 아주 조금 한발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당신이 정말로 그 질문과 행간의 의미까지 말끔히 건져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이 그러하다. 그래서 이런 꼼꼼한 읽기를 통한 집중된 사고는 당신이 아주 약간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발돋움이 될 수도 있다.


그간 공부한 정보를 취합해보면, 안회는 거의 성인인 스승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장에서 평가받은 것처럼 ‘결과와 상관없이’ 하루하루를 용맹 정진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늘 채워야 한다고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느라 가난하게 사는 것도 불편하게 사는 것도 1순위에 두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석 달에 한 번 정도 仁에 들지 못할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학문 성취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스승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할 부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다 이뤄놓았는데, 그것을 이제 누릴만하니까 죽음을 너무 빨리 맞이하여 그것을 향유하지도 못하였으니 애절한 죽음이라고 아쉬워했을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늘 안회 스스로가 말하듯 성인인 스승의 경지가 바로 눈앞이었는데 조금 더 시간만 있었다면 그대로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 직전에 이렇게 요절해버려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도 애절하고 속상하다는 것이다.


자아, 그래서 당신의 사고가 여기까지 정리가 되면, 앞서 살펴보았던 흙 삼태기 장의 ‘進(진)’과 ‘止(지)’의 개념을 주자가 주석에 언급했던 것이 단순한 문헌상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흙 삼태기에서 지적하려는 것은 배우는 자들이 그 완성을 앞두고서 흙 한 삼태기를 더하지 못하여 화룡점정을 이루지 못하고 그간의 노력을 모두 날려버리는 짓을 하는 것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그래서 그 장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사실 ‘進(진)’하려는 자에 대한 격려보다는 여하의 이유로든 ‘止(지)’를 선택하는 이들에 대한 강한 권계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그것과 맞물려 사실 이 장에서도 방점은 안회가 끊임없는 ‘進(진)’을 했다는 칭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코 ‘止(지)’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금 다른 해석이긴 하지만, 일부 선배 학자 중에서는 ‘止(지)’라는 의미를 ‘進(진)’의 반대되는 ‘멈춘다.’의 의미가 아니라 ‘(이미 그 경지에 이르러서) 그친다’로 해석하여 학문적이나 인격적으로 완성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안회가 노력하는 것만 보았지 결국 완성된 형태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지, 미처 그 완성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봐서 그것을 안타깝다고 문장을 시작했다고 풀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앞서 내가 작은 따옴표를 통해 힌트를 슬쩍 흘려주었던 것처럼 안회는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하되, 그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라 해석하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병을 얻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멈춰지게 되었으니 스승의 입장에서는 고지를 눈앞에 두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그것이 애통하다 강조한 것이다. 누구에게 왜 강조를 했을까? 병이 걸리지도 않고 건강하면서도 학문이 한참이나 부족하면서도 그것을 이룰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내던지고 그쳐버리는 이들에 대한 강한 일침이 이 장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병으로 요절하지만 않았어도 끊임없이 노력했을 안회에게 간절했던 시간과 건강이 있는 자들은 오히려 노력하지도 않고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안회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즉, 이것은 안회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아니라 그가 죽고 난 뒤 다시 공부하겠다고 시간을 좀먹는 한심한 공부하는 이들의 모습에 더욱 속이 끓는 스승 공자가 먼저 간 제자 같은 이를 다시 얻을 수 없음을 한심한 작금의 배우는 자들에 대해 일갈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부족함조차 알지 못하면서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방기하는 자들을 보면서 그 세태가 대세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스승 공자는 애제자 안회가 더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다시는 없을, 자신의 가르침을 성취할 수 있었을 그 제자의 요절이, 그를 앗아가 버린 하늘이 너무도 원망스럽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총리로 지목된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노무현 정권에서 총리로 삼았던 사람이니 현재 민주당이 그를 부정하거나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니 어쩌니 망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검사출신 법비가 방송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자면, 서열이니 관례니 모두 깨버리고 법과 상식과 정의를 이룰 사람이라고 이례적으로 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까지 임명해줬던 현 정권은 지금 당선인에게 입 다물고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그가 검찰총장이 될 때 그 수많은 문제가 될 것이라며 공격해댔던 빨간당은 지금 자기 부정과 모순을 겪고 자신들의 수장이라며 어깨춤을 추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가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되기까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후배라며 ‘선배님’이라고 깍듯하게 표현하며 인사검증의 책임을 졌어야 할 자는, 자기가 의조하여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정도를 넘어 부메랑으로 자신의 아내를 감옥에 보내고, 딸의 의전원과 대학을 모조리 취소당하며 자신 역시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되어 있단 말인가?


