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술 이야기> 시리즈의 글을 올렸는데, 분명히 파일의 일련번호인 글 주소에는 1029회라고 나와있는데, 발행 글수에는 이제 ‘1000’을 채웠다고 나오네요.
하긴 숫자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2021년 5월 28일 매거진에서도 속하지 않은 ‘1 호글’ 발행을 시작으로 1년이 되기 전에 1000편을 채웠네요. 1000편의 글...
일주일에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말 그대로 써대면서, 이젠 특별한 생각 같은 것도 하지 않는 듯합니다. 100편을 채우고 200편을 채우고 300편을 채운 이들의 글에 축하한다고 꾸준히 열심히 쓰라고 축전 댓글을 달아주면서도 정작 내가 100편 이후 그렇게 숫자를 의식하면서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음 짓게 됩니다.
내 가족이나 지인에게는 브런치 글을 알려주지 않아 그들은 브런치를 읽지도 심지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같은 침대를 쓰는 분은 검열(?) 차원에서 한두 달에 한두 번 살펴보고는 너무 평소처럼 독설을 날리지 말 것, 이나 지나치게 신원을 드러내는 짓(?)을 하지 말 것, 정도의 경고를날리긴 합니다.^^)
언젠가 다른 글에 언급했던 미국에 본부가 있다는 여호와의 증인 빌딩이 가면, 아무런 사유재산 없이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며 거기서 책 읽고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에 삼시세끼 제공을 받으며 지내는 것이 자기 꿈이라던 미국 친구의 설명이 떠오릅니다.
왜냐구요?
그 친구가 저에게 마치 밖에서 지내면서 그 사람들이 지내는 것과 똑같다며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나온 이야기거든요.
맞습니다.
일주일에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쏟아내려면 사실 본업이 글쟁이인 사람도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글쓰기에 매달려야만 하는 시간이지요. 무슨 받아쓰기나 타이핑을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써야 할 글의 자료를 정리해야 하고 그 자료를 읽어봐야 할 것이며, 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구상해야 할 것이고, 구상한 글을 다시 재구성하여 글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다듬는 작업을 하면서 그 분량을 쏟아내려면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려야만 하는 거, 맞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본업으로 머리 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재는 다른 나라의 대학에서 말이지요.
그러니 강의와 학생 지도는 본업상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삼시 세 끼를 직접 해 먹습니다. 주부라면 모두 공감하는 사실이겠지만, 챙겨줘야 할 식구들이 있어 요리를 하는 것도 일상이 되면 힘든 일이겠으나, 자기 혼자 먹자고 매번 밥을 하고 요리를 하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요. 사 먹고 대강 건너뛰고 그러면 되지 않느냐구요? 진을 빼는 강의를 하고 하루 A4 20장 분량의 글쓰기를 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아시나요? 풍부한 지식? 몇 개국어를 구사하는 탁월한 인문학적 능력?
아니요. 체력입니다. 체력이 없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글쓰기를 장시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 삼시세끼 꼬박 한식으로 잘해 먹습니다. 레또르 음식으로 대강이 아니라 매 끼니 따뜻한 쌀밥을 해서 먹지요.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이 겨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자 책상을 벗어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체력을 위해 날이 춥지 않았을 때는 해변공원을 산책했고, 지난 12월부터는 매일 3KM 수영을 하기 시작했지요. 겨우 체력은 코로나 이전의 80% 이상까지 끌어올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지금의 글쓰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토요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시내에 나가 일주일 치 먹을 식량을 장 봐오고, 일주일에 한 번 세탁실에 가서 옷을 세탁하고, 간혹 회의에 참석하거나 한국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쓰레기들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국제전화로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는 것 이외의 모든 시간은 글쓰기에 쏟아부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요 며칠 전에도 넋두리처럼 썼지만, 누군가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와의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마치 목표가 있는 사람처럼 매일 그렇게까지 써대며 글 알람을 하루에 4번씩이나 게다가 주말까지 계속 그렇게 왜 그리 써대느냐고.
아마도 어느 순간 이 나라를 떠나 다시 한국에 돌아가 전투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렇게까지 글을 쓸 수 없게 될 테니 그때까지는 최대한 열심히 써서 내 족적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위에 내가 가장 먼저 걸었던 사람이라고 발자국을 남기겠다고 뛰어다녀봐야 눈이 펑펑 쏟아지면 그 족적은 어느 사이엔가 덮이고 말 것이고, 매일같이 쏟아지던 발행 글들이 줄어들고 끊기게 되면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에게도 잊힐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브런치가, 다음카카오가 망해버리지 않는 이상, 예전 싸이월드가 판을 접어가듯 써둔 글이 어디론가 사장되지는 않겠지요?
발행 글이 1,000회가 넘든 10,000회가 넘든 매일 같은 일상이, 수도자 같은 일상이 그저 계속될 뿐입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지루해 보이고 재미없기 그지없어 보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수행은 본래 고통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 쉽고 즐겁고 달짝지근하기만 하다면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꾸준히 제 글을 탐독하다가 최근에서야 구독을 누른 홍보 전문가 아이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 유형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매일같이 수십, 수백, 수천 일 동안 꾸준히 그 일을 한 사람들이 대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관심과 호감을 보이고 있더군요.
맞습니다. 처음 시작은 하루였겠지만, 그 하루가 쌓여 세월이 되고 그렇게 자신의 일상 속에서 단련된 수양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무언가를 반드시 남기게 됩니다.
보잘것없는 허접한 글쓰기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쌓이고 깎아 나가다 보면 무언가를 이룰 날도 혹여 오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가져봅니다.
1000회의 발행까지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혼자서 쓰는 일기가 아닌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이 공간에 글을 쓰는 이유는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와 같습니다. 조만간 그 이유에 부합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담은 매거진을 공표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찬찬히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