누구나 잘못은 한다. 문제는 그 잘못을 얼마나 빨리 스스로와 상대와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에게 솔직 담백하게 인정하는가, 그리고 그 잘못의 원인을 빨리 분석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세우는가 등의 조치에 따라 더 앞으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곪아서 썩어 문드러지는가를 선택하게 된다.


연전에 방송되었던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블랙코미디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에 보면 대한민국의 상위 0.1%라는 각 분야의 금수저라는 이들의 웃기지만 결코 그냥 웃고 넘기지 못할 천태만상이 그려진다. 그중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로펌의 대표를 맡고 있는 법비가 하나 나온다. 그를 중심으로 정권이 바뀌고 총리부터 요직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주 우습지 않게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 로펌이라는 곳에서 법비들이 중심으로 정부 요직에 있던 자를 자신들의 로펌 고문으로 끌고 와서 로비스트로 쓰고, 다시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그의 경력을 강조하며 다시 새 정부의 요직에 꽂아서 사용하는, 그쪽 전문용어로 이른바 ‘회전문 인사’라는 것을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회의체(?)가 로펌 대표인 법비를 중심으로 한 법비들과 그들의 힘이 필요하면서도 자본을 대며 그들을 먹여 살리는 기업체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검수완박’이라는 듣도보고 못한 신조어와 묘하게 연결된다. 오늘은 지면 관계상 ‘검수완박’까지 논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본래의 ‘회전문 인사’의 설명에 집중하기로 하자.


오늘의 논평을 열면서 꺼낸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현재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사람은 2007년에 총리를 지냈던 사람이다. 무려 16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빨간당의 인수위에서 자랑처럼 아예 대놓고 광고하는 부분이니 발검 스쿨의 학도들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청와대에 들어가 정책기획수석 비서관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고, 나라 장사꾼의 정부에서는 주미대사를 지냈으며, 군바리 딸의 정부에서는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이건 표면적으로 빨간당에서 그가 여러 정부에서 두루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고 표방하며 떠든 것이고, 포털 사이트의 프로필의 행간에 감춰져 나오지 않는 이력들이 있다.

그것은 앞서 블랙코미디를 표방한 드라마에서 나왔듯이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2년 11월부터 8개월간 김앤장의 고문을 했었다는 것이고, 그 인연(?)의 고리가 이어져 2017년 12월부터 현재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기 직전까지 역시나 김앤장의 고문직에 있으면서 어마어마한 고문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하버드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은 미국 유학파라고 자랑을 하는 이면에도 숨겨진 진실은 또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행시에 합격한 전형적인 정부 관료 공무원 출신이다. 그 말은, 그가 하버드 대학의 석사와 박사를 공무원직을 유지하면서 나랏돈으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공무원을 시작으로 공무원들의 해외연수가 부럽던 법관들마저 말도 안 되는 세금 운용 해외연수를 통해 대법원장이라는 작자는 자신의 밑에 있는 법관들을 길들이는 당근으로 그 법관 해외연수를 활용했다.


월급은 월급대로 받으면서 연수라는 빌미로 나랏돈으로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받으며 공부하고 가족들 모두와 함께 해외로 떠나 자녀들까지 해외에서 공부시킬 수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공무원의 특권인 것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그는 그렇게 하버드 출신의 미국통(?)이라는 꼬리표까지 받아왔다.


그 꼬리표를 앞세워 나라 장사꾼의 정부에서 주미대사까지 한 것이다. 기업에서 장사를 하다 나라까지 장사하겠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귀 알아먹는 정부 관료에 저 저명한 미국판 경성제대 석박사 출신이니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라고 떠들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왜 그를 마지막 총리로 지명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굳이 여기에서 지면을 할애하여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의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이 출중하여 지명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설명만 해둔다.

고문 공부를 바탕에 두고 있으니, 조선시대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썩어빠진 붕당정치의 폐해를 논하자면, 언제나 여당과 야당으로 할퀴고 물어뜯던 정치판의 싸움에서 두 적대세력 간에 양측 모두 능력을 인정하고 어디에도 편당 하지 않은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여러 정부에서 발탁되었다는 것은 앞서 간략하게 설명한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알력과 정치싸움의 소산일 뿐, 그가 훌륭한 인품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굳이 그의 소속을 찾으려거든 그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챙겨준 곳이 그가 몸과 마음을 의탁한 곳이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답이겠다.


공자가 안회를 왜 그렇게 아쉬워했는지 수천 년이 지난 대한민국을 보니 이해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